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7일 (금)

“평생 병명조차 몰랐다”… 20대男 희귀 질환, 의사 아닌 AI가 찾았다

원인 못 밝힌 환자, AI로 유전체 재분석…4.8% 진단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AI가 오랫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던 희귀질환 환자들의 진단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 사는 키라 벤튼은 9세 무렵부터 걷는 모습이 또래들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발끝으로 걸었으며, 정상적인 걸음으로 뛰기도 어려워했다. 여러 전문의를 찾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고, 건강 상태는 점차 악화됐다. 심장 합병증까지 겪은 데다, 13세에는 기관절개술도 받았지만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었다.

평생 자신의 병명조차 모른 채 살아야 한다고 받아들였던 그는 지난해 20세 생일을 일주일 앞두고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의료진은 마침내 증상 원인을 밝혀냈다며, ‘근원섬유 근육병(myofibrillar myopathy)’ 진단을 내렸다. 근섬유가 점차 손상되는 희귀 유전성 신경근육질환이었다.

10여 년 만에 진단이 내려질 수 있었던 데에는 인공지능(AI)의 도움이 있었다.

수년간 풀리지 않았던 진단 공백, AI가 메웠다

AI가 오랫동안 원인을 찾지 못했던 희귀질환 환자들의 진단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했다. 미국 보스턴아동병원 연구진은 오픈AI(OpenAI)의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활용해 기존 검사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던 환자 376명의 유전체를 다시 분석한 결과, 약 5%인 18명에 대해 진단을 내릴 수 있었다고 밝혔다.

희귀 유전질환 환자들은 정확한 진단을 받기까지 수년, 때로는 수십 년을 기다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전체 염기서열 분석 기술은 크게 발전했지만, 방대한 유전 정보 속에서 실제 질환의 원인이 되는 변이를 찾아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 때문이다.

보스턴아동병원 맨튼 희귀유전질환연구센터(Manton Center for Orphan Disease Research)는 전 세계 3500여 명의 희귀질환 환자들과 협력하며 유전체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재검토해 왔다. 그러나 새롭게 밝혀지는 유전자와 질환 간 연관성을 일일이 추적하고 기존 사례에 다시 적용하는 작업에는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캐서린 브라운스타인 보스턴아동병원 책임연구원은 “완전히 판도를 바꾸는 변화”라며 “약 5%라는 진단 비율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이미 여러 차례 분석을 거친 사례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어 “각 진단은 한 가족에게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답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AI, 임상 기록과 유전자 변이 함께 분석

연구진은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 376명의 유전체 데이터를 오픈AI의 o3 기반 모델을 활용한 분석 절차에 적용했다. AI에는 환자의 증상 정보, 임상의 진료 기록, 인간표현형온톨로지(HPO) 용어, 질환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 변이 목록이 제공됐다. AI는 이를 바탕으로 질환 원인 후보를 제시했고, 연구진은 전문가 검토와 추가 검증을 거쳐 최종 진단 여부를 확정했다.

그 결과 희귀 신경발달질환 환자 10명, 신경근육질환 환자 4명, 소아 돌연사 사례 2명, 조기 정신병 환자 2명 등 총 18명에 대해 진단이 이뤄졌다.

이번 연구에서는 7건의 ‘재발견’ 사례도 확인됐다. 다른 의료기관에서 이미 진단이 내려졌지만, 해당 정보가 연구진의 데이터에 공유되지 않아 재분석 과정에서 다시 확인된 사례들이다.

연구진은 AI가 일부 사례에서 기존 분석 과정에서 놓쳤던 병원성 변이를 찾아냈고, 새로운 질환 연관성에 대한 생물학적 가설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시간과 인력 부족 메우는 AI

오픈AI에서 의료 응용 분야를 연구하는 수야시 슈링가르푸레 연구원은 희귀질환 진단의 어려움 중 하나로 빠르게 축적되는 의학 지식을 꼽았다. 그는 “어떤 사례가 처음 분석될 당시에는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1년 뒤 새로운 논문이 발표되면서 유전자와 질환의 연결고리가 밝혀질 수 있다”며 “인간 연구자가 모든 최신 연구를 추적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브라운스타인 책임연구원 역시 AI의 강점이 방대한 문헌과 데이터를 빠르게 종합하는 데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례 하나를 검토하려면 수많은 유전자 정보를 확인해야 하지만 LLM은 피로를 느끼지 않는다”며 “유전학자와 분석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AI는 유전체라는 거대한 건초더미 속에서 원인이 되는 바늘을 찾는 작업을 크게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유의미한 성과지만 인간 검증 필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아담 로드먼 베스 이스라엘 디코네스 메디컬센터 교수는 이번 결과를 “AI가 의사의 진단 역량을 보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NBC뉴스를 통해 “약 5%의 진단 성과는 임상 현장에서 매우 의미 있는 수치”라며 “오랫동안 쌓여 있던 미해결 사례를 재분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용한 선별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AI가 독자적으로 진단을 내리는 단계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컬럼비아대 생물정보학과 춘화 웡 교수는 “LLM의 결과는 반드시 엄격한 전문가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진단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 확보”라고 지적했다.

진단은 시작일 뿐…과도한 기대는 경계해야

연구진과 오픈AI 모두 이번 성과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희귀질환의 정확한 진단이 이뤄졌다고 해서 곧바로 치료법이 마련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많은 희귀질환은 여전히 치료제가 없으며, 진단은 치료 개발과 임상 시험 참여를 위한 첫 단계에 가깝다.

애슐리 알렉산더 오픈AI 헬스 부문 책임자는 “이번 연구를 지나치게 부풀리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사람들이 현재 AI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했고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벤튼 역시 평소 AI에 회의적이었지만 이번 경험만큼은 예외라고 말했다. 그는 “솔직히 말하면 나는 AI를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이번처럼 사람들의 삶을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돌파구를 만드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 결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NEJM AI》에 ‘LLM-Assisted Reanalysis of Unsolved Rare Disease Genomes Increases Diagnostic Yield’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이번 연구에서 AI는 어떤 역할을 했나?
AI는 원인을 찾지 못했던 환자 376명의 유전체와 임상 기록, 증상 정보를 분석해 질환 원인 후보를 제시했다. 최종 진단은 연구진이 직접 검토하고 검증했다.

Q2. AI가 실제로 몇 명의 진단을 도왔나?
연구진은 AI를 활용한 재분석을 통해 기존에 진단받지 못했던 환자 18명에 대해 질환 원인을 밝혀내고 진단에 도달했다. 전체 진단 수율은 4.8%였다.

Q3. AI가 의사를 대신해 진단하는 시대가 온 것인가?
아직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AI가 진단 과정의 효율을 높이는 강력한 보조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결과는 반드시 의료진의 검토와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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