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의료가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 7월 지정한 전국 175곳 ‘포괄2차종합병원’은 허물어진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의 복원 선언이다. 가벼운 경증 치료는 동네 병의원이, 고난도 중증 치료는 대학병원 같은 상급종합병원이 맡되, 그 사이의 광범위한 ‘중등도(中等度) 질환’과 ‘필수 응급 의료’를 지역 거점 종합병원이 책임지게 하겠다는 것.
특히 부산·경남처럼 고령화가 가파른 지역에서 ‘신장 질환’은 지역 의료의 자생력을 측정하는 잣대다. 한국 만성신장병(CKD) 유병률은 약 8~12%(대한신장학회)나 된다. 게다가 최근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하며 ‘대유행’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
2024년 기준, 이 병으로 진료받은 사람만 34만 6천여명(건강보험 진료환자 기준). 한국 성인 7~8명 중 1명이 환자라는 얘기다. 그중 70대 이상은 4명 중 1명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부산, 경남에선 신장 질환이 지역 의료의 최대 화두일 수밖에 없다.
봉생기념병원 김중경 명예원장(신장내과)은 “한국은 인구 100만 명당 말기신부전 유병률이 세계 3위(대만-일본-한국) 수준”이라며 “환자들이 대학병원의 긴 대기 시간에 지쳐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지역 내 완결적 진료 시스템을 갖춘 거점 병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실제 요긴하게 쓰인다”고 했다.

봉생기념병원, ‘혈액형 불일치’ 고난도 이식까지…지역 필수 의료의 ‘실핏줄’ 되다
포괄2차종합병원의 핵심 미션은 DRG-B군(종합병원 적정 진료군) 질환의 전문성 확보다. 신장 질환은 이 범주의 대표격으로, 혈액투석을 위한 혈관 조성술부터 급성 신손상 대응, 최종 단계인 신장이식까지 일관된 시스템이 요구된다.
특히 투석의 시작인 동맥정루(AVF, Arteriovenous Fistula) 조성 및 관리 역량은 2차 종합병원의 수준을 결정짓는 지표다. 김 명예원장은 "신장 치료는 환자와 병원이 함께 뛰는 마라톤"이라며 “투석기는 어디에나 있지만, 환자 혈관을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응급 상황에 즉각 외과적 처치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무나 갖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봉생기념병원은 2026년 3월 현재, 부울경 권역 내 종합병원 최초로 신장이식 1,433례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생체 이식(LDKT) 1,119례, 뇌사자 이식(DDKT) 314례 등. 심지어 ABO 혈액형이 일치하지 않는 공여자-수혜자 사이의 신장이식(ABOi KT)도 166례나 된다.
이는 포괄2차종합병원이 구현할 수 있는 전문성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예를 들어 ABOi KT는 과거에는 하면 안 되는 금기(禁忌)였다. 하지만 현재는 면역억제제와 면역억제 프로토콜을 이용해 항체를 낮춘 뒤에 신장을 이식할 수 있게 됐다. 신장이식 가능 범위를 확 늘린 것. 여기에 ‘혈액투석 적정성 평가’ 1등급과 ‘우수 인공신장실’ 인증은 그 과정에서 얻은 부수적인 훈장일 뿐, 핵심은 "환자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는 시스템"에 있다.
급성신장병(AKI), 응급 대응과 사후 관리의 연계
약물 부작용이나 감염, 저혈압, 패혈증 등으로 발생하는 급성신장병(AKI)은 병원의 응급 역량이 생명줄이다. 이를 위해 24시간 가동되는 투석혈관센터와 함께, 혈관 폐쇄 시 즉각 재개통이 가능한 중재시술팀을 2개 조로 상시 운영한다. 대학병원 응급실의 과부하를 덜어줄 수 있는 것.
동시에 풍부한 임상 데이터를 바탕으로 지역 내 의원급 의료기관과 긴밀한 회송 체계를 구축, 환자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연속성 있는 진료를 받게 돕는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지향하는 ‘필수 의료 안전망’의 실체다.
[FAQ] 신장병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4가지
Q. 동네 의원에서 관리를 받다가, 어느 시점에 종합병원을 찾아야 하나요?
A: 사구체 여과율(GFR)이 30ml/min 미만인 '만성신장병 4단계'에 진입하면 종합병원급 전문 관리가 권장됩니다. 투석이나 이식을 준비해야 하거나 요독 증상(부종, 가려움증 등)이 동반될 때는 다학제 협진이 가능한 지역 거점 병원을 찾는 것이 안전합니다.

Q. 급성 신장 손상의 응급 처치 기준은 무엇인가요?
A: 소변량이 급격히 줄거나 몸이 붓고, 호흡 곤란이 일어나면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이때 24시간 투석과 혈관투석 중재시술이 즉시 가능한 종합병원을 미리 파악해 두면 생존율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Q. 신장이식 수술 시 중요하게 봐야 할 지표는?
A: 수술 건수만큼이나 '장기 생존율'과 '거부반응 관리 시스템'이 중요합니다. 이식 후에는 평생 면역억제제 조절과 합병증 관리가 이어지므로, 관련 의료진 숙련도가 높고 환자와 밀착 소통이 가능한 시스템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Q. 고난도 복합질환 상태여서 대학병원을 찾아갔다면, 수술 후엔 다시 지역 종합병원이나 의원으로 옮겨도 안전한가요?
A: 네, 매우 권장됩니다. 급성기 치료 후에는 관리가 더 중요해지죠. 그래서 환자 접근성이 좋은 지역 거점 병원이나 의원에서 관리 받는 것이 삶의 질 측면에서 유리합니다. 최근엔 진료 정보 공유 시스템을 통해 투석 데이터나 복약 기록이 유기적으로 전달되므로 안심하고 회송 절차를 밟으셔도 됩니다. 평소엔 집 근처 동네 병의원에서 진료 받다가 정기 검진이나 이상 징후 시에만 다시 포괄2차종합병원을 찾는 유기적인 관리도 가능합니다.
신뢰가 만드는 '지역 필수' 의료 생태계
결국 의료 전달체계의 성공은 환자의 ‘신뢰’에 달렸다. “서울이나 대학병원에 가지 않아도 내 지역에서 충분히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길 때 쏠림 현상은 해결된다. 의료의 가치는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환자를 살리는 실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의 포괄2차종합병원 제도는 결국 실력 있는 지역 병원들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부산의 노년기 신장 건강을 책임져온 봉생기념병원의 1,433례 기록은 실력 있는 종합병원들이 ‘포괄 2차’라는 새로운 옷을 입었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가늠자다. 물론,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숫자가 담고 있는 환자들의 회복이고, 되찾을 일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