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증상 없이 90세를 넘겼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초고령층에서도 성별과 인종, 유전적 요인에 따라 치매 발병 위험이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90세 이상 인구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치매 연구는 주로 65세 이상 고령층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90세 이상 초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러한 공백을 메우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헬스(UC Davis Health)와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 연구진은 ‘라이프애프터90(LifeAfter90)’ 연구를 진행했다. 카이저 퍼머넌트는 미국의 통합형 의료ㆍ건강보험 조직이다. 연구진은 2018년부터 카이저 퍼머넌트 북부 캘리포니아 회원 가운데 90세 이상이면서 치매 진단을 받지 않은 이들을 추적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6개월마다 인지 기능 평가를 받았으며, 연구진은 새롭게 발생한 치매 사례를 분석했다.
최종 분석 대상은 805명이었다. 참가자의 중간 연령은 92세였고, 평균 추적 관찰 기간은 약 2년이었다. 이 기간동안 전체 참가자의 17%인 138명이 치매 진단을 받았고, 37%인 295명이 사망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의료 기록도 함께 분석했다. 일부 자료는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이는 치매가 단기간에 발생하는 질환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되는 질환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연구를 이끈 레이첼 휘트머 교수는 “90세 이후 치매 위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또 알츠하이머병의 주요 위험 유전자인 APOE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90세 이후에도 치매 위험 격차 지속
기존 연구에 따르면 치매 위험은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번 연구에서도 여성의 치매 발병 위험은 남성보다 약 1.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90세가 넘은 후에도 이러한 차이가 계속된 셈이다.
인종에 따른 차이도 확인됐다. 흑인 참가자의 치매 위험은 아시아계 참가자보다 약 75% 높았으며, 흑인과 히스패닉계 참가자들은 백인과 아시아계 참가자보다 더 높은 치매 발생률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인종적 특성만으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교육 수준과 의료 서비스 접근성, 사회·경제적 환경, 만성질환 관리 수준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APOE 유전자, 90세 이후에도 영향 미쳐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성이 높은 APOE 유전자도 분석했다. APOE는 혈액 속에서 지방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의 생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다. 이 가운데 APOE ε2는 치매 위험을 낮추는 요인으로, APOE ε4는 치매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분석 결과 APOE ε2 유전자를 가진 참가자들의 치매 위험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61% 낮았다. 이는 초고령층에서도 유전적 보호 효과가 유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면 APOE ε4는 보다 복잡한 결과를 나타냈다. 전체 참가자를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는 치매 위험 증가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지만, 성별과 인종에 따라 분석했을 때는 차이가 나타났다. 남성에서는 APOE ε4와 치매 위험 증가 사이에 연관성이 관찰됐고, 흑인 참가자에서는 위험이 거의 두 배까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가 특정 집단에서 얻은 유전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보다 다양한 인구 집단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험 요인 있어도 치매를 피한 사람들의 비밀
연구진은 또 다른 질문에도 주목했다. 알려진 치매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어떻게 인지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연구 참가자 가운데에는 60~70대에 고혈압이나 고콜레스테롤혈증 등 치매와 관련된 위험 요인을 경험했음에도 인지 기능 저하 없이 90대에 접어들었다. APOE ε4 유전자를 가진 참가자 가운데서도 치매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았다.
연구진은 생물학적 특성뿐 아니라 생활 습관, 사회적 관계, 의료 서비스 접근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회복탄력성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향후 치매 예방 전략 개발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90세까지 치매 없이 지냈다고 해서 더 이상 위험이 없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며 “초고령층에서도 치매 선별 검사와 예방 관리가 계속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랜싯 건강 노화(The Lancet Healthy Longevity)》에 ‘Incidence of dementia after age 90 years and association with APOE genotype, race, and sex in the USA: the LifeAfter90 prospective cohort study’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자주 묻는 질문]
Q1. 90세까지 치매가 없었다면 이후에도 안심해도 될까요?
A. 아니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초고령층에서도 치매 위험은 계속 존재하며 성별, 유전적 요인, 건강 상태 등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질 수 있다.
Q2. APOE ε4 유전자가 있으면 반드시 치매에 걸리나요?
A. 그렇지 않다. APOE ε4는 위험도를 높이는 요인일 뿐이며, 생활 습관과 만성질환 관리 상태 등 다른 요인도 함께 영향을 미친다.
Q3. 90세 이후에도 치매 예방이 가능할까요?
A. 연구진은 고혈압과 당뇨병 관리, 규칙적인 운동, 사회적 활동 유지, 충분한 수면 등이 인지 기능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