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8일 (수)

AI는 후보 찾고, 양자는 검증한다...팜캐드의 신약개발 최적 조합

하이브리드 플랫폼 만든 우상욱 대표…"파뮬레이터를 오케스트라처럼"

"바이올린만으로는 교향곡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첼로, 플루트, 팀파니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명곡이 탄생하죠."

㈜팜캐드 우상욱 대표(부경대 교수)가 자신의 신약 개발 플랫폼 '파뮬레이터'를 설명하며 꺼낸 비유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각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둘을 조화롭게 결합하면 신약 개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것이다.

AI만으로는 한계가 있던 신약 후보물질 탐색이 양자컴퓨팅과 결합하며 그 효율이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팜캐드 우상욱 대표(부경대 교수)는 그 잠재력을 포착, 두 첨단 기술을 접목한 하이브리드 플랫폼 '파뮬레이터'를 개발했다. 사진=팜캐드

"신약 개발은 너무 복잡합니다. 한 가지 기술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해요. AI의 장점과 양자컴퓨팅의 강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죠."

왜 둘을 합쳤나?

AI 신약 개발 회사는 이미 많다. 아톰와이즈(Atomwise), 엑스사이언티아(Exscientia), 리커전(Recursion)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수조 원대 투자를 받으며 시장을 선도해왔다. 그런데 팜캐드는 왜 여기에 양자컴퓨팅까지 더했을까?

"AI 회사들을 보면서 아쉬웠어요. 분명 빠르고 효율적인데, 뭔가 부족했습니다."

그것은 현재 AI가 갖는 근본적 한계이기도 하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찾는다. 이런 구조라면 이렇게 작동할 것이라 예측한다. 하지만 '왜' 그런지 설명하지 못한다.

"분자 내부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에너지가 어떻게 변하는지…. AI는 그걸 정확히 모릅니다. 그냥 '비슷한 사례에서 이랬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거야'라고 추정만 합니다. 반면 양자컴퓨터는 슈뢰딩거 방정식을 직접 풀 수 있어요. 물리 법칙에 따라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물리 법칙을 직접 계산하므로 이론적으로 훨씬 더 정밀하다. 하지만 모든 화합물을 다 계산하긴 불가능하다. 비용도 훨씬 많이 든다.

그래서 나온 해법이 하이브리드다. AI로 빠르게 후보를 추린 다음, 양자컴퓨터로 그 후보들만 정밀 검증하는 것이다.

"각자 잘하는 걸 맡깁니다. AI는 넓은 바다에서 가능성 있는 지점을 빠르게 찾고, 양자는 그 지점을 깊게 파는 거죠."

3악장으로 이뤄진 협주곡

파뮬레이터의 작동 방식은 교향곡 악장처럼 3단계로 나뉜다. 첫 악장은 AI 기반 가상 스크리닝(screening)이다. 팜캐드가 보유한 1억 개 이상의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초고속으로 분석한다.

"딥러닝 모델이 타겟 단백질의 구조를 읽고, 어떤 화합물이 결합할 가능성이 있는지 예측합니다. 하루 최대 1200만 개를 처리할 수 있어요."

그렇게 100만 개 중에서 '가능성 있어 보이는' 100개 정도가 선발된다. 마치 오디션 1차 심사처럼.

다음 악장의 주인공은 양자 화학. AI가 추린 100개 후보를 하나씩 정밀 분석한다. 여기서 물리학이 등장한다. 슈뢰딩거 방정식을 풀어서 화합물과 단백질이 결합할 때 전자가 어떻게 재배치되는지, 결합 에너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계산한다. 양자 중첩과 얽힘을 이용한 것. 양자 컴퓨터 클라우드를 활용해 난제를 푼다.

세번째 악장에서 AI가 다시 등장한다. 이번엔 독성(toxicity) 예측이다. 아무리 효과가 좋아도 간(肝)독성, 심장(心臟)독성이 있으면 약이 될 수 없기 때문. 마찬가지로 뇌혈관 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면 뇌(腦)질환 치료제로 쓸 수 없다.

AI는 수십만 건의 독성 데이터를 학습해서, 새로운 화합물의 독성을 30초 만에 예측한다. 20개가 최종 10개로 좁혀진다. 이제 실험실에서 실제로 합성해볼 '황금 후보'들이다. 기존 방법에 비하면 혁명적이다.

"경계를 넘나든 덕분"

우상욱 대표의 이력은 아주 독특하다. 연세대에서 생화학을 전공했지만, 석사 과정에서 돌연 물리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생명 현상을 근본부터 이해하고 싶었어요. 단백질이 왜 이렇게 접히는지, 효소가 왜 저렇게 작동하는지... 화학만으로는 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건 물리학의 영역이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고, 노스캐롤라이나대(UNC)에서 계산생물물리학(Computational Biophysics)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분야다.

팜캐드 우상욱 대표(부경대 교수)는 생화학과 물리학, 연구원과 학자, 또 교수와 경영자로 다양한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런 이질적인 경험과 지식이 AI와 양자컴퓨팅, 그리고 신약 개발을 융합하는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게 했다. 사진=팜캐드

"그때 깨달았죠. 생명을 이해하려면 물리, 화학, 생물학, 컴퓨터과학이 다 필요하다고요. 경계를 나누는 게 의미 없었어요."

귀국 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연구원으로도 일했다. 물리학자에게 디스플레이는 매력적인 분야다. 액정의 광학적 성질, 분자 배열…. 여기도 물리학이 핵심이다. 거기서 산업 현장도 배웠다.

2014년, 부경대 물리학과 교수가 됐다. 그리고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때 창업도 결심했다.

"모더나가 mRNA 백신 개발에 양자컴퓨팅 활용을 검토했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바로 이거다!' 싶었어요. 양자컴퓨팅과 AI를 결합하면 신약 개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올랐죠."

두려웠지만, 확신이 그를 밀어올렸다. 또 한 번 '경계인(境界人)'의 삶이 시작됐다.

"여러 차례 이질적인 경계에 서 있어보니까 남들이 못 보는 게 보였어요. 대부분의 AI 신약 회사는 컴퓨터 과학자들이 만듭니다. 빠르고 효율적이지만 물리적 타당성은 약할 수 있어요. 반대로 물리학자들은 정밀하지만 실용성이 떨어지고요. 저는 그 중간 어디쯤에 있겠죠."

10년 후, 신약 개발 현장은

AI와 양자컴퓨팅은 각자의 타이밍에, 각자의 방식으로 작동한다. 중요한 건 순서와 밸런스다.

"AI를 너무 많이 쓰면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양자만 쓰면 너무 느려서 실용성이 없어요. 둘의 비율과 타이밍을 맞추는 게 핵심이죠."

예를 들어, 초기 스크리닝 단계에서는 AI가 90% 역할을 한다. 빠르게 대량의 화합물을 거른다. 하지만 정밀 계산 단계에서는 양자가 80% 이상을 담당한다. 물리적 정확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좋은 지휘자는 연주자를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예요. 각 기술이 빛나는 순간을 기다리고,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아닐까요?”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양자컴퓨터는 여전히 오류율이 1~0.1% 수준이다. AI도 가끔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낸다. 하지만 그 방향은 확신한다.

팜캐드의 하이브리드 신약개발 플랫폼 '파뮬레이터'. 사진=팜캐드

"이제 누구도 '양자컴퓨팅 신약 개발은 이론일 뿐'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화합물을 만들고, 효과를 입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서곡' 단계였어요. 본 공연은 이제 시작입니다."

우 대표는 지금도 부경대 연구실과 팜캐드 사무실을 바쁘게 오간다. 하루 일정이 정말 빡빡하다. 하지만 그는 5년 후, 10년 후 신약 개발 현장을 떠올린다. 아니 그보다 훨씬 빨리 우리 앞에 펼쳐질 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AI와 양자 없이 신약 개발하는 걸 상상도 못 할 겁니다. 마치 지금 손으로 계산하거나, 편지 쓰는 게 이상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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