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증가가 백신 때문이라고?

부모 연령과 조산아의 증가·진단 기준 확대·인식 향상 등 복합 작용

과학자들은 부모 연령 및 조산아의 증가, 진단 기준 확대, 인식 향상 등으로 자폐아가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8일 NBC 방송의 ‘미트 더 프레스’에 출연해 자폐아들이 늘고 있는 이유가 백신 때문일지도 모른다며 “누군가가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수십 건의 과학적 연구에서 이미 신빙성 없다고 밝혀진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자폐아 증가의 원인은 다른 데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해 5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자폐증 진단을 받는 어린이가 2000년 150명 중 1명에서 36명 중 1명으로 늘어났다고 보고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자폐아의 증가가 자폐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진단 기준이 확대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유전적, 환경적 요인의 변화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은 자폐증의 원인이 단일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폐증 발병 증가의 원인도 단일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질문의 핵심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폐증의 특성을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그러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일까? 둘 다인 것 같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파악하기 어려운 원인

자폐증과 관련된 유전자는 100개 이상이지만, 자폐증은 유전적 감수성과 환경적 유발 요인의 복잡한 조합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CDC는 자폐증에 기여할 수 있는 위험 요인에 대한 대규모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오염, 독성 화학물질 노출, 임신 중 바이러스 감염 등 수십 가지 잠재적 원인을 조사했다.

그런 연구 중 일부에 따르면 나이 많은 부모, 특히 나이 많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아기일 경우 자폐증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조산이나 저체중 출생이 자폐증과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 이는 종종 높은 산화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자폐증의 컴퓨터 시스템 생물학을 연구하는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대의 유르겐 한 교수는 이러한 요인들이 모두 자폐증의 전반적 증가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부모의 평균 연령이 증가하고 있고 조산아로 태어나 생존하게 된 아동의 수도 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폐증의 원인을 검증하려면 초기 발달에 미치는 다른 수많은 영향을 통제하고 일부 사람들이 진단을 받는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를 추적해야 한다. 한 교수는 “때로는 모른다고 말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제멋대로) 추측의 여지를 주게 된다”고 했다.

백신이 이 질환의 원인이라는 잘못된 이론은 그러한 추측의 한 예다. 이 이론은 1990년대 후반 영국의 의사인 앤드류 웨이크필드 박사가 홍역, 볼거리, 풍진 백신과 자폐증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12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덴마크 전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포함해 많은 대규모 연구에서 이 가설이 근거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백신의 종류, 성분 또는 접종 시기에 관계없이 연구자들은 연관성을 입증하지 못했다. 웨이크필드 박사의 논문은 철회됐고 그는 의사 면허도 취소됐지만 이미 사회적 담론에 씨앗이 뿌려진 뒤였다.

진단 범위의 확대

자폐증 사례의 급증의 확실한 한 가지 요소는 스펙트럼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자폐증은 1980년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3판에서 처음 등장했다. 1987년 30개월 이후에 증상이 나타나는 아동을 포함하게 되면서 그 정의가 바뀌었다. 이때 자폐증 진단 기준은 6개에서 16개로 확대했으며, 아동이 종전의 6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열된 16가지 기준 중 절반만 충족해도 자폐증으로 진단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1997년에 발간된 DSM 4판에서는 한 가지 관심사에 집착하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자폐 스펙트럼에 포함시켰다. 이는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이 진단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변화였다.

2013년에 발표된 5판에서는 임상의가 자폐스펙트럼장애(ASD)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통합 진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 및 PDD-NOS(달리 명시되지 않은 전반적 발달 장애의 약자)를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하나의 진단명으로 통합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자폐증 연구센터의 사이먼 바론-코언 소장은 “우리가 자폐증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더 넓은 범주로 바뀌었다”며 “진단을 제공하는 임상의가 증가하면서 자폐증은 하나의 산업이 됐다”고 지적했다.

인식 향상

이렇게 임상 과정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인프라도 발전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자폐증 환자들이 시설에 수용돼 있었기 때문에 부모들은 자폐증의 특징적인 특성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자녀에게 자폐증이 발생해도 이를 인지하거나 진단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991년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동이 학교에서 특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부모들이 진단을 받고 이를 수용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미국 소아과학회는 모든 아동에게 18개월과 24개월에 자폐증 검사를 받도록 권장했다. 전문가들은 이로 인해 자폐증 발견이 크게 증가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추세 변화는 자폐증에 대한 인식과 포용이 급증의 배경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추가한다. 역사적으로 남아는 여아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자폐증 진단을 받아왔다. 이는 사회적 규범 때문에 여아들이 자폐증 증상을 감추려고 했던 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신경질환을 정상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신경다양성(neurodiversity)의 시대가 되면서 성별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

아마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0년 동안 자폐증 진단율의 상대적 증가가 어린이가 아닌 26세~34세 성인 사이에서 가장 컸다는 점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처음으로 진단을 받았다.

바론-코언 소장은 또한 소셜 미디어의 영향력을 “자폐증 진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셜 미디어가 “자신이나 자녀가 자폐증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새로운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자폐증 진단 도구와 종단 연구를 개발한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의 캐서린 로드 교수(심리학)는 “이 모든 것이 자폐증 증가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다소 무리”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그는 수많은 관련 연구를 토대로 자폐증 유병률 증가가 아동기 예방접종과 무관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백신은 아니다”라고 그는 단언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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