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게 낙상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복합적인 시그널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매년 새롭게 낙상을 경험하는 노인이 전체 노령인구의 30% 정도는 된다. 문제는 그 중에서 10~15%가 고관절 골절이나 뇌출혈 같은 중증 부상을 입는다는 사실. 이는 장기 요양, 사망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자녀들이 부모님에 별다른 외상이 없으면 가슴을 쓸어 내리며 안도한다. 그러면서 잊는다.
하지만 전문가들 시각은 다르다. “진짜 체크는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 암이나 심혈관 질환만큼이나 치명적인 합병증을 유발하는 ‘사고’일 수도 있고, 몸속에 숨겨진 질환이 밖으로 드러나는 ‘신호’이기도 하다는 것.
이와 관련, 미국 노인학 전문의 레슬리 커니산(Leslie Kernisan) 박사는 최근 노인 건강 전문 플랫폼(‘Better Health While Aging’)을 통해, 낙상 사고 후 의료진을 만났을 때 보호자가 반드시 확인해야 할 8가지 체크리스트를 제시했다.
낙상 후 진료실에서 확인해야 할 8가지 핵심 리스트
새로운 ‘급성 질환’이 생겼는가? 갑작스러운 기력 저하나 섬망은 요로감염(UTI), 탈수, 빈혈, 폐렴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 이런 질환은 부모님 신체 균형을 무너뜨려 낙상을 유발한다.
‘기립성 저혈압’ 여부 앉아 있을 때와 서 있을 때의 혈압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앉았다 일어나면 3분 이내에 수축기 혈압이 20 mmHg 이상, 또는 이완기 혈압이 10 mmHg 이상 감소하는 경우다. 특히 전립선 비대증 약이나 혈압약을 복용 중인 경우, 일어설 때 혈압이 급락하며 어지럼증(기립성 저혈압)을 일으켜 넘어질 확률이 높다.
전해질 및 수분 수치 혈액 검사를 통해 나트륨 수치나 신장 기능을 점검해야 한다. 당뇨 환자라면 실험실 검사로 잘 나타나지 않는 ‘저혈당 에피소드’(Hypoglycemic Episode)가 있었는지 의사에게 알려야 한다. 혈당이 정상 아래로 떨어져 식은땀, 떨림, 어지럼증, 집중력 저하 등이 나타난 상태. 꼭 ‘저혈당 쇼크’까지는 아니더라도 살짝 어지럽거나 다리에 힘이 풀리는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복용 약물의 ‘치명적 부작용’ 수면제나 진정제뿐 아니라 감기약, 알레르기 약 등에 포함된 항콜린성 성분은 평형감각을 둔화시킨다. ‘과잉 처방’된 약은 없는지 약봉지를 통째로 들고 가서 점검받아야 한다.
보행 패턴과 하체 근력 의사에게 부모님이 걷는 모습과 손의 도움 없이 의자에서 일어나는 능력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한다. 근력이 부족하다면 처방을 통해 물리치료(PT)를 시작해야 한다.
숨어 있는 심장·신경계 질환 부정맥(심방세동)이나 파킨슨병, 말초신경병증 등은 낙상을 반복시키는 주범이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거나 보행 시 종종걸음을 걷는다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
골다공증 및 골절 위험도 낙상이 곧 골절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뼈의 강도를 알아야 한다. 골밀도 수치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골다공증 치료를 즉시 시작해 ‘두 번째 낙상’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시력 및 발 건강 상태 시력이 나빠 장애물을 피하지 못하거나, 발의 통증으로 걸음걸이가 무너졌는지 확인한다. 시력 검진과 발 관리는 낙상 예방의 기본이다.
대한노인병학회, “한국형 주거환경과 약물 오남용 주의해야”
한국 전문가들 역시 낙상을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지표’로 본다. 대한노인병학회(회장 한성호·동아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한국 노인들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가이드라인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한성호 회장은 10일 “한국의 노인들은 여러 병원에서 여러 약물을 처방받는 ‘다약제 복용(Polypharmacy)’ 비율이 매우 높다”며 “5가지 이상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 약물 간 상호작용으로 인해 낙상 위험이 크게 높아지므로 전문가의 조정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했다.

또한 학회는 서구권과 다른 한국식 ‘습식 욕실’ 문화를 주요 위험 요소로 꼽는다. 미끄러운 타일 바닥과 높은 문턱은 노인 낙상의 주요 발생 지점이다. 학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욕실 내 안전 손잡이 설치 ▲문턱 제거 ▲야간 센서등 설치 등 조그만 환경 개선만으로도 낙상 사고의 상당 부분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회장은 “최근 1년 이내에 단 한 번이라도 넘어진 적이 있다면 이미 ‘낙상 고위험군’에 해당한다”며 “낙상을 노화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만 여기지 말고, 즉시 전문의를 찾아 원인 질환을 감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