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선수 박지성, 마라토너 이봉주. 두 사람 다 '평발'이다. 심지어 이봉주 선수는 왼발이 오른발보다 약 4mm 이상 큰 '짝발'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누구보다 많이, 오래 뛰었다.
평발(flatfoot, 편평족)은 정말 문제가 있는 발일까? 오래 걷거나 뛰기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반드시 탈이 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어릴 때부터 양쪽 발이 평평했던 사람과, 멀쩡하다가 성인이 된 뒤 한쪽 발 아치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사람. 겉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전혀 다른 발이다.
후자는 그냥 '평발'로 넘겨선 안 된다. 아치가 내려앉고 뒤꿈치와 앞발 정렬까지 틀어지면서 통증이 커진다. 심하면 오래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진다.
서울부민병원 족부족관절센터 안지용 실장(정형외과)은 8월 30일 대한족부족관절학회 개원의 심포지엄(삼성서울병원 암병원 강당)에서 ‘소아 평발이 지속된 성인 vs. 성인 평발: 치료는 무엇이 다른가'를 주제로 설명했다. 핵심 요지는 “두 평발은 정확한 감별이 중요한 영역”이라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 생기는 ‘성인 후천성 편평족’은 최근 PCFD(Progressive Collapsing Foot Deformity·진행성 붕괴성 족부변형)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아치가 낮은 발이 아니라, 힘줄과 인대, 뼈의 정렬이 통째로 무너지는, 발의 변형이라는 뜻이다. 그냥 놔두면 계속 진행된다, 즉 악화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양쪽이 평평했다면⋯꼭 병은 아니다
평발은 서 있을 때 발바닥 안쪽 세로 아치가 정상보다 낮아지거나 거의 사라진 상태다.
생각보다 많다. 한국 성인 1277명을 조사한 한 연구에서 분석 조건을 충족한 789명 가운데 자신을 평발이라 여긴 사람은 8.8%를 기록했다.
그런데 X선을 찍어 거골-중족골 각도를 평가하자 정작 22.1%가 평발에 해당했다. 자신이 평발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도 숱하게 많다는 얘기다.

그중 소아기부터 이어진 ‘유연성 편평족’은 대개 양쪽에 비슷하게 나타난다. 아치가 낮아도 뼈와 인대, 힘줄이 오랜 시간 그 상태에 적응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경우다. 안 실장은 이를 "낮은 상태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안정된 구조물"이라고 말했다.
이런 경우, 특별한 통증이나 기능 장애가 없다면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박지성, 이봉주처럼 평발이면서도 높은 수준의 운동을 할 수 있는 이유다.
그렇다고 평생 무탈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치가 낮으면 하중과 힘줄·인대에 걸리는 힘의 방향이 달라진다. 오래 서거나 걸으면 쉽게 피곤하고 발과 발목이 아플 수 있다.
중년 이후 다른 변형이 동반되기도 한다. 평발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는 발 전체 정렬과 하중 분포가 서로 영향을 준다는 얘기다.
40, 50대 이후 한쪽 발 아치가 낮아진다?⋯여기서부터 얘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평발이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경우다. 예전엔 멀쩡하다가 중년 이후 한쪽 아치가 점점 낮아지는 경우다. 발 전체에 변형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대개 발목 안쪽 ‘후경골건’(posterior tibial tendon, 발 안쪽 아치를 지지하는 힘줄) 퇴행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후 아치를 붙잡는 인대가 약해지면서 뒤꿈치가 바깥으로 기울고 앞발이 벌어진다. 발 정렬이 점차 틀어지는 것이다.
초기엔 발목 안쪽이 아프고 오래 걸으면 쉽게 피로해지는 정도다. 하지만 변형이 진행하면 통증이 바깥쪽까지 옮겨간다. 내측 통증이 사라졌다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호전이 아니라 병이 더 진행되고 있다는 신호다.

그래서 안 실장이 개원의들에게 가장 먼저 확인하라고 강조한 것은 두 가지다. "언제부터 발 아치가 이렇게 낮아졌습니까?", "양쪽 다입니까, 한쪽 만입니까?"
그는 이 두 질문이 “진단의 절반”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양쪽이 비슷하게 평평했다면 지속형일 가능성이 크지만, 최근 1~2년 사이 한쪽만 눈에 띄게 낮아졌다면 성인 후천성 평발을 의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엔 별반 달라 보이지 않더라도 둘은 의미도, 접근법도, 치료법도 완전히 다르다.
그냥 뒀더니 걷는 것까지 힘들어진다⋯왜 ‘시간 싸움’일까?
PCFD가 계속 진행하면 걷는 기능 자체에 영향을 준다. 정렬이 무너지면 체중을 지탱하고 밀어내는 효율이 떨어진다.
오래 걸을 때만 아프던 것이 평지를 걸어도 피로해진다. 까치발이 어려워진다. 발 바깥쪽 구조끼리 충돌해 통증이 커지고, 발 자체가 점차 굳어간다. 그런 단계에 이르면 일상 생황이 힘들다.
그래서 치료는 시간 싸움이다. 유연성이 남아 있을 때는 관절을 보존하며 교정할 여지가 있지만, 강직성 단계로 넘어가면 선택지가 크게 줄어든다.
초기엔 통증을 줄이고 진행을 억제하는 것이 목표다. 후경골건 염증이 심하면 보행 부츠나 짧은 다리 석고로 일정 기간 쉬게 한 뒤, 보조기와 강화운동, 균형 훈련을 이어간다.
그러나 3~6개월 경과를 지켜보아도 통증이 계속되거나 진행하면 수술을 고려해야 한다. 늦게 발견하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힘줄, 인대, 뼈를 함께 다루는 복합 재건수술이 필요할 수 있어서다.
변형이 진행해 손으로도 교정되지 않는 강직성 단계가 되고 거골하관절 등에 관절염까지 생기면 ‘거골하관절 유합술’이나 ‘이중·삼중관절 유합술’이 필요할 수 있다. 변형이 발목 관절까지 진행하여 관절면이 바깥 쪽으로 기울어질 경우엔 ‘삼각인대 재건’을, 관절이 굳거나 관절염이 동반되면 ‘발목 유합술’이나 ‘인공관절 치환술’까지 검토한다.
신발 깔창부터 생각할 게 아니다⋯‘체중 싣고’ X레이부터 찍어봐야
성인이 된 뒤 발 모양이 변하기 시작했다면 기능성 깔창부터 찾기보다 원인 확인이 먼저다. 누워 있거나 앉아 있을 때는 아치가 남은 것처럼 보이다가 일어서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체중부하 상태의 발·발목 X선으로 아치와 뒤꿈치 정렬, 좌우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다. 필요하면 MRI나 체중부하 CT로 후경골건, 인대 손상과 관절 정렬을 더 자세히 봐야 한다.
[체크리스트] “그럼 내 발은?”⋯한눈에 보는 두 평발의 차이
| 한번 확인해보세요 | Yes | No |
| 어릴 때 사진을 봐도 지금처럼 양쪽 발이 평평했나요? | □ | □ |
| 최근 몇 년 사이 한쪽 발만 더 평평해졌나요? | □ | □ |
| 한쪽 신발 밑창만 유난히 다르게 닳기 시작했나요? | □ | □ |
| 복사뼈 안쪽 뒤편을 누르면 아프거나 붓나요? | □ | □ |
| 뒤에서 봤을 때 한쪽 뒤꿈치가 유난히 바깥으로 기울어 있나요? | □ | □ |
| 한 발로 까치발을 들기 어렵거나 여러 번 반복하면 아픈가요? | □ | □ |
| 예전엔 발목 안쪽이 아팠는데 최근 바깥쪽까지 아프기 시작했나요? | □ | □ |
이 가운데 몇 개가 해당한다고 곧바로 PCFD(후천성 평발)는 아니다. 다만 성인이 된 뒤 한쪽 발이 점점 무너지고 통증에다 보행 불편까지 겹친다면, "그냥 평발이겠지" 하고 무심코 넘길 문제는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진짜 중요한 건 발 아치가 얼마나 낮아졌느냐가 아니다. 어릴 때부터 낮은 채 안정돼 있었는가, 성인이 된 뒤 새로 무너지고 있는가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냥 평발'과 ‘발의 변형’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