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암에는 어떤 항암제가 더 잘 들을까. 환자마다 다른 암의 특성을 인공지능(AI)이 읽어 치료 반응을 미리 가늠할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가 나왔다.
약물을 넣은 뒤 암세포 속 단백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학습한 AI ‘가상세포’가 실제 유방암 환자의 치료 전 조직에서도 이후 치료 경과와 연관된 신호를 찾아냈다. 물론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항암제를 직접 골라주는 단계는 아직 아니다. 다만 AI 가상세포를 정밀치료에 활용할 가능성을 한층 넓혔다.
중국 웨스트레이크대 연구팀 등은 ‘프로틴톡스(ProteinTalks)’라는 AI 가상세포 모델을 개발한 연구 결과를 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약 넣은 뒤 6·24·48시간⋯단백질 변화 3800만건 학습
이번 연구는 암세포의 한순간 모습만 보지 않았다. 약물을 넣은 뒤 시간이 흐르면서 세포 안 단백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AI에 가르쳤다.
유방암 세포주 18종에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항암제 63종과 약물 조합 59종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16종은 삼중음성유방암(TNBC) 세포주였다.
약물을 넣기 전과 6시간, 24시간, 48시간 뒤에는 5585개 단백질군의 양을 측정했다. 시간대별로 쌓인 측정값은 모두 3800만건을 넘었다.
ProteinTalks는 이 자료를 바탕으로 특정 약물을 처리했을 때 단백질의 양이 어떻게 달라지고, 그 변화가 암세포의 약물 반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학습했다.
여기서 ‘가상세포’는 실제 암세포 하나를 컴퓨터 안에 그대로 복제했다는 뜻은 아니다. ProteinTalks는 약물 자극을 받은 뒤 세포 안 단백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산해 암세포의 반응을 예측하는 데 특화된 AI 모델이다.
처음 본 81개 약물 반응도 88% 맞혀
다음 시험은 AI가 한 번도 보지 못한 약물이었다. ProteinTalks는 학습 자료에 없던 81개 약물에 대한 암세포 반응을 88%의 정확도로 구분했다. 이미 본 약물의 결과를 외운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약물이 들어왔을 때 나타나는 반응까지 상당 부분 짚어낸 셈이다.
약물을 함께 썼을 때 생기는 효과를 가늠하고, 약물 내성과 관련된 단백질을 찾는 데도 모델을 썼다.
다만 88%를 실제 환자에게 잘 맞는 항암제를 찾아낸 비율로 받아들일 수 없다. 실험실에서 배양한 암세포를 대상으로, 학습하지 않았던 81개 약물의 반응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분했는지를 나타낸 수치다.
연구팀은 다음으로 실제 환자에게서 얻은 종양 조직에 모델을 적용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삼중음성유방암 환자 501명에게서 채취한 종양 조직을 분석해 3651개 단백질의 정보를 확보했다.
연구팀은 이 단백질 정보와 환자가 실제로 받은 치료법을 ProteinTalks에 입력해 치료 뒤 경과를 예측했다. 그 결과 모델이 상대적으로 예후가 좋을 것으로 본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사이에서 무재발생존과 전체생존에 차이가 나타났다. 즉 치료 전 종양의 단백질 정보만으로 이후 치료 경과와 관련된 신호를 어느 정도 가려낸 것이다.
다만 ProteinTalks가 여러 항암제 가운데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먼저 골라준 것은 아니다. 이미 치료를 받은 환자의 치료 전 조직과 실제 치료 결과를 비교해 모델의 예측력이 통하는지 확인한 연구다. AI가 고른 약을 환자에게 투여해 기존 치료보다 효과가 좋은지 시험한 임상연구와도 다르다.
왜 삼중음성유방암을 택했나
삼중음성유방암은 암세포에서 에스트로겐 수용체(ER), 프로게스테론 수용체(PR), HER2 등 치료 표적으로 삼는 세 가지 특징이 모두 나타나지 않는 유방암이다.
따라서 ER·PR을 겨냥하는 내분비치료나 HER2 표적치료를 쓰기 어렵다. 같은 삼중음성유방암이라도 암세포의 분자적 특성이 환자마다 달라 어떤 약이 더 잘 들을지 미리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삼중음성유방암은 전체 유방암의 약 15~20%를 차지한다. 최근 면역항암제와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치료 선택지는 늘었지만, 환자마다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치료를 가려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연구팀은 ProteinTalks의 예측이 실제 환자의 암에 가까운 환경에서도 통하는지도 시험했다.
환자 3명의 종양 조직을 실험실에서 입체적으로 키운 ‘오가노이드’, 이른바 작은 모형 종양을 만들었다. 이어 3000개 약물 후보 가운데 각 오가노이드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약물을 ProteinTalks가 먼저 추리게 한 뒤 실제로 약물을 처리해 반응을 확인했다.
그 결과 AI가 우선순위를 매긴 후보 가운데 실제 오가노이드에서 약물 반응을 보이는 약들이 확인됐다. 세포주에서 학습한 정보를 이용해 환자 종양에서 시험할 약의 범위를 좁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아직 연구 단계⋯AI가 항암제 골라주는 건 아냐
이번 연구의 의미는 실험실 암세포에서 학습한 AI가 실제 환자의 종양 조직에서도 치료 결과와 관련된 신호를 찾아냈다는 데 있다.
병원에서 환자의 조직을 넣으면 AI가 최적의 항암제를 골라줄 수 없다. 다른 병원과 환자군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검증이 남아 있다. AI가 추천한 치료를 실제 환자에게 적용했을 때 기존 방식보다 치료 성적을 높일 수 있는지 전향적 임상연구로 확인해야 한다.
이번 연구는 암세포 안 수천 개 단백질의 움직임을 AI가 학습하면 환자의 치료 반응을 가늠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암세포 전체를 컴퓨터 안에 그대로 옮겨놓은 ‘완벽한 가상세포’라기보다, 환자에게 맞는 치료 후보를 좁히는 도구에 한발 더 가까워진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