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미디어(SNS)에 누군가 우리나라를 일러 ‘노인과 바다’라고 풍자했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노인이 많이 사는 나라를 빗대어 말한 것이라고 해서 웃었다.
실제로도 우리나라는 올해 이미 65세 이상 고령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20.6%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게다가 그 증가 속도는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빨라 2050년이 되면 그 비율이 40%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노인의 건강을 사회 전체의 핵심 과제로 만들었다.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사는 것은 모두의 염원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질병의 치료와 생명의 연장이라는 의학적 목표에 매몰된 나머지, 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 바로 자기결정권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가정 내 돌봄 등 일상적인 응대에서도 ‘효율’을 우선하고 당사자의 가치와 지향이 완전히 무시되기도 한다.
노인 건강관리에 의학적 결정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과정에 당사자 본인의 참여 유무와 크기 정도다. 그러므로 그 결정이 의학적으로 최선이 아니거나, 전문가의 견해와 다를지라도, 심각한 자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없는 한 당사자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한다. 이 같은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할 때 느끼는 무력감은 우울증을 유발하고, 남아있는 인지 기능이나 신체기능 저하를 촉진할 수 있는 반면, 작은 결정이라도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지할 때 노인의 자존감과 치료 참여도는 훨씬 높아진다.
흔히 노인 건강을 관리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수많은 결정 과정에서 당사자의 목소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가족이나 의료진의 결정이 대신할 때가 많다. 문제는 사회 어디에서나 이들 고령 혹은 치매나 다른 질병으로 육신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거나 소통이 불편한 사람들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 찍는 것이다. 노인 인구의 급증으로 인한 신체적, 인지적 기능이 저하된 고령인구는 이제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여전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결정권을 가진 존재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처럼 노인 자기결정권과 노인의 존엄성을 지키는 돌봄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때맞추어 최근 질병 치료와 돌봄의 현장에서 헌신과 기여를 한 봉사자들에게 매년 대상을 수여해 온 어느 재단이 수상자들이 모두 함께 모인 조찬 특강에서 ‘노령기 건강과 인권’을 주제로 참가자들 간의 토론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령자가 어떻게 하면 더 건강하게 자신의 문제를 결정하는 데 가능한 오래 참여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그마한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필자는 이날의 행사가 고령자가 급증하고 있는 국내 현실에 비추어 매우 소중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특히, 이 같은 건강관리와 돌봄의 현장을 이끄는 지도자들 스스로가 노인 건강관리의 패러다임이 ‘대신 결정해주는 것’에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노인의 통합적인 건강과 존엄이 확보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고 재확인한 의미 있는 행사이자 특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은 경우 고령의 노인을 ‘보호’한답시고 강압적으로 개입하고 의사결정을 ‘대행’하는 관행에 젖어 있다. 나는 이번 특강의 주제를 통해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자기결정권을 지키고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럴 때 비로소 인간 중심의 돌봄이 가능하고 그 같은 기술을 통해 돌봄의 현장이 효율과 관리를 넘어 공감과 관계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종종 노인 선택권이 박탈당한다. 예를 들어, 병원이나 시설에서는 “넘어져 다칠 수 있으니 휠체어에 묶어 둡시다”라는 결정이 보호자의 동의만으로 쉽게 이루어진다. 이는 학대와 방임으로부터 보호라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될 수 있는 신체적 제한이다.
흔히 노인 돌봄은 식사 보조, 배변 처리, 목욕 등 신체적인 부분에 집중되어 단순노동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돌봄에는 말벗, 산책, 병원 동행과 같은 정서적 교감, 복잡한 의사소통, 건강관리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바라보기’, ‘말 걸기’, ‘만지기’, ‘일어서도록 돕기’ 등 구체적인 행위 지침을 통해 돌봄 대상자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의 의미와 결과를 이해하며, 다양한 선택지들을 고려해 자신의 진정한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 의사결정’의 제도화도 검토해 볼 만하다. 복잡한 의료 시술 동의서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각 선택에 따르는 장단점을 함께 고민하며, 당사자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의료진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러한 지원 의사결정 모델은 고령의 노인, 특히 초기 치매 노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상태에 맞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최대한 오랫동안 자신의 삶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노인의 건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노인의 자기결정권을 지켜주는 돌봄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치매 초기로 집에서 주로 누워서 지내는 어머니에 대한 최근 나의 불편한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귀로 잘 듣지 못하고 두 발로 잘 걷지 못하며 치매 초기여서 이런저런 불일치가 있음에도 뉴스를 듣고 신문을 읽고 글을 쓰는 어머니인데 나는 많은 것을 그 어머니께 여쭈어보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나 좋을 대로 선택하고 결정했다. 어머니가 좀 더 많이 그리고 좀 더 오래 당신의 생각과 가치를 표현할 수 있게 내가 먼저 노력하지 못한 것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노령기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우리’의 미래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 또한 돌봄은 비단 고령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30, 40대조차 그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다 예기치 않게 돌봄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돌봄을 주는 자가 돌봄을 받는 자의 존엄을 지키는 돌봄의 기술을 확산하는 것은 장차 올 우리의 미래가 건강하고 존엄하게 되는 출발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곁의 노인과 돌봄을 받는 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은 변화가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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