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 건강하던 20대 여성이 위장염을 앓은 뒤 갑자기 말문이 막히고 팔다리가 뻣뻣해지는 뜻밖의 증상을 보인 사례가 학계에 보고됐다.
인도 ‘마이소르 의대 및 연구소(MMCRI)’ 등 공동 연구팀은 26세 여성이 위장염에 걸려 열흘 동안 고열·오한·물설사 등 증상을 보인 뒤, 3주 만에 말문이 막혀 무언증에 걸리고 사지가 뻣뻣하게 굳어 혼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원인을 찾기 위해 정밀 검사에 착수했다.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는 파킨슨병 환자에게 통상 나타나는 뇌 심부(기저핵)의 세포 손상이나 미세 혈관이 막힌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 대신 뇌척수액이 지나가는 통로가 좁아져 뇌실에 물이 차는 현상이 확인됐다. 혈액 검사에서는 면역 세포가 자기 자신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이 나타났다.
연구팀은 위장염이 면역 기능을 교란해 발생한 ‘신경정신과적 루푸스에 의한 파킨슨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본격 치료에 들어갔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요법과 표적 치료제 등 강력한 면역억제 치료를 병용했다. 다행히 환자는 치료 후 무언증과 사지 경직 증상이 모두 사라져 독립적인 정상 생활로 되돌아갔다.
이 사례 연구 결과(When Gastroenteritis Struck the Brain: Post-infectious Parkinsonism Suggestive of Neuropsychiatric Systemic Lupus Erythematosus in a Patient With Aqueductal Stenosis)는 최근 국제 학술지 《큐레우스(Cureus)》에 실렸다.
이 연구 결과는 흔히 배탈이나 설사 정도로 가볍게 여기는 위장염이 뇌를 공격해 심한 사지 마비와 무언증을 일으킬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장과 뇌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장-뇌 축(Gut-Brain Axis)’ 개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위장염은 위와 장(큰 창자와 작은 창자)에 동시에 염증이 생기는 병이다. 위염은 위에만, 장염은 장에만 염증이 생긴다. 위장 가운데 장은 단순히 음식물을 소화하는 기관을 넘어 ‘제2의 뇌’로 불린다. 장과 뇌는 수백만 개의 신경 세포와 면역 체계, 호르몬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밀접하게 소통한다.
급성 장염 등으로 장내 미생물의 균형이 깨지면 장벽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던 방어선인 장의 벽에 미세한 틈이 생긴다. 장 속에 있던 세균이나 독소는 장벽을 뚫고 혈관을 침범해 온몸을 도는 전신 순환계로 들어간다. 이들 유해 물질이 몸속 면역 체계를 강하게 자극하면 면역 세포가 교란을 일으켜 자기 조직을 스스로 공격하는 자가면역 반응을 일으킨다. 이런 면역 폭풍이 혈-뇌 장벽을 넘어 중추신경계인 뇌까지 침범하면, 뇌의 운동 기능을 맡는 신경세포를 마비시킨다. 이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사지 경직증과 언어 장애로 이어진다. 사례 속 환자의 혈액에서도 세균에서 유래된 물질이 높은 수치로 검출돼 이같은 질병 메커니즘을 뒷받침했다.
혈액 검사 수치가 정상이어도 몸 안에서 일어나는 염증 상태를 모두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젊은 사람이 노인에게 많이 걸리는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면, 위장관 감염 이후 자가면역 반응에 의한 세균의 뇌 침범 가능성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1. 병원 혈액 검사 결과가 정상이어도 뇌에 심각한 염증이 있을 수 있나요?
A1. 그렇습니다. 이 사례의 환자도 루푸스 활동성을 엿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혈액 검사에서 수차례 정상 반응이 나왔습니다. 몸 전체의 혈액 수치와 뇌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국소적인 자가면역 염증의 강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수치만 맹신하기보다 환자가 보이는 실제 증상과 의사의 종합적인 임상 판단이 더 중요합니다.
Q2. 장염을 앓고 난 뒤에는, 누구나 뇌와 관련된 병에 걸릴 수 있나요?
A2. 아닙니다. 일반 장염 환자가 파킨슨병과 비슷한 증상으로 진행될 확률은 낮으니 너무 지나치게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유전적 소인이나 잠재적으로 자가면역 성향이 있는 사람은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심한 장염이 면역 체계를 깨뜨리는 결정적인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Q3. 장염을 앓은 뒤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하나요?
A3. 장염 증세가 가라앉은 후 몇 주 이내에 갑자기 말이 어눌해지거나 문장이 잘 기억나지 않는 언어 장애, 손발이 심하게 떨리거나 팔다리가 뻣뻣해져 걷기 힘든 운동 장애, 음식을 삼키기 힘든 연하곤란 등 증상 중 하나라도 나타난다면 서둘러야 합니다. 즉시 대형 병원 신경과나 류마티스내과를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