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20일 (목)

마지막까지 버티던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도 적자…병원 253곳 '9년 장부'의 경고

2016년 +3.3% 의료이익률, 2024년 -4.7%⋯기본급보다 복리후생·약품비 부담 더 커진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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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버티던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도 적자…병원 253곳 '9년 장부'의 경고
한국 대형병원들은 "돈을 잘 벌고 있을거야"라는 보통의 인식과 달리 만성적인 의료수익 적자 구조에 빠져들고 있다. 환자들은 치료하는데, 정작 자신의 병은 못 고치고 있는 셈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 유독 힘들다”는 병원들의 주장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정확히 뭐가 병원 살림을 어렵게 만들고 있을까?

흔히 "연봉 등 인건비 급상승 때문"이라고들 하지만, 실제 회계장부를 9년치나 뜯어본 한국 연구팀의 분석 결과는 조금 다르다. 정작 발목을 잡은 건 따로 있었다.

연세대 박준영(예방의학교실)·김태현(보건대학원) 이상규(융합보건의료대학원) 연구팀은 《병원경영학회지》 최신호에 색다른 논문을 발표했다. 2016년부터 2024년까지 9년 내내 빠짐없이 재무제표를 낸 상급종합병원 47곳과 종합병원 206곳, 총 253개 병원 회계자료를 추적한 결과를 담았다. 병원경영 데이터에서 이런 식의 연속 단일 균형패널(Balanced Panel) 연구는 드물다. 통계적 착시가 생기는 것을 최대한 제거하려 했다는 점도 돋보인다.

흑자였던 병원들, 8년 만에 전부 적자로

병원이 진료로 벌어들인 돈(의료수익) 대비 쓴 돈(의료비용)의 비율을 '의료원가율'이라고 부른다. 이 비율이 100%를 넘으면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많다. 적자를 의미한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원가율이 2016년 96.7%에서 2024년 104.7%로 올랐다. 8%p 차이다. 흑자였던 병원 살림이 적자로 돌아선 것이다.

적자로 돌아선 시점, 즉 언제부터 원가율이 100%를 넘어 적자가 시작됐는지는 병원 종류마다 달랐다. 가장 먼저 적자로 돌아선 건 수도권 종합병원이다. 2019년부터 시작됐다. 원가율이 100%를 넘어섰고, 이후 계속 커지기만 했다. “수도권이라서 돈을 잘 벌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이들이 먼저 구조적 적자에 진입한 것이다.

비수도권 상급종합병원과 비수도권 종합병원은 그로부터 1년 뒤인 2020년, 코로나19 여파가 본격화될 무렵부터 적자권에 들어섰다.

몸집이 가장 크고 형편이 가장 좋다고 여겨지는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들은 2023년까지도 흑자(+0.7%)를 지켜내다가, 2024년 처음으로 적자(-3.7%)로 돌아섰다.

다른 병원들보다 5년이나 늦게 무너진 셈인데, 일단 무너지자 낙폭이 컸다. 1년 사이에 무려 의료이익률이 -4.4%p나 떨어졌다. '가장 튼튼해 보였던 곳'이 가장 늦게, 그러나 가장 가파르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24년은 네 그룹 모두 예외 없이 적자였다. “대한민국 대형병원들이 동시에 전부 적자를 기록한 첫 해”라는, 상징적인 시점인 되어버린 셈이다

"월급 때문"이라는 통념, 절반만 맞다

그렇다면 뭐가 병원 살림을 갉아먹었을까?

연구팀은 병원이 쓰는 돈을 12가지 항목으로 잘게 쪼갠 뒤, 각 항목이 병원 수입(연평균 5.17%씩 성장)보다 얼마나 더 빨리 늘었는지를 계산했다.

가장 빠르게 늘어난 건 복리후생비(+2.42%p)이다. 4대 사회보험(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의 병원 부담분과 직원 복지비가 여기 들어간다. 법으로 정해진 만큼 자동으로 나가는 돈이다.

퇴직급여(+2.26%p) 와 각종 수당(+2.13%p) 도 마찬가지다. 병원이 단기간에 조절하기 어려운 항목이다.

반면 순수하게 '연봉'에 해당하는 급여 총액(+1.51%p)은 5위였다. 늘긴 늘었지만, 병원이 통제하기 어려운 법정 부담금들보다는 증가 속도가 느렸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정책 토론장에서 흔히 ‘비용 증가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외주용역비’다. 이 항목은 오히려 병원 수입 증가 속도보다도 느리게 늘었다. “외주화가 병원 살림을 어렵게 만든다”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다.

관리운영비 전체를 봐도 크게 늘지 않았다. "병원이 관리비를 방만하게 쓴다"는 식의 비판은, 적어도 이 통계로는 뒷받침되지 않는다

약값도 만만치 않았다

병원 살림을 갉아먹은 게 인건비 관련 항목만은 아니다. 약값, 그러니까 약품비도 한몫했다. 병원이 쓰는 재료비 중에서 약품비 증가 속도가 연평균 7.05%로 유독 빨랐다.

특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의 증가 속도가 연평균 7.7%으로 가장 가팔랐다. 큰 병원일수록 중증 환자가 많고, 중증 환자일수록 비싼 약을 쓸 일이 많다는 걸 감안하면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결과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약값 상승분이 병원이 받는 진료비(수가)에 제대로 반영됐느냐다. 연구팀은 이번 조사 기간 동안 그 반영이 충분치 않았을 가능성을 짚었다.

과거에는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약을 싸게 사서 환자, 건강보험에 고시가대로 청구해 '약가 차액(약가 마진)'을 통해 큰 이윤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실거래가 상환제'가 도입되면서 병원은 약제를 실제 구입한 가격 그대로 청구해야 한다. 즉, 10,000원에 산 약은 10,000원만 보상받으므로 약 자체로는 마진이 '0원'이다.

즉, 약가가 비싸지고 약품비 매출 비중이 커질수록 병원의 총 매출(분모)은 늘어나지만, 약제의 보관·재고 관리, 냉장 운송, 조제 및 투약 관리, 폐기 손실, 미수금 리스크 등 간접비용도 함께 늘어난다. 약 자체에서 이윤이 발생하진 않는데, 관리비 등 간접비용은 병원 운영비(원가)가 되므로 매출 대비 수익률(원가율)을 악화시키는 구조다.

"평균이 저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겠지만

여기서 흔히 하는 착각 하나. "평균 -4.7%면 못 버는 병원 몇 곳이 확 깎아 먹은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253개 병원을 성적순으로 쭉 세워놓고 정확히 한가운데 있는 병원(중위값)을 봐도 이익률은 -3.2%였다. 즉 "일부가 심각해서 평균이 나빠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절반 넘는 병원이 원래부터 적자"라는 뜻이다.

더 눈에 띄는 건 성적이 좋은 축에 속하는 병원들의 사정이다. 상위 25%, 그러니까 253곳 중 형편이 제일 나은 축에 드는 병원들조차 이익률이 겨우 +1.5%였다. 웬만큼 잘 나가는 병원도 여유는 손바닥만 하다는 얘기다. "어떤 병원은 힘들고 어떤 병원은 괜찮다"는 그림이 아니라, "대다수가 힘들고, 잘 버티는 축도 간신히 버티는" 그림에 가깝다.

이 연구가 못 보여주는 것들, 그리고 놓치고 있을지 모르는 것들

물론 이 연구도 약점이 있다. 연구팀 스스로도 세 가지 한계를 인정했는데, 그중 두 번째가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이 조사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9년 내내 살아남은' 병원만 대상으로 삼았다. 바꿔 말하면, 그 사이 문을 닫은 병원은 애초에 이 통계에 잡히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즉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4.7%라는 숫자는 '그래도 끝까지 버틴 병원들'의 성적표다. 이미 무너져서 통계에서 빠진 병원들까지 더한다면, 실제 병원업계의 체감 위기는 이 숫자보다 더 나쁠 가능성이 있다.

또 하나, 이번 연구는 순수하게 진료로 벌고 쓴 돈만 봤다. 주차장 임대료나 정부 보조금처럼 진료 외로 들어오는 돈은 포함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진료 외 수입’이 은근히 큰 역할을 한다. 2021년 병원들의 최종 이익률이 반짝 좋아진 적이 있는데, 이건 실력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코로나19 정부 지원금이 두둑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3년, 그 지원금이 끊기자마자 이익률은 다시 고꾸라졌다. 정부 지원이라는 산소호흡기를 떼자마자 원래의 적자 체질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이쯤 되면 나올 법한 질문. "그래서 해법은 뭔가?"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은 비교적 뚜렷하다.

첫째, 수가를 손볼 거라면 '전체적으로 다 올려주기'보다 약품비처럼 실제로 원가율을 밀어올린 항목을 콕 집어 반영하는 쪽이 효과가 클 거라는 얘기다.

둘째, 인건비 대책도 "월급을 어떻게 할까"보다는 병원이 손댈 수 없는 법정 사회보험료 부담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풀어줄지가 더 실질적인 카드로 보인다.

셋째, "병원이 관리비를 방만하게 쓴다"는 식의 익숙한 비판은 이번 데이터로는 힘을 잃는다. 관리비는 이미 크게 늘지 않고 있어서, 거기서 짜낼 여유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 논문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로 요약된다. 병원 적자의 범인을 찾겠다며 '연봉'이나 '관리비'만 노려봐선 정작 진짜 문제를 놓친다는 것이다. 진짜 범인은 병원도, 정부도, 어느 한쪽 힘만으로는 손대기 어려운 구조적인 항목, 법정 사회보험료와 약값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지금까지 파편적으로만 알려졌던 병원계의 위기가 구조적이고 전방위적이라는 것을 가장 최신 데이터로, 가장 정밀하게 확인해준 첫 근거이기도 하다.

한편 이 논문 제목은 '한국 상급종합병원 및 종합병원의 비용구조와 수익성: 2016~2024년 균형 회계 패널 분석(Cost Structure and Profitability of Korean Tertiary and General Hospitals: A Balanced Financial Panel Analysis 2016~2024)'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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