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세계 최정상 ‘우뚝’ 한국 학술지는?

[Voice Of Academy 15-학회열전] ‘국민병’ 극복의 역사 대한간학회

국제학술대회 리버위크 2024(The Liver Week 2024)가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간질환 연구와 실전의 정밀의학을 향하여' 주제로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열렸다. 심주현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대한간학회]
대한간학회(이사장 김윤준)는 지난 6월 정회원들과 언론사 기자들에게 언뜻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했다. 학회의 공식 학술지 《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가 과학인용색인(SCIe)에 등재된지 4년 만에 피인용지수(IF) 14점을 기록, 세계의 간 분야 학술지 가운데 미국간학회 학회지 《Hepatology》(12.9)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었다. 대한간학회는 곧이어 연관 학회들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국제학술대회 ‘The Liver Week’를 공동주최했는데, 28개 나라 1195명이 참석해 세계적 위상을 보였다.

대한간학회는 이처럼 학술지와 학술대회의 위상에서 간 분야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 학회로 인정받게 됐지만,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가팔랐고 힘들었다. 국내에선 해방 후 B형 간염이 ‘국민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만연했고, 6.25 전쟁을 거치며 환자가 계속 늘었으며, 간염이 악화돼 발병하는 간암은 얼마 전까지 사망률 1위의 암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처할 의학 연구는 맨바닥에서 출발해 황무지, 비탈길을 거쳐야만 했다.

우리나라의 간염은 6·25 전쟁 때 미국 의료진을 통해 세계 의학계에 알려졌다. 1951년 미군 의무관 월터 폴 해븐스가 전쟁터의 미군 병사 3.4%가 간염에 걸렸다는 보고를 발표했다. 미군 178만9000명이 참전했고 전사 3만6940명, 부상 9만2134명, 실종 3737명이므로 6만 명이 걸린 간염도 외상 못지않게 심각한 전투력 손실을 초래한 것이다. 미군은 이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시작했고 국내 의학자들도 영향을 받았다.

간염 연구하러 군대 재입대한 의사가 첫 회장

대한간학회의 전신인 대한간연구회 설립에는 3명의 의학자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춘원 이광수가 “바보 아니면 성인”이라고 했던 장기려 박사(1911~1995)는 ‘인술과 사랑’에 비해 전공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주특기’는 간 수술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 평양연합기독병원에서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암 덩어리를 간에서 떼내는 수술에 성공했고, 1959년 간암 환자의 간 대량절제술에 성공한 간암 수술의 명의였다. 장 박사는 전쟁 발발 후 부산으로 내려가 ‘부산간연구회’를 조직하고 간연구 바람을 일으켰다.

서울에서 간연구모임을 이끌며 후학을 양성한 한심석 박사(1913~1983)를 빼고 간학회를 논할 수도 없다. 그는 경성제대 의학부 출신으로 서울대병원장, 대한병원협회장을 지냈고 전무후무하게 서울대 총장을 연임했다. 미국 정부가 한국 의료·의학 시스템을 육성한 ‘미네소타 플랜’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에서 간질환을 연구하고 장비를 갖고 귀국, ‘간장학’의 토대를 구축했다. 한 박사의 두 사위는 국내 내과학의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는데 첫째 사위는 간염백신을 개발한 서울대 소화기내과 김정룡, 둘째는 같은 대학 혈액종양내과의 ‘영원한 신사’ 김노경 교수다. 김정룡 교수의 사위는 윤석열 대통령의 주치의로 대장질환 명의인 김주성 교수다.

경북대 의대 출신으로 성모병원장, 세계보건기구(WHO) 바이러스간염 연구소장 등을 역임한 정환국 박사(1922~1999)는 학회의 이론에 구체성의 옷을 입힌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그는 6.25 때 군의관으로 근무하며 미 군의관들과 함께 간염을 연구했으며, 전역 후 간염을 제대로 연구하려고 군대에 재입대했다. 정 박사는 ‘비황달성 간염’의 존재에 대해 세계 최초로 보고했고 논산육군병원에서 군 장병을 대상으로 간 조직검사를 시행하기도 했다.

미군은 6.25 전쟁 후에도 주한 미군이 나중에 만성간염이 악화되는 일이 계속되자 한국에 의학자들을 파견했다. 정 박사는 미8군 육군의학자문위원인 윌리엄 버츠 중령의 도움으로 병리학적으로 간세포를 분석했고, 406의무시험소의 알프레드 프린스 대위와 바이러스에 대한 공동연구를 했다.

한 교수는 1956년 런던 국제소화기병학회에 참석했다가 학술모임의 필요성에 대해서 절감했고, 1961년 정 박사는 서울 수도육군병원에서 미국 마운트사이나이 의대 한스 포퍼 교수의 강연을 듣고 제자를 자청, 미국에서 연수를 받고 귀국해서 간학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소화기내과 의사들은 1961년 창립된 대한소화기병학회의 간 연구 학술모임을 중심으로 간 질환 연구를 하다 간질환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모임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1964년 서울 간연구모임과 부산간연구회 회원들이 모여 국제간연구회 한국지회를 만들었지만 지속적으로 연구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1981년 5월 23일 장기려, 정환국, 유방현(부산대), 오인혁(서울대), 김정룡, 김부성 교수(가톨릭대)가 유성관광호텔에 모여 ‘한국간연구회’ 준비 모임을 가졌고, 6일 뒤 서울 종로구 관철동 맥줏집 ‘낭만’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회장은 정환국, 총무 김부성, 학술 이혁상, 재무 서동진 체제로 출범했다. 연구회는 그해 국제간학회에 가입했다. 초기엔 간담도 질환에 대한 논문을 5편 이상 발표하고 정회원 2명의 추천을 받고 심사 후 평의원회 인준을 거치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 회원을 받았다. 연구회는 이듬해 2월 서울 국제 간심포지엄을 개최했는데 한스 포퍼, 영국의 실라 셜록 교수 등 세계 석학들과 국제간학회 역대 회장 8명 중 7명이 참석, 한국의 간 연구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보여줬다.

대한간학회 회원들이 2020년 제21회 간의 날을 맞아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간학회는 2030년까지 C형간염퇴치를 위한 선포식을 진행하고 학회의 비전과 전략을 공유했다. [사진=대한간학회]
1995년 대한간학회로 업그레이드

연구회는 1995년 선희식 회장(가톨릭대) 재임 때 마침내 대한간학회로 ‘업그레이드’ 했다. 학회는 그해 말 대한간학회 추계 학술대회 및 제1차 총회를 열었으며 그 무렵 학회지 ‘Korean Journal of Hepatology’를 발간했다. 학회는 2004년 학술대회를 아시아태평양 국제간심포지엄으로 승격해 매년 개최하고 있다.

1998년 그락소웰컴(현 GSK)이 세계 최초로 B형 간염 치료제 라미뷰딘을 개발한 데 이어 국내 시판 승인을 받으면서 학회 발전에도 디딤돌이 됐다. 학회 회원들은 난치병이었던 간염을 본격 치료하기 시작했다. 제약사 후원으로 연 3만 달러 지원하는 ‘해외연수장려상’과 당시 국내 최고 수준 상금을 수여하는 ‘학술논문상’이 신설됐고, 대한간학회지에 최우수논문상도 새로 만들어졌다. 학회는 그해 학회지 색인을 전산화하고 홈페이지(www.kasl.org)를 열어 인터넷과 IT 기술의 확산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었다.

의학계에서 손꼽는 대한간학회의 장점은 타 학회와의 협력. 2016년부터는 관련 학회와 함께 영어로만 진행하는 국제학회 ‘The Liver Week’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최근엔 C형 간염 진단을 건강검진 항목에 넣고 간경변증 환자의 보험 범위를 넓히기 위해 관련 학회와 수시로 대화한다. 학회는 2011년엔 한국간재단을 출범시켜 다기관공동연구·교육·학술대회 지원과 시민· 환자 대상 교육과 홍보 활동 등을 전개하고 있다.

학회의 가장 돋보이는 성과는 뭐니뭐니해도 영문 학술지의 성공. 2012년 김창민 이사장(국립암센터) 체제에서 국제학회로서의 위상을 굳히기 위해 대한간학회지의 공식 영문 명칭을 ‘Korean Journal of Hepatology’에서 ‘Clinical and Molecular Hepatology(CMH)’로 변경했을 때 “시기 상조다,” “국내 연구는 어디에 발표하나?” “해외 연자가 왜 우리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겠냐?” 등 반발도 적지 않았다. 그러다 2019년 과학인용색인(SCIe)에 등재되며 안착에 성공했고 지난해 세계 수위 학술지로 올랐다.

김윤준 이사장은 “개방과 공정의 원칙이 성공의 열쇠”라고 소개했다. 논문 선택에서 편견을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게재료를 낮춰 경제적 부담 때문에 발길을 돌리는 것을 막았다. 재정이 약한 국가의 학자가 민간기업의 펀드를 받고 연구한 것에 대해서도 족쇄를 풀었다. 대신 세계적 권위의 학자들로 편집위원회르 구성해 학술과 연구의 품질에 초점을 맞춰 투명하고 객관적 틀 안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논문을 선정했다. 이런 학술지의 노력이 입에서 입으로 퍼지더니 20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논문을 게재할 수 있게 됐다.

CHM의 김원 편집장(서울대 의대 보라매병원)은 “이슈가 되는 최신 주제들을 다루고 국제 편집위원회의 투명하고 깊은 회의를 통해 다양한 전략을 개발한 것이 학회지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면서 “대한간학회 중심으로 세계의 간 질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연구와 진료를 선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성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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