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배우면 뭐해? 자칫하면 ‘덤터기’

심폐소생술 배우면 뭐해? 자칫하면 ‘덤터기’

 

한 동네병원 대기실에서 83세의 노인 김모(가명)씨가 간식으로 떡을 먹다 목구멍에 걸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김씨는 떡으로 인해 기도까지 막혀 질식 상태로 온몸이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주위 사람이 발을 동동 구를 때 흰 가운을 입은 사람이 황급히 뛰어왔다. 의사 이모씨는 곧바로 응급처치(하임리히 법)를 시도했다. 목구멍에 걸린 떡을 빼내기 위해 가슴부위 압박 동작을 몇 차례 반복한 것이다.

그러자 목구멍에서 떡 세 덩이가 빠져 나왔다. 의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는 김씨를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옮기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다음 날 김씨의 ‘생명의 은인’인 이 의사는 감사의 말은커녕 항의에 시달려야 했다. 김씨의 아들이 “어떻게 응급처치를 했길래 아버지의 갈비뼈가 부러졌느냐”’며 거칠게 몰아부친 것. 의사는 아들에게 가슴부위에 상당한 압박이 가해지는 하임리히법 처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상황은 그렇게 순조롭게 마무리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한 달 후 그는 극심한 허탈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김씨의 갈비뼈 골절은 의사의 응급처치가 잘못돼 발생한 의료과실이기 때문에 진료비를 전액 보상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의사 이씨는 이 같은 경험담을 ‘의사, 그들은 죄인인가?’라는 제목으로 한 의사 포털에 올려 수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다. 이는 우리나라의 응급처치의 현실과 간극을 볼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섣불리 나섰다간...”

일반 시민이 응급상황에 놓인 심정지 환자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해 생명을 살린 훈훈한 소식들이 이어짐에 따라 심폐소생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모 의사의 사례처럼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의 사건이 잇따라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응급처치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응급상황에 놓인 환자를 살렸다가 후유증이 있을 경우 오히려 막대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돕다 오히려 법정공방을 벌이는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이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떠올릴 수 있다.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지 않은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다. 신약성서에서 강도를 당해 길에 쓰러진 유대인을 보고 당시 사회의 상류층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모두 그냥 지나쳤으나 유대인과 적대 관계인 사마리아인이 구해주었다는 기록에 유래되었다고 한다.

세계 일부 국가에서는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행위를 구조 거부죄로 처벌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법상 불구조죄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에선 응급처치를 하다 과실로 피해를 입혔더라도 면책해주는 착한 사마리아 조항을 응급의료법에 담고 있다. 선의는 권장할 일이지 처벌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움 주기’를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도움을 준 사람이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내 응급의료법의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에 따르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해당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감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위의 사례처럼 갈비뼈가 다치는 경우에는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있지만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면책’이 아니라 ‘감면’이라는 것이다.

경상대학교 법학과 정도희 교수는 이와 관련해 ‘선의의 응급의료의 형사책임의 검토’ 논문에서 “선의의 뜻으로 일반인이 응급처치를 시행했더라도 결과적으로 잘못돼 환자가 사망하게 된다면 형사책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다”라고 해석했다.

일부의 우려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무조건 도와줬다가 만에 하나 잘못되면 형사책임의가능성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는 것이다.

법적으로 응급상황 도와야 할 의무가 없다

‘오히려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일반인의 의식은 우리나라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이 위급상황에서의 도와줄 의무를 법적으로 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급상황에 처한 사람을 못 본 척 지나치면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 있게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실제로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친 것이 입증이 되면 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같은 나라는 3개월 이하의 구류에 처하며 체코, 이디오피아는 6개월 이하의 구류, 독일, 그리스, 헝가리, 유고슬라비아는 1년 이하의 징역, 프랑스에서는 최고 5년이하의 징역에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마련돼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못 본 척 지나치거나 혹은 (책임지기 싫어) 고의로 피하는 경우에도 그 잘못을 따질 수 없도록 돼 있다. 혹시나 발생할 지도 모를 최악의 상황(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에 처하는 것보다 애초에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마음이 들게 하는 ‘법적 근거’인 셈이다.

법무법인 세승의 김선욱 의료전문변호사는 ”그 누구라도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지만, (관련 직업에 따른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응급상황에서 일반인이 도움을 반드시 줘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강요하기는 힘들다”며 “다만 법을 떠나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자발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의료인의 응급상황 개입마저도...

지난해 9월 중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자. 한 환자가 병원 로비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주위를 지나가던 의사나 간호사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골든 타임 4분이 훌쩍 지난 7분이 경과한 후 다른 의사가 심폐소생술을 2분간 실시했다. 별 효과가 없자 그마저도 가버렸다. 환자는 계속 로비에 누워있었고 결국 발작 후 12분만에 숨졌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중국 내에서는 충격에 휩싸여 의료진의 잘못을 질타하고 도덕성과 인간성을 거론하며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럼에도 병원의 입장은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아무리 의사라도 사명감이 투철하고 고매한 희생정신을 갖고 있지 않은 한,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 이러한 응급상황에서 환자를 구하려면 법적인 책임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령 환자를 살려도 환자와 보호자 측에서 구조 요청을 한적이 없으니 비용을 책임져라 하면 의료진이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생명을 살린 결과와는 상관 없이 부적절한 치료 행위로 간주돼 벌금을 내거나 사직해야 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같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아 위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했지만,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실제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조항이 시행 되고 있는 미국도 의료인이 위급상황에 개입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이 심하다. 법적으로 일반인의 개입보다 의료인의 개입에서 더 무거운 책임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또한 의료인은 의료전문가로서 응급상황에 있어서 과실 여부를 따질 때 더욱 엄격한 판단을 받을 수 있다.

처음 사례에서 할아버지의 질식사를 막기 위해 응급처치를 한 의사의 경우에도 갈비뼈 골절에 대해 잘못이 없음을 입증하고 보상 의무가 없다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다른 의사들은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이 있다지만 환자와 보호자들이 막무가내로 나오면 의료인으로서 보상 책임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이 경우, 의사 본인도 경제적 이득과 법률적 이득을 따져보겠지만, 법으로 면책을 받기 위해 소요될 시간적-경제적-감정적 손실을 감안할 때 환자에 그냥 보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상황이든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응급처치를 해서 환자를 살리는 데 사력을 다하겠지만 전체적으로 의료진의 의식을 고려했을 때는 확실히 예전보다 머뭇거리는 현상을 볼 수 있다”며 “일반인의 상황과는 달리 전문 의료인이 나선 위급상황에서의 불상사는 그 책임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이 있다 해도 의료진에게는 사실상 유명무실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며, 결과적으로 잘못되면 어떤 상황이든 간에 의료진은 의료소송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했다.

    정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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