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5일 (토)

“단 한 명도 포기는 없다”…환자의 삶을 다시 세운 ‘오전 8시의 기적’

[K-BEST병원] 재활의료 분야 -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박인선 병원장이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와 치료에 진전이 있음을 확인하고 밝게 웃고 있다. 사진=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인근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병원장 박인선)은 하루를 한 시간 먼저 시작한다. 정상 근무는 오전 9시부터지만, 이날만큼은 오전 8시부터 병원이 움직인다.

회의실은 꽉 찬다. 재활의학과 전문의부터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치료사, 신경심리사, 사회복지사, 그리고 영양사와 행정 파트 직원까지 들어온다.

소재는 매번 다르지만, 주제는 늘 같다. 환자 진단명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이 환자는 삼킬 수 있는가? 의사소통은 가능한가? 손은 쓸 수 있는가? 집은 있는가? 보호자가 다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집으로 갈 수 없다면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

매주 수요일은 초진평가회의(Evaluation conference). 입원한 모든 환자에 대해 의학적, 기능적, 사회적 평가를 한다. 이를 통해 재활치료 이후의 상태, 즉 장애 유무와 장애 정도, 치료 이후 거주 문제 등에 대해 예측하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이틀 뒤 금요일은 재진평가회의(Re-Evaluation conference). 입원 후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계획을 수정, 보완한다. 초기 목표까지 도달하였는지, 퇴원 후 환자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지를 또 확인한다.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이 2006년 개원 이후 20년 동안 지켜온 회복기 재활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재활은 치료실에서 걷는 연습만 반복하는 일이 아니다. 급성기 치료 뒤 남은 삶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수술과 응급치료가 생명을 붙들었다면, 회복기 재활은 그 생명을 다시 일상생활 속 사람으로 되돌리는 치료다.

파크사이드는 보건복지부 ‘재활의료기관’ 지정을 위한 시범사업 단계부터 참여했고, 이후 1기부터 3기까지 재활의료기관으로 연속 지정됐다.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지역)을 넘어 전국 재활의료계에서도 대표적인 회복기 재활병원 모델로 꾸준히 꼽혀온 병원.

이곳을 ‘재활의학 명가(名家)’라 부르는 이유는 병원 시설이나 장비 때문이 아니다. 환자 한 명을 끝까지 보는 시스템, 그 시스템을 20년 동안 놓지 않은 고집 때문이다.

매주 수요일, 금요일 오전 8시 열리는 콘퍼런스에선 의사를 비롯한 전 직원이 모여 환자의 치료 과정과 후속 계획을 밀도 있게 논의한다. 사진=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뇌손상, 비사용증후군, 고관절 골절…‘급성기 뒤의 환자’를 보는 병원

파크사이드엔 뇌손상 환자가 가장 많다. 50%에 달한다. 후유증이 가장 심각하다. 행동부터 말, 먹는 일까지 일상의 기본 기능이 모두 서툴러진다. 하루 24시간, 상시 케어가 필요하다. 심각한 장애가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비사용증후군(23%). 이어서 고관절 골절(15%), 척수손상(10%), 기타(2%) 순이다. 환자들은 급성기 치료가 끝났어도 바로 집으로 갈 수가 없다. 걷기, 먹기, 삼키기, 화장실 가기,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기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장애와 같은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초기에 집중 재활을 해야 한다. 환자 상태에 맞는 1:1 집중 치료가 가능한 전문 재활병원을 찾아오는 이유다.

특히 비사용증후군(非使用症候群·廢用症候群, Disuse Syndrome) 환자군은 회복기 재활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폐렴, 암, 중증 내과질환 등으로 병상에 오래 누워 있었던 사람들. 쉽게 말해 “몸의 기본 기능 자체가 무너진” 환자들이다.

이들은 공식적인 재활 제도 안에서 특히 중요하다. 보건복지부 지정 ‘재활의료기관’에서는 비사용증후군 환자에게 일정 기간 회복기 재활치료가 가능하다. 건강보험 수가까지 설정돼 있어 환자 본인 부담도 줄어든다. 파크사이드 관계자는 “폐렴이나 암 치료 뒤 오래 누워 지내던 환자도 전문적인 집중 재활을 받고 나서야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는 단순한 간판이 아니다. 일반 재활병원이나 동네 재활의원과도 다르다. 부산에 7곳, 전국으로도 71곳뿐이다. 급성기 병원과 집 사이에서, 누가 이 환자를 맡아 회복을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제도적 답안이다. 질환에 따라선 최대 180일까지 입원 치료가 가능하다.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

파크사이드가 10여 년 전 재활의료기관 시범사업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것도 그래서다. 회복기 재활이 한국 의료전달체계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컸다.

박인선 병원장은 “재활의료기관 제도가 생겼을 때 이 제도로 대한민국 재활 의료와 회복기 치료가 좋아지길 기대했다”며 “복지부와 심평원 관계자들을 병원으로 불러 오전 콘퍼런스부터 보게 하고, 회복기 재활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고 말했다.

“집으로”가 아니라 “정확한 곳으로”

이 병원을 움직이는 이는 131명이다. 재활의학 전문의 4명을 비롯해 의사 5명, 간호직 51명, 보건직 64명, 기능직 6명, 사무직 5명 등. 95병상 규모치고는 인력이 많은 편이다.

현장에서 보면 그 이유가 보인다. 환자 한 명 곁에 치료사 한 명이 붙어 몸을 세우고, 손을 잡고, 삼키는 법을 확인하고, 휠체어 이동을 돕는다. 회복기 재활은 모든 환자를 같은 방식으로 치료하는 의료가 아니다. 환자마다 다른 결손을 찾아 하나씩 메우는 치료다.

그래서 파크사이드 재활의 핵심은 조금 색다르다. 박 병원장은 “처음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았다”고 했다. 급성기 치료가 끝난 환자를 병원이 오래 붙잡고 있는 현실이 싫었다.

집으로 보내기 위한 ‘가족회의’도 열었다. 환자 가족 또는 보호자 앞에서 지금까지 병원에서 진행해온 재활치료에 대해 발표하고, 가족 의견을 반영해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함께 조율한다. 가정으로, 사회로 복귀하기 위한 준비 단계다. 주치의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이 직접 환자 집으로 찾아가 거주 환경과 가족의 지지 기반을 살피는 ‘집으로 프로젝트’도 그런 일환.

하지만 그게 늘 최선인 것만은 아니었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됐어도 가족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의료적 처치가 더 필요한 환자도 있었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더 안전한 환자도 있었다. 심지어 집이 없는 환자도 있었다.

그래서 파크사이드는 퇴원 경로를 치료의 마지막 단계로 본다. 집, 요양원, 요양병원, 임시 주거공간, 외래 재활, 방문 재활까지 환자마다 다른 길을 놓고 회의한다. 박 병원장이 말한 대로다. 중요한 것은 “집으로”가 아니라 이젠 “정확한 곳으로”다. 그래야 재활이 실패하지 않는다.

이 철학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가온재’다. 집과 병원 사이의 징검다리 같은 공간이다. 일종의 트랜짓 하우스(transit house). 집으로 바로 돌아가기 어렵지만 계속 입원할 수도 없는 환자들이 병원 가까이에서 생활하며 적응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다.

처음부터 거창한 사업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 원룸에 살던 환자가 병을 앓는 동안 집을 잃었다. 치료는 어느 정도 됐지만 퇴원할 곳이 없었다.

파크사이드는 그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넘기지 않았다. 병원 주변 전세집과 월세집을 직접 찾아다녔다. 환자가 병원 가까운 곳에서 살며 통원 치료를 받고, 문제가 생기면 병원이 다시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경험이 쌓이며 직원들까지 나서 병원 근처를 샅샅이 훑었다. 그렇게 구한 집에 휠체어가 오갈 수 있도록 동선을 손보고, 병원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었다. 그게 파크사이드가 말하는 ‘지역사회 복귀’다.

입원 다음날부터 퇴원 후까지, 5차례 상담으로 다시 묻는다

파크사이드 퇴원 설계는 정례 상담 구조와 맞물려 있다. 환자가 입원하면 다음날부터 평가와 상담이 시작된다. 이후 4주차, 12주차, 퇴원 준비 시점, 퇴원 후까지 환자와 보호자를 다시 만난다.

입원 다음날에는 현재 상태를 본다. 걷기, 균형, 삼킴, 언어, 인지, 심리, 영양, 가족 돌봄 가능성까지 확인한다. 4주차에는 치료 방향을 다시 조정하고, 12주차에는 퇴원 이후 경로를 구체화한다. 퇴원 전에는 집으로 갈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맞는지, 가온재 같은 중간 주거가 필요한지 논의한다. 퇴원 후에도 병원에서 세운 목표가 실제 생활에서 유지되는지 살핀다.

그래픽=윤상선 기자

이 과정을 가능하게 하는 축이 오전 8시 다학제 콘퍼런스다. 간호사는 병동 생활을 안다. 치료사는 실제 움직임을 안다. 언어치료사는 삼킴과 말하기를 본다. 신경심리사는 인지와 정서를 살핀다. 사회복지사는 가족, 주거, 경제적 조건, 지역 자원을 본다. 영양사는 먹는 문제를 본다. 행정 파트는 제도와 비용의 현실을 챙긴다. 이 모든 사람이 한 자리에서 한 환자를 놓고 묻는다.

박 병원장은 이 회의에 참여하는 직원들 모두에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한다. 병원 재정엔 부담이지만, 이 회의를 멈추지 않는다. 회복기 재활에서 환자 한 명을 제대로 보려면 시간과 비용이 든다. 파크사이드는 그 비용을 병원의 핵심 투자로 여긴다.

두 재활의학자가 만든 병원…현장지휘관 박인선, 이론가 고현윤

파크사이드의 역사는 두 재활의학자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박인선 병원장과 고현윤 명예원장이다.

박 병원장은 1984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병원에서 수련하며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8년 부산으로 내려와 부산백병원에 재활의학과를 만들었다. 당시 부산에서 재활의학은 낯선 분야였다. 14년 4개월 동안 재활의학과장을 맡으며 뇌손상 환자 재활을 고민했다.

2002년 자그마한 의원을 열었다가 2006년 9월, 이곳으로 옮겨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을 개원했다. 스스로를 “재활의학에 미친 아줌마 의사”라고 소개한다.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좌절하고, 때론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환자들 속에서 40년간 부대껴 온 현장파 의사의 솔직한 자기소개다.

고현윤 명예원장은 부산대 의대를 졸업하고 한양대병원에서 수련했다. 당시 한양대에는 한국 재활의학의 문을 연 이강목 교수가 있었다. 미국 뉴욕대에서 수련하고 한국에 들어와 부산 메리놀병원에서도 근무한 인물. 원칙주의자이면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인턴 고현윤은 1년차 후배로 박인선을 만났다. 명랑하면서도 당찬 후배. 무서운 교수님 밑에서 힘겨운 수련 과정을 함께 버티다 부부가 됐다.

의학 박사가 된 이후, 부산에 다시 내려와 고신대 의대를 거쳐 부산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로 임상과 연구에 전념했다. 특히 척수손상 재활에 평생 천착했다. 미국과 영국 재활의학 기관에 수차례 연수하며 안목을 넓혔고, 국제척수손상학회 부회장, 대한노인재활의학회 회장, 대한척수손상학회 회장을 지냈다. 양산부산대병원 재활병원장도 거쳤다.

고현윤 명예원장(왼쪽에서 두 번째)도 간간이 직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재활의학의 최신 흐름을 전하면서 환자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설명한다. 사진=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동아일보 연재 '베스트 닥터의 건강학' 시리즈에 재활의학 분야 명의 1위에 선정됐고, EBS-TV ‘명의’에도 소개됐다. 대학에서 은퇴하고서도 연구를 계속, 최근 독일 슈프링거(Springer) 출판사에서 척수손상 재활 단독 저서를 또 출간했다. 척수손상 분야에 초점을 맞춘 다섯 번째 단독 저서다.

박 병원장이 현장에서 환자의 집과 가족, 치료비와 살 곳까지 챙기는 사람이라면, 고 원장은 척수재활을 학문과 제도 안에서 파고든 사람이다. 파크사이드는 이 두 축이 만난, 독특한 병원이다.

몸만 세우지 않는다…예술치료와 파티, 그리고 노둣돌

파크사이드에는 독특한 프로그램들이 더 있다. 회복기 환자가 겪는 상실감, 우울, 무력감, 가족 갈등을 재활치료의 소재로 보는 데서 나왔다.

회복기 환자는 몸만 잃지 않는다. 직장과 역할을 잃고, 가족에게 짐이 됐다는 생각에 무너지고,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기 쉽다. 그래서 이 병원에서 심리상담, 음악, 미술, 텃밭 활동은 홍보용 부가(附加)서비스가 아니다. 환자가 스스로 참여하며 자신의 역할과 존재 가치를 다시 확인하도록 돕는다.

음악과 미술은 환자가 다시 표현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말이 어눌한 환자도 리듬에 반응하고, 손을 잘 쓰지 못하는 환자도 색을 고른다. 텃밭 활동은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자라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을 준다. 병원 안에서 환자가 다시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작은 통로다.

또한 오티맛집은 파티다. 작업치료실에서 직원들과 환자들이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나눈다. 재잘거리며 나누는 얘기들 속에서 기분이 좋아진다. 신체 기능 회복의 원동력 역할을 톡톡히 한다.

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아트테라피 ‘안녕희망씨’, 음식을 함께 나누는 ‘오티맛집’, 그리고 4인조 중창단 ‘파크사이드 싱어즈’. 사진=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특히 노둣돌 프로그램은 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준다. 말에 오를 때 밟는 돌. 환자가 병원 안에서 작은 역할을 맡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하도록 돕는다. 직원들이 매달 5000원씩 모으고, 병원장이 같은 금액을 보태 기금도 만들었다. 실어증과 오른쪽 편마비가 있던 환자에게는 병원 안 누군가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일을 맡겼다. 또 다른 환자에게는 병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료 환자에게 하루에 열 번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해주는 일을 맡겼다.

겉으로 보면 사소한 역할이다. 그러나 어떤 환자에게는 임무가 생겼다. “나도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감각이 돌아온다. 재활은 기능 회복이면서 역할 회복이다. 파크사이드가 몸의 회복 못지않게 마음의 회복을 붙드는 이유다.

환자였던 사람이 직원이 되는 병원…그렇게 세월이 쌓였다

파크사이드에는 외부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일이 힘들 텐데도 직원들 얼굴이 참 밝다”는 것이다.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가 많은 것도 그런 맥락이다. 2009년에 입사한 직원 4명이 지금도 함께 일한다. 그중 한 명은 원래 척수손상으로 재활치료를 받던 환자였다. 치료를 마치고 병원 직원이 됐고, 지금은 환자 스케줄을 짜는 코디네이터로 일한다. 재활치료를 받던 사람이 다른 환자의 재활 일정을 돕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장면은 파크사이드가 말하는 재활의 결론과 맞닿아 있다. 재활은 단순히 병원 안에서 몇 걸음 더 걷게 하는 과정이 아니다. 다시 역할을 갖는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던 사람이 다시 누군가를 돕는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20년 동안 정공법으로 한 길만 걸어왔다. 코메디닷컴이 세계에 내보일 ‘K-BEST 병원’으로 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을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8시 의사를 비롯한 전 직원이 모여 환자 재활치료 계획과 현재의 진행 상황을 함께 살피고 평가하는 콘퍼런스를 연다. 사진=파크사이드재활의학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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