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4일 (월)

한미약품, 로슈 제넨텍에 '차세대 비만신약' 최대 3.2조원 기술수출

위고비·마운자로와 다른 CRF2 표적⋯계약금 2629억원, 임상 2상부터 제넨텍이 개발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한미약품 본사 사진=한미약품

한미약품이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은 지키는 것을 목표로 개발 중인 차세대 비만신약 후보물질을 미국 제넨텍에 최대 3조200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다.

한미약품은 장기 지속형 UCN2(유로코르틴2) 유사체 ‘HM17321’의 독점 기술이전 계약을 로슈그룹 자회사 제넨텍과 체결했다고 24일 공시했다.

HM17321은 비만뿐 아니라 제2형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등 대사질환 치료까지 겨냥해 개발 중인 후보물질이다.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되고 있다.

계약 규모는 총 23억500만달러, 공시 기준 약 3조1892억원이다. 이 가운데 계약금은 1억9000만달러(약 2629억원)다. 임상개발과 허가, 상업화에 성공할 때 단계별로 받는 마일스톤은 최대 21억1500만달러(약 2조9263억원)다. 제품이 출시되면 연간 순매출에 따른 경상기술료(로열티)도 별도로 받는다.

계약금 2629억원…3.2조원 전액 한꺼번에 받는 건 아냐

이번 계약으로 제넨텍은 한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HM17321을 연구·개발하고 제조·판매할 수 있는 독점 권리를 갖는다. 한국은 계약 대상에서 빠졌다.

한미약품은 최대 계약금액 3조1892억원 중에서 계약금 2629억원을 제외한 약 2조9263억원은 임상시험 진전과 허가, 상업화 등 정해진 조건을 차례로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계약금과 조건을 달성해 받은 마일스톤에는 반환 의무가 없다.

이번 계약은 미국 반독점개선법(HSR Act) 등에 따른 행정 절차를 마치면 효력이 생긴다. 계약금 역시 이 절차를 거쳐 계약 효력이 발생한 뒤 받게 된다.

임상시험이나 허가·상업화가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계약은 종료될 수 있다. 이 경우 한미약품이 별도의 위약금을 지급할 의무는 없다고 회사는 공시했다.

공시 기준 최대 계약 규모는 한미약품의 지난해 연결 매출 1조5475억원의 두 배를 웃돈다. 계약금만 지난해 매출의 약 17%에 해당한다.

이번 거래는 한미약품이 2015년 잇따라 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킨 이후 단일 후보물질 기준으로 손꼽히는 대형 계약이다. 앞서 한미약품은 2016년 항암제 후보물질 벨바라페닙을 제넨텍에 최대 9억1000만달러 규모로 기술수출한 바 있다. 이번 계약으로 두 회사는 약 10년 만에 다시 대형 신약 개발에 손을 잡았다.

위고비·마운자로와 작용 방식 달라…인크레틴 아닌 CRF2 겨냥

HM17321은 위고비·마운자로와 작용 방식부터 다르다.

위고비는 GLP-1, 마운자로는 GIP와 GLP-1이라는 장 호르몬의 신호를 이용해 식욕과 혈당을 조절한다. 두 호르몬은 음식을 먹은 뒤 분비돼 인슐린 분비와 포만감 등에 영향을 미치는 ‘인크레틴’에 속한다.

HM17321은 이런 인크레틴 경로를 이용하지 않는다.

몸에서 CRF2 수용체에 작용하는 UCN2라는 물질을 본떠 만들었으며, 약효가 오래가도록 설계했다. 표적은 CRF2(corticotropin-releasing factor 2) 수용체다.

한미약품은 이 수용체를 선택적으로 자극해 체지방은 줄이고 제지방량과 근육 기능은 지키거나 높이는 치료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후보물질을 찾는 과정에는 AI와 구조 모델링 기술도 활용했다. 체중계 숫자를 얼마나 많이 낮추느냐뿐 아니라 살이 빠질 때 몸의 어떤 성분이 줄어드느냐까지 겨냥한 비만약이다.

이런 접근이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만치료제로 체중을 크게 줄이면 지방만 빠지는 것은 아니다. 근육을 비롯한 제지방량도 일부 감소할 수 있다.

다만 ‘제지방량 감소’를 곧바로 ‘근육 손실’과 같은 뜻으로 봐서는 안 된다. 제지방량에는 근육뿐 아니라 체수분과 뼈, 장기 등 지방을 제외한 여러 조직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로슈도 이번 계약에서 이 차별성에 주목했다. 보리스 자이트라 로슈 기업사업개발 총괄은 HM17321을 통해 지방량 감소와 함께 근육량·근기능 개선을 겨냥하겠다는 개발 방향을 밝혔다.

동물에선 지방 줄고 제지방 늘어…사람 효과는 이제 검증

다만 이런 차별화 가능성은 아직 주로 동물실험에서 확인된 단계다.

한미약품이 공개한 비임상 연구에서는 HM17321을 투여한 비만 동물의 체중과 체지방량이 줄고 제지방량은 증가했다. 단독 투여뿐 아니라 다른 비만치료제와 함께 사용했을 때의 효과도 연구되고 있다. 회사는 심혈관질환 등 다른 대사질환으로 개발 범위를 넓힐 가능성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서도 지방은 줄면서 근육량이나 근기능이 좋아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HM17321은 현재 미국에서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미국 임상시험 등록사이트 클리니컬트라이얼스(ClinicalTrials.gov)에 따르면 건강한 성인과 비만 성인 약 90명이 참여한다.

먼저 건강한 성인 약 40명에게 한 차례 투여하면서 용량을 단계적으로 높인다. 이후 비만 성인 약 50명에게 12주 동안 주 1회 투여한다.

임상 1상의 주된 목적은 안전성과 내약성, 약물이 몸속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어떻게 변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체중 변화도 함께 확인하지만, 이 시험만으로 비만 치료효과나 근육 증가 효과를 확정할 수는 없다. 임상은 2025년 11월 시작됐으며 현재 등록정보상 2027년 3월 완료가 목표다.

한미약품 연구센터 사진=한미약품

한미가 1상 마치고 제넨텍은 2상부터…10년 만의 재회

두 회사의 역할도 나뉜다. 한미약품은 현재 진행 중인 임상 1상을 마무리한다. 이후 임상 2상부터는 제넨텍이 개발을 이어받을 계획이다.

눈에 띄는 점은 사람에서 본격적인 치료효과를 확인하기 전인 임상 1상 단계 후보물질에 최대 23억500만달러 규모의 계약이 걸렸다는 것이다.

제넨텍과 모회사 로슈도 이미 비만·대사질환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로슈는 GLP-1·GIP 계열 비만치료제와 아밀린 계열 후보물질 등을 개발하고 있어, HM17321은 기존 인크레틴 계열과 다른 작용 방식을 더하는 카드가 될 수 있다.

HM17321은 펩타이드 계열 후보물질이라는 점 때문에 향후 다른 비만치료제와 병용하거나 한 제품에 함께 담는 고정용량복합제로 개발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한미약품은 비임상 단계에서 여러 병용 전략을 연구해 왔다.

한미약품과 제넨텍의 대형 기술수출은 처음이 아니다. 한미약품은 2016년 RAF 표적 항암제 후보물질 HM95573(벨바라페닙)의 한국을 제외한 세계 개발·상업화 권리를 제넨텍에 넘긴 바 있다.

당시 최대 계약 규모는 9억1000만달러였다. 10년 만에 다시 성사된 이번 계약은 대상 분야가 항암제에서 비만·대사질환으로 바뀌었고 최대 금액도 두 배 이상 커졌다.

이번 계약의 최종 가치는 앞으로의 임상 결과가 좌우한다. 비임상에서 나타난 체지방 감소와 체성분 개선이 사람에게도 재현되는지, 기존 비만치료제와 함께 사용할 때 추가 이점이 있는지가 핵심이다.

현 단계에서 확정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최대 3조1892억원의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과, 계약 효력이 발생하면 반환 의무 없는 계약금 2629억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나머지 대부분은 HM17321이 임상과 허가라는 관문을 차례로 넘어야 현실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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