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제약·바이오기업의 임상은 국내·초기 단계에 상대적으로 집중돼 있다.
그렇다고 신약 후보물질이나 임상 수행 기반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최근 3년간 국내 기업이 발굴한 후보물질은 1300개가 넘고, 국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글로벌 임상을 수행할 기반도 갖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보를 발굴한 뒤 다국가·후기 임상으로 빠르게 넘길 자본과 개발역량을 한국 바이오산업의 주요 과제로 꼽는다.
강승연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 센터장은 지난 22일 ‘2026년도 제약·바이오헬스 통계포럼’에서 국내 임상의 단계별 분포를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2025년 국내 단일국가 임상 243건 가운데 1상은 190건으로 약 78%를 차지했고, 다국가 임상 425건 가운데 2·3상은 315건으로 약 74%였다. 한국에서 다국가 후기 임상이 상당수 수행되고 있다는 점은 글로벌 후기 임상에 참여할 기반이 갖춰져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기업의 신약 후보물질 자체도 부족하지 않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가 지난 5월 제약·바이오 데이터업체 시텔라인(Citeline) 자료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 기업이 최근 3년간 발굴한 후보물질은 1300개가 넘는다.
결국 문제는 후보물질과 임상 인프라의 ‘존재’보다 이를 국내 기업의 자체 후보물질과 연결해 다국가 2·3상까지 끌고 갈 수 있느냐다. 전문가들도 한국과 중국의 차이가 후보물질 발굴보다 그 이후의 후속개발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본다.
윤희정 KISTEP 바이오혁신전략팀장은 “한국은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는 초기 연구역량 자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면서도 “중국과 비교할 때 가장 큰 차이는 후보물질을 만들어내는 능력 자체보다는 후보물질을 임상에 빠르게 진입시키고, 환자에서 검증해 다음 단계로 넘기는 후속 개발 역량과 규모”라고 설명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도 임상 2상 이후에 병목현상이 있다는 문제를 짚었다. 그는 “한국은 초기 후보물질 발굴까지 능력은 훌륭하지만, 비용이 많이 투입되는 임상단계, 특히 임상 2상 이후를 완주할 만한 자본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했다.
자본력은 후기 임상 수행뿐 아니라 실패 이후 후속 파이프라인의 개발을 지속할 수 있는 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개발속도를 높이는 방법도 단순히 규제기관의 심사기간을 줄이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윤 팀장은 병원 계약과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사, 환자 모집, 다기관 임상 운영까지 전체 과정이 원활하게 연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ND 심사가 빨라도 병원 계약이나 환자 모집 과정에서 지체되면 전체 개발기간을 줄이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글로벌 임상에서도 환자 모집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강 센터장 발표 자료에 따르면 글로벌 의뢰자 주도 임상의 프로토콜당 참여 기관 수는 최근 증가하는 흐름을 보였다. 환자를 더 빨리 확보하기 위해 하나의 임상에 더 많은 기관을 참여시키는 방향으로 임상 운영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임상 수행 기반 자체는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인프라를 국내 기업의 자체 후보물질과 연결해 다국가 후기 임상으로 확장할 수 있느냐다.
중국과 동일한 규모 경쟁을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은 비슷하다. 중국은 대규모 환자와 임상 인프라, 자본을 활용해 많은 후보를 동시에 검증할 수 있는 만큼 한국은 강점을 가진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KISTEP은 중국과 비교한 한국의 강점으로 피하주사(SC) 제형 전환, 장기지속형 약물전달시스템(DDS), 바이오시밀러 개발·생산, CDMO와 글로벌 규제 대응 역량 등을 제시했다.
오 센터장은 “중국의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와 속도에 맞서기는 어렵다”며 “우리의 강점을 활용하고 차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식약처가 규제기관을 넘어 신약개발 기업의 파트너로 역할을 확대해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심사기간을 단축하는 한편 허가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글로벌 임상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민간자본 유입을 위한 혜택과 정부 주도의 후기 임상 펀드가 필요하다”며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임상에 진입할 후보물질을 만들 수 있도록 비임상 단계 R&D 지원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과제는 후보물질 숫자를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미 확보한 후보를 얼마나 빠르게 사람 데이터로 전환하고 후기 임상까지 끌고 갈 자본과 개발역량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