2026년 07월 07일 (화)

피 속에 숨은 우울증 신호

[바이오키워드] 단핵구 노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우울증은 흔히 “기분이 오래 가라앉는 병”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실제 진단은 훨씬 복잡하다. 어떤 사람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온몸이 무겁다고 느끼지만, 또 다른 사람은 아무 일에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긴다. 같은 우울증이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주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의사의 면담을 바탕으로 진단해 왔다.

이런 가운데 혈액 속 면역세포의 ‘노화 속도’가 우울증 진단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정 백혈구가 얼마나 빨리 늙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우울증의 정서적·인지적 증상과 관련된 생물학적 변화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대 로리 마이어스 간호대학의 니콜 보리외 페레즈 교수와 예일대, 존스홉킨스대 등 공동 연구팀은 백혈구의 일종인 단핵구(monocyte)의 후성유전학적 노화가 우울 증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노인학 저널: 시리즈 A, 생물과학 및 의과학(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log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 2026년 3월 24일자에 실렸다.

혈액 속 면역세포 노화가 우울증 단서로

현재 우울증은 혈액검사 하나로 확진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다.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시행하더라도 이는 갑상샘질환이나 빈혈처럼 우울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질환을 배제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연구팀은 우울증을 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생물학적 표지자, 즉 바이오마커를 찾기 위해 면역세포의 노화에 주목했다.

핵심은 단핵구였다. 단핵구는 혈액 속을 돌아다니는 백혈구의 한 종류로,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 또는 손상 신호를 감지하면 염증 반응에 관여한다. 필요할 때는 조직으로 이동해 병원체를 잡아먹는 대식세포(macrophage)나 면역 반응을 조율하는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로 바뀌기도 한다. 감염, 만성 염증,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몸의 면역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세포로 꼽힌다.

연구팀은 후성유전학적 시계(epigenetic clock)라는 분석법을 활용했다. 이는 유전자의 DNA 염기서열 자체가 아니라, DNA에 붙는 화학적 표지의 변화를 측정해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추정하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변화가 DNA 메틸화(DNA methylation)다. 쉽게 말해 주민등록상 나이는 같아도 세포 수준에서 더 빨리 늙는 사람이 있고, 더 천천히 늙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차이를 수치로 읽어내는 방식이다.

이번 연구에는 여성 440명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261명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된 여성이었고, 179명은 HIV 감염이 없었다. 연구팀은 여성 HIV 장기 추적 연구인 ‘Women’s Interagency HIV Study’ 자료를 활용했다. 우울 증상은 역학연구센터 우울척도(CES-D)로 평가했다. 이 척도는 피로, 식욕 변화, 초조함 같은 신체 증상뿐 아니라 절망감, 사고력 저하, 즐거움 상실 같은 정서·인지 증상도 함께 살핀다.

분석 결과는 흥미로웠다. 여러 세포와 조직을 한꺼번에 반영하는 일반적인 후성유전학적 시계는 우울 증상과 뚜렷한 관련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단핵구에 초점을 맞춘 후성유전학적 노화 지표는 우울증의 비신체성 증상과 강하게 연결됐다. 비신체성 증상이란 몸의 통증이나 피로처럼 신체로 드러나는 증상이 아니라, 기분과 생각의 변화로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특히 단핵구의 노화 가속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는 무쾌감증, 절망감, 실패감 같은 정서·인지 증상과 관련이 컸다. 반면 피로, 식욕 변화, 초조함 같은 신체 증상과의 관련성은 상대적으로 뚜렷하지 않았다. 이 점이 중요하다. 우울증이 있어도 몸의 증상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연구에서는 단핵구 노화가 그런 신체 증상보다는 기분과 생각의 변화에 더 가까이 연결돼 있었다.

연구팀은 “우울증은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다”라며 “넓은 진단명만으로는 가려질 수 있는 정신건강의 독특한 생물학적 기반을 이번 연구가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연구가 곧바로 우울증 혈액검사 상용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연구 대상이 여성 440명으로 제한됐고, HIV 감염 여부라는 특수한 조건도 포함됐다. 우울증은 면역, 호르몬, 뇌 회로, 스트레스, 생활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다. 단핵구 노화 지표 하나만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거나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우울증을 단순히 “마음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면역세포와 생물학적 노화의 관점에서 더 세밀하게 나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더 큰 규모의 연구에서 같은 결과가 반복된다면 단핵구 후성유전학적 노화는 우울증의 조기 발견이나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연구팀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은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며 “정신건강에서도 환자의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인 생물학 검사를 결합하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특히 우울증 위험이 높은 집단에서 더 정밀한 정신건강 진단과 치료로 나아가는 한 걸음이라는 평가다.

*논문출처: Monocyte Epigenetic Age Acceleration is Linked to Non-Somatic Depressive Symptoms in Women with and Without HIV.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log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 2026; DOI: 10.1093/gerona/glag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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