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마약을 ‘지옥행 급행열차’라고 하잖아요. 정확한 비유입니다. 마약 중독에 중간은 없어요. 멈추거나, 끝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져 바닥을 확인하거나. 둘 중 하나지요.”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을 만나기 전날,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쇼핑백 가득 프로포폴 약병과 주사기를 든 30대 여성이 쓰러진 채 발견됐다. 과거와 달리 젊은 마약 중독자가 너무 흔해졌다는 걸 천 병원장은 진료실에서 매일 실감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중독은 특정 행동이나 물질에 지나치게 의존해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중요한 기준은 ‘기능’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소주 반 병만 마셔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알코올 중독으로 진단할 수 있다. 반면 대여섯 병을 마셔도 사회생활이나 일상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의학적으로 반드시 중독으로 보지는 않는다.
‘마약’은 다르다. 니코틴이나 알코올, 게임처럼 일상생활(또는 기능)에 지장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며 경과를 지켜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마약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의 ‘천장’을 한없이 높여주는 물질입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 느낄 수가 없는 쾌락이죠. 환자들이 나쁜 걸 몰라서 중독되는 게 아닙니다. 마약이 없는 일상생활이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게 느껴지기 때문에 또다시 손을 대는 거예요.”
수많은 환자를 중독의 늪에서 끄집어 내고, 새로운 삶을 되찾도록 도운 천 병원장에게 마약 중독 치료 현장의 최근 분위기를 물었다.
-나이 어린 중독 환자가 많아졌다던데.
“이제는 가장 흔한 환자군이 중·고등학생일 정도죠. 단순히 흔해진 것을 넘어섰어요. 젊은 세대에서 ‘마약은 절대 손대면 안 되는 것’이라는 정서적 거부감이나 심리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상황입니다.”
천 병원장에 따르면 마약을 구하는 과정도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단순하고 쉬워졌다. 처방 받은 약 몇 가지를 조합하면 마약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마약 족보’까지 공유될 정도다. 전형적인 약물 오·남용 사례다.
-중독 치료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무엇인가.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마약 중독 치료는 강제로 되는 게 아닙니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환자를 억지로 끌고 와 앉혀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아요. ’나는 그냥 계속 마약을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강제로 치료할 수는 없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껴야 치료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그 지점까지 가는 과정이 정말 험난하다는 점이지요.”
-물질별로 환자들의 공통점이나 차이점도 있을 것 같다.
“마약은 크게 각성제와 안정제, 환각제로 나뉘어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종류에 따라 환자들의 경향이 좀 비슷하긴 합니다.”
각성제는 뇌를 극도로 흥분하도록 만든다. 필로폰(메스암페타민), 엑스터시(MDMA), 코카인, 펜터민 등이 대표적이다. 각성제에 중독된 환자는 대체로 충동성이 강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30’만큼 화낼 일에 ‘3000’만큼 반응하는 식이다. 자살 위험이 가장 높은 유형이기도 한다.
반대로 안정제는 중추신경계를 억제해 불안을 가라앉힌다.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들이나 졸피뎀, 프로포폴이 대표적이다. 이에 중독되면 대체로 신경이 예민해진다. 별 것 아닌 일에 트집을 잡거나 짜증을 낸다. 천 병원장은 이를 두고 “사람이 끈적끈적해지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환각제 중독자는 감각 왜곡을 겪거나 현실 감각을 상실하는 증상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피하는 게 제일 좋겠지만, 만에 하나 마약을 접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즉시 상담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저희가 모든 환자에게 입원을 권하지는 않아요. 자신이나 남을 해할 위험이 높고 급성 중독 증상을 보일 때 입원을 안내해드리는 것이고, 끊고 싶다고 병원을 찾은 환자들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소변 검사만 하면서 추적 관찰을 하거든요.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마약 중독도 초반에 잡는 것이 최선의 대처법입니다.”
천 병원장에 따르면 ‘마약을 하면 뇌가 녹아내린다’는 건 단순한 비유법이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진단에 가깝다. 특히 국내 마약 중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필로폰은 장기 복용하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 남는다. 이 단계까지 진행되면 남은 방법은 정말 격리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환자 자신의 치료 의지다. 주변 사람이나 가족의 마약 투약 사실을 알았다면 비난하거나 몰아세우기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게 중요하다.
-치료와 법적 처벌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의료진도 고민이 많을 것 같다.
“가장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마약은 분명히 중범죄라는 겁니다. 엄격하게, 강력하게 처벌하는 게 맞아요. 다만 엄벌에 처하는 것만 가지고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느냐는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천 병원장은 중독 치료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은 ‘적발되는 시점’이라고 본다. 처벌은 하되, 그 과정에서 치료도 강제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코로나19를 예로 들었다. 당시 각국 정부는 확진자에 대한 강력한 격리 조치와 함께 강도 높은 ‘거리 두기’ 정책을 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백신의 빠른 보급에 실패했거나, 확진자에 대한 확실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던 일부 국가는 방역이 늦어졌다.
“마약도 똑같아요. 가둬다 놓고 ‘쾌락에 눈 먼 사람들’, ‘죽어 마땅한 사람들’이라고 손가락질 해 봤자 큰 효과가 없죠. 치료가 병행돼야 처벌이 의미가 있습니다.”
-마약에 호기심이 있거나 실제로 접해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본 뒤에 배탈이 나고 패혈증이 생겨서야 똥을 끊을 거냐’고 물어봅니다. 마약은 호기심으로 경험해 볼 대상이 아닙니다. 예외도 절대 없고요. KTX도 처음 출발하면 20~30km로 천천히 달려요. 언제든 원하면 뛰어내릴 수 있을 것만 같죠. 근데 정작 내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땐, 도저히 못 뛰어내리는 속도로 달리고 있을 겁니다. 목적지도 결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일 것이 분명해요. 마약도 똑같습니다.”
천 병원장은 무엇보다 청소년 마약 중독 환자가 급증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저는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습니다. 사회가 아이들의 등을 떠밀며 마약을 권하는 것 같은 환경이 돼 버렸어요. 무서운 협박성 경고만 반복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건강한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어른들이 만들어주는 것, 그게 가장 좋은 예방책이자 위로라고 믿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