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양심 살아있도록 우리가 지킵니다”
[메디컬 보스] 서상수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 회장
7~8년 전 한 여인이 남편, 어린 딸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남편의 과실로 교통사고가
났다. 남편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여인은 중상을 입었다. 딸도 크게 다쳤는데
세 가족은 각각 다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의식에서 깨어난 여인은 그때서야 남편이
사망한 것을 알았고, 딸이 있는 병원으로 가 상태를 확인했더니 신체 마비상태였다.
몇 달 후 이 여인은 딸이 수술 중 의사의 과실로 신체 마비가 된 것을 확인하고
병원을 상대로 의료소송을 냈다. 입증이 어렵고 난관이 많은 소송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소송에서 이겼다. 그러나 비극은 다시 찾아왔다. 법 집행이 있을 찰나 해당
병원 대표가 미국으로 도망쳐버린 것이다. 결국 이 모녀는 의료소송에서 이겼지만
보상액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지금은 거의 반불구가 된 딸과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이 여인의 당시 사건을
맡았던 종합법률사무소 서로의 서상수 변호사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안타깝다.
서 변호사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며 “소송에 이겼지만
보상액을 받지 못하는 사례들을 볼 때 구조적으로 개선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이상 이런 억울한 피해자가 나오질 않으려면 의사, 병원의 양심과 더불어
법적 양심 또한 잘 정립돼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매년 의료소송 건수 증가에 늘어나는 의변 역할
매년 한국의 의료소송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이는 의료 사고에 대한 환자와 의사의
입증 책임 또한 반반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다.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의료 전문 변호사들의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상수 변호사가 이끄는 ‘의료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이하
의변)’ 활동이 주목되는 배경이다.
지난 4월 27일 의변 소속 변호사 11명, 시민단체 관계자 7명이 참석한 자리에서
정식 간담회가 처음 열렸다. 2007년 의변이 공식 발족된 뒤 첫 간담회였다. 의료
소송 전문 변호사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는 의료사고에서부터 보건의료정책 방향에까지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겠다”
의변은 의료 문제를 약자의 입장에서 짚어보자는 차원에서 일본의 의료문제변호인단과
비슷한 성격으로 시작됐다. 2004년 12월 법률사무소 해울의 신현호 변호사가 일본
의료문제변호인단과 유사한 목적으로 의료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들의 모임을 처음
구상했다. 같은 사무소의 이인재 변호사는 신 변호사의 구상에 동의했고 의료소송을
주로 하는 변호사 40명 정도에게 ‘의료 문제를 생각하는 변호사의 모임’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처음 준비할 당시 모인 변호사는 11~13명에 그쳤지만 2007년 공식 발족 뒤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집행부를 구성해 현재는 40명이 넘는 변호사가 참가하고 있다. 의료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모임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의변은 의료소송에 관한 내용, 의료전문 감정기관의 필요성과 가능성, 현 현행
한국 의료법의 문제점, 의료분쟁의 해결 같은 전문적인 내용을 비롯해 실제 판례를
통한 정보 등을 교환하는 자리를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갖고 있다.
서 변호사는 “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변호사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성격으로 의변의 성격은 중립”이라며 “약자를 위한 중립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의료사고를 당한 환자 입장에 주로 서지만, 보상에 눈이 어두워 억지 주장을
하는 환자나 보호자에 골치를 썩는 의료인들 편에도 설 수 있다는 말이었다.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의료 사고
서 회장이 의료전문 변호사로 일한 지도 10여 년이 지났다. 우연한 기회에 의료
관련 소송을 맡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의료전문 변호사의 활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이 분야 저 분야를 따지지 않고 변호사가 복합적으로 소송을 맡던 시절이었다.
그는 의료사고가 많이 일어나는데 피해자를 도울 법률 파트너가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앞으로 전문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질 텐데…. 약자를 위해 누군가는
꼭 필요했다. 그리고 현재 그의 활동은 폭넓다.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의료사고
소송을 비롯해 희귀 난치성 질환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법률 문제들까지 다룬다.
서 회장은 현재 ‘여울돌’이라는 희귀난치병 어린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희귀병과 싸우는 어린이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 나눠주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많은 의료 소송을 맡아오면서 안타까운 사연이 많은데 대부분 약자는 환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환자는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소송을 한 건 맡으면 몇 개월은 꼬박 그 일에만 매달려야 한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판단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피해자의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에 대한 이해는 물론 환자의 고통까지 이해해야 의료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뤄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환자 시대엔 전문변호사 역할 더욱 중요
5월1일부터 본격적인 외국인 환자 유치 및 의료관광이 시작됐다. 서 회장은 앞으로
의료전문 변호사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해외 환자가 국내
병원에서 치료 받다 생길 수 있는 의료사고 등에 대비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며
“자칫 사망 사건이 발생하면 국가 간 갈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변에 속한 변호사들은 때론 소송 상대방으로, 때론 공동대리인으로 법정에 선다.
그러면서 개방적인 모습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서 회장은 “앞으로 환자와 의사의
억울함을 밝히는 것 외에도 의료관련 법률이나 건강보험 제도의 개선 같은 폭넓은
현안 해결에도 앞장서겠다”고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