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7일 (목)

"기분 탓 아니었다"⋯임신 중 자꾸 깜빡하는 진짜 이유 나왔다

美·中 연구팀, 동물실험서 인과관계 확인⋯사람에게도 같은 연관성 나타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임신부의 80%는 임신 기간 중 건망증을 경험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는 여성호르몬의 영향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임신하고 나서 왜 이렇게 건망증이 잦아졌지?”

임신부가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거나, 하려던 일을 순간적으로 떠올리지 못하는 경험을 ‘임신성 건망증’이라고 한다. 영어권에서도 ‘임신 뇌(pregnancy brain)’ 또는 ‘맘니지어(엄마를 뜻하는 ‘Mom’과 건망증을 뜻하는 Amnesia의 합성어)’ 등 이같은 증상을 가리키는 표현이 흔하다.

임신성 건망증은 몸의 호르몬 변화와 수면 부족, 피로, 심리적 부담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뇌가 과부하를 겪는 현상이다. 임신부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며, 대부분 출산 후 수개월 내 자연적으로 호전되기 때문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임신성 건망증은 임신부의 80% 이상이 겪는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로 흔한 증상이지만, 어떤 원리로 건망증이 생기는 지에 대해서 의학적으로 검증된 적은 없다.

이와 관련, 미국 베일러 의대와 중국 산둥대병원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팀은 “임신 중 크게 증가하는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이 뇌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불리틴(Science Bulletin)》에 지난달 발표했다.

임신하면 올라가는 여성호르몬이 기억력에 영향을?

연구팀은 먼저 동물 실험을 통해 임신이 기억력에 미치는 영향을 살폈다.

임신한 암컷 생쥐와 임신하지 않은 생쥐의 기억력을 비교한 결과, 임신한 생쥐는 △새로운 물체를 기억하는 능력 △물체가 있던 위치를 기억하는 능력 △공간을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 등 여러 분야의 기억력 검사에서 더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단순히 임신 때문에 몸이 무거워졌기 때문에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전체 이동거리나 수영 속도 등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여성호르몬이 기억력을 떨어뜨렸을 것’이라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이번에는 임신하지 않은 생쥐에게 임신 때처럼 높은 수준의 에스트로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도록 했다. 이렇게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인 생쥐는 임신 생쥐와 비슷한 수준으로 기억력·공간 학습력이 떨어졌다.

생쥐들의 에스트로겐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온 뒤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같은 검사를 반복하자, 점수 차이가 사라졌다.

사람에게도 ‘연관성’은 나타나

연구팀은 동물 실험을 바탕으로 에스트로겐이 시상하부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론했다.

뇌의 시상하부는 배고픔, 수면, 체온 등 몸의 기본적인 생리 기능을 조절하고 호르몬 활동을 연결하는 부위다. 그중에서도 외측 시상하부에는 신경세포의 흥분을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많이 존재한다.

이번 동물 실험에서 생쥐가 높은 에스트로겐에 노출되면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신경전달물질이 보내는 신호가 너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저장하는 뇌의 ‘해마’ 부위의 활동을 방해하는 결과가 관찰됐다.

실제로 연구팀이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생쥐의 외측 시상하부 신경전달물질 활동을 억제했더니 기억력 저하가 완화됐다. 반대로 정상 생쥐에서 같은 신경회로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어서 연구팀은 사람에게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확인하기 위해 23~40세 임신부 35명과 비임신 여성 35명을 모집했다. 임신 중 세 차례에 걸쳐 각각 기억력과 인지기능을 검사했으며, 검사 때마다 호르몬 수치를 측정했다.

그 결과, 단어를 듣고 기억하는 검사나 숫자를 순서대로 연결하는 검사 등 기억에 많이 의존하는 일부 과제에서 임신부의 수행 능력이 떨어졌다. 이런 경향은 특히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지는 임신 4~8개월 차에 두드러졌다.

반면 공간추론과 논리적 사고 등이 필요한 퍼즐 등 기억력 이상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복잡한 과제에서는 두 집단간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임신부들의 인지 기능 자체가 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기억력에 일부 영향이 나타났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과다.

연구팀은 “동물 실험에서는 인과관계가 분명히 확인됐고, 사람에게는 연관성만 확인된 정도”라면서도 “에스트로겐이 기억력 저하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임신성 건망증이 생물학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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