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은 가족의 무정함을 탓하는 문장이 아니다. 오히려 장기간의 질병과 돌봄이 한 개인이나 한 가족의 선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말에 가깝다. 병이 길어질수록 환자도 지치고, 보호자도 지치고, 곁에서 돌보는 사람도 지친다. 처음에는 애틋함과 책임감으로 버티던 돌봄도 시간이 지나면 느슨해진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돌봄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누군가의 악의 때문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는 상태가 오래 지속될 때 찾아온다. 결국 돌봄은 가족의 손을 떠나 간병인의 손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돌봄의 책임이 이동했다고 해서 돌봄의 질까지 함께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병원 현장에서는 간병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 장면을 드물지 않게 마주한다. 어느 날 아침 회진 중, 한 환자의 환자복 앞섶에 시선이 머물렀다. 하얗게 말라붙은 자국이 앞섶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환자는 의식은 있지만 의사 표현이 어려운 70대 뇌손상 환자였다. 자리를 비운 간병인을 찾아 확인해 보니 전날 환자가 저녁 식사 중 흘린 음식물이라고 했다. 축축하게 젖은 환자복을 밤새 말라붙을 때까지 교체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 갈아입히지 않았느냐고 묻자, 외국인 간병인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어젯밤에 그랬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환자복이 밤새 젖은 채 방치된 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또 다른 환자의 경우, 소변줄을 제거한 다음 날 아침이었다. 자가 배뇨가 가능한지, 잔뇨는 없는지 확인이 중요한 시점이었다. 밤사이 소변을 보았는지 간병인에게 물었더니 ‘잘 봤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기록을 보니 환자는 자가 배뇨를 하지 못해 간헐적 도뇨를 시행한 상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간병인은 ‘소변’이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질문의 뜻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답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성의 부족이나 부주의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한 사람의 불성실함으로만 설명하기에는 너무 자주 반복된다.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질문은 달라진다. 이 간병인은 처음부터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지, 어떤 용어를 알아야 하는지, 언제 어떤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지 제대로 교육받았는가. 최소한의 관찰 기준이나 체크리스트가 있었는가. 이상 상황을 즉시 알릴 수 있는 보고 체계는 작동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현재 많은 의료 현장에서 간병인은 필수적인 돌봄 인력이지만, 그 역할과 책임은 놀라울 정도로 비표준화되어 있다. 환자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도 체계적인 교육이나 평가 없이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결과, 기본적인 위생 관리의 누락, 섭취·배설 기록의 부정확성, 이상 증상의 보고 지연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 이는 단순한 서비스의 질 문제가 아니라 환자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우리는 종종 이러한 상황을 개인의 태도 문제로 환원한다. “조금 더 성실했더라면”, “조금 더 신경 썼더라면”이라는 말로 상황을 정리한다. 그러나 이 접근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교육 없이 책임만 부여된 돌봄은 결국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관리되지 않는 간병은 우연히 잘 이루어질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잘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물론 간병인의 성실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실성만으로 간병의 질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환자 곁에 오래 앉아 있는 것과 환자를 제대로 관찰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식사를 챙기는 것과 삼킴 상태나 흡인 위험을 살피는 것도 다른 일이다.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과 피부 상태, 배뇨 양상, 욕창 위험을 확인하는 것도 다른 일이다. 간병인은 환자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그 역할은 너무 자주 ‘곁에 있어 주는 사람’ 정도로 축소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간병인의 관찰과 보고가 환자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장기 간병의 핵심은 더 이상 효심이나 희생이 아니다. 돌봄은 지속 가능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구조가 필요하다. 간병인을 위한 표준화된 교육, 핵심 용어와 관찰 항목에 대한 명확한 정의, 일상적인 체크리스트, 이상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보고 체계, 그리고 보호자와 의료진 간의 역할 분담이 갖추어져야 한다. 이러한 구조 없이 간병을 개인의 양심과 노력에만 맡기는 것은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일이다.
최근 간병비를 보험으로 보장하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환자와 가족의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간병의 질과 관리 체계에 대한 기준 없이 비용만 보장하는 방식이라면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는 돌봄에 비용만 지불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지원이 아니라 방치다.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비용을 지불해도 좋은 간병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간병은 단순히 돈을 내고 사람을 붙이면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돌봄에는 최소한의 언어 이해, 관찰 능력, 위생 개념, 보고 기준이 필요하다. 특히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 인지 기능이 저하된 환자, 기관절개관이나 콧줄을 달고 있는 환자, 욕창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런 환자에게 간병은 편의 서비스가 아니라 안전장치에 가깝다. 그런데 그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비용만 보전하는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오랫동안 간병을 가족의 책임으로 남겨두었다. 가족이 직접 하지 못하면 간병인을 구하고, 문제가 생기면 보호자가 알아서 바꾸고, 사고가 나면 뒤늦게 책임을 따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장기 간병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유지되기 어렵다. 보호자는 지치고, 간병인은 바뀌고, 의료진은 모든 순간을 볼 수 없다. 그 사이에서 환자의 작은 불편과 위험은 쉽게 놓친다.
간병은 더 이상 정성의 문제가 아니다. 관리의 문제다.

<편집자주>
입원전담전문의(호스피탈리스트)는 병동에 상주하며 가장 가까이에서 입원환자를 돌보는 의사를 말한다. 2016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입원전담의 제도는 2021년 본사업으로 전환되어 올해 꼭 10년을 맞는다.
'호스피탈리스트 다이어리'는 이들이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고 퇴원시키며 하루하루 쌓아가는 작은 순간들의 기록이다. 환자와 보호자, 다른 의료진, 그리고 입원전담의 자신에 대한 고백까지, 이 연재(주1회)를 통해 병원 안에서 겪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대한입원의학회 도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