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 치료와 존엄사..간병에 지친 삶

[김용의 헬스앤]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은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 위해 2018년 도입됐다. [사진=게티이미지]

이번 추석에도 명절의 즐거움을 제대로 못 누린 가정이 있을 것이다. 추석 내내 집에서 중환자를 간병한 사람들은 한숨 소리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간병의 어려움은 새삼 얘기할 필요가 없다. 긴 병에 효자 없고, 간병하다 골병든다는 말이 있다. 환자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정신이 멀쩡한 뇌졸중, 파킨슨병 환자는 간병하는 가족에게 늘 미안함을 느낀다. 침대에 누운 채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자신이 답답하고 미울 것이다.

딸에게 아버지가  “내가 죽게 도와달라”고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소피 마르소, 앙드레 뒤솔리에 주연의 프랑스 영화 ‘다 잘된 거야’(Everything Went Fine-2021년 제작)는 안락사를 다루고 있다. 딸(소피 마르소)은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소원한 관계이지만 진심으로 건강 회복을 기원한다.

85세인 아버지는 뇌졸중 후유증으로 몸의 마비 증상이 심해진다. 식사도, 대화도 제대로 못 한다. 평생 품위를 소중히 여겨온 아버지는 남들이 자신의 망가진 모습을 볼까 봐 노심초사한다. 딸은 어느 날 병원을 찾았다가 아버지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다 끝내고 싶다… 도와주렴”… 딸은 놀라 뛰쳐나가고 아버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딸은 고민 끝에 아버지를 돕기로 한다. 스위스의 한 안락사 업체에 연락이 닿아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런 장면은 현실 속에서도 존재한다. 바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88)의 얘기다. 지난 3월 그가 안락사를 결심했다는 보도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순간을 결정하면 아들에게 임종을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세기의 미남’은 마지막 가는 길까지 품위를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알랭 들롱은 2019년 뇌졸중 수술 후 안락사가 가능한 스위스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알랭 들롱이 선택한 ‘안락사’는 정확히 말하면 ‘의사 조력 사망’이다. 말 그대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의사가 직접 치명적 약물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안락사는 환자의 죽음을 인위적으로 앞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최종 결정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고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사 조력 사망’은 불법이다. 지난 6월 국회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법이 발의됐지만 갈 길이 멀다. 독극물 처방은 의사가 하지만 이를 복용 또는 투약하는 주체가 환자 본인이란 점에서 안락사보다 소극적 개념에 속한다. 안락사(조력자살 포함)는 현재 스위스, 네덜란드 등 7개국에서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도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안락사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이다.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면 적극적 안락사, 의사가 처방한 치명적인 약물을 환자가 복용하면 소극적 안락사(조력자살)에 해당한다.

나는 ‘의사 조력 사망’은 우리나라에서 아직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먼저 2018년 2월부터 도입된 ‘연명의료결정법’이 완전히 정착된 후에 검토해도 늦지 않다. 이는 안락사와 달리 존엄사 법으로 불린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법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간병 문제는 중년, 노년의 안정된 노후를 위협하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간병비만 월 400만~500만 원에 이른다. 장기간의 간병비 마련을 위해 집까지 팔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런데도 환자는 매일 고통 속에서 신음한다. 욕창을 막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뒤집어 줘야 한다. 온몸에 주렁주렁 기계장치를 달고 간신히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에 의존하는 말기 환자를 보면 인간의 ‘존엄’이나 ‘품위’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다. 매번 국내 여론조사 때마다 소극적 안락사에 대한 찬성이 높은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향후 임종 과정에서 소생 가능성이 없을 경우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전의향서 작성자가 약 140만 명이다. 지금은 건강한 사람이 향후 연명 치료 거부의사를 밝힌 것이다. 오랜 간병에 지친 가족들은 환자가 베풀었던 사랑과 소중한 추억이 사라질까 고심한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과 ‘품위’를 지키기를 기대한다. 존엄사, 안락사를 떠올리기 싫어도 엄연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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