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병 연구는 그동안 뇌에 쌓이는 베타-아밀로이드와 신경세포 안에서 엉키는 타우 단백질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하지만 이 두 단백질만으로는 알츠하이머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최근 또 하나의 단서가 나왔다. 정상 상태에서는 신경세포 기능을 돕는 GRK2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뭉치고, 이 덩어리가 세포의 에너지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를 망가뜨린다는 연구 결과다. 연구진은 이런 응집을 막는 후보 물질도 찾아냈다. 아직 사람에게 쓰는 치료제는 아니지만,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다른 방향의 새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분자약리학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조직과 동물모델을 분석해 변형된 GRK2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알츠하이머병 병리에 관여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Cell Reports Medicine≫ 2026년 4월 21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ETH 취리히 분자약리학 교수인 우르줄라 크비테러 연구팀이 주도했다.
정상 단백질이 왜 뇌세포를 해치나
GRK2는 ‘G단백질 결합 수용체 키나아제 2’의 약자다. 이름은 어렵지만, 역할은 비교적 분명하다. 세포가 외부 신호에 적절히 반응하도록 조절하는 단백질이다. 심장과 뇌를 포함한 여러 조직에서 작동하며, 세포가 스트레스에 적응하고 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문제는 GRK2가 제 기능을 잃고 뭉칠 때 생긴다.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알츠하이머병 의심 치매 환자의 뇌, 알츠하이머병 동물모델에서 ‘S670 인산화 GRK2’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응집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S670은 GRK2 단백질의 특정 위치를 뜻한다. 이 부위가 인산화된 GRK2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고 덩어리처럼 쌓이면 신경세포에 해롭게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연구팀은 알츠하이머병의 대표 병리인 베타-아밀로이드와 과인산화 타우 단백질이 GRK2 응집을 유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미 문제로 지목돼 온 두 단백질이 GRK2까지 망가뜨리며 병의 악순환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 막히자 뇌세포 에너지 줄어
이번 연구의 핵심은 GRK2 응집이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기관이다. 흔히 ‘세포의 발전소’라고 불린다. 뇌 신경세포는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기능이 떨어지면 손상에 취약해진다.
연구팀은 응집된 인산화 S670-GRK2가 미토콘드리아에 달라붙어 기능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미토콘드리아 외막 단백질인 TOMM6 응집도 유발됐다. TOMM6는 미토콘드리아로 물질이 들어가고 나가는 과정에 관여하는 단백질이다. 이 통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에너지 생산이 줄고 세포 안 스트레스가 커진다.
결국 신경세포는 더 큰 손상을 받는다. 연구팀은 응집된 GRK2가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를 일으키고, 베타-아밀로이드 축적도 악화시킨다고 봤다. 쉽게 말해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가 GRK2를 뭉치게 하고, 뭉친 GRK2는 다시 베타-아밀로이드와 세포 에너지 장애를 키우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악순환 끊는 소분자 후보
연구팀은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여러 소분자 물질을 설계하고 세포와 쥐 실험에서 검증했다. 그중 가장 효과가 두드러진 후보가 ‘컴파운드 10’(Compound 10·CPD10)이다.
컴파운드 10은 GRK2가 해로운 덩어리로 뭉치는 것을 막고, GRK2가 기능할 수 있는 단량체 상태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했다. 단량체는 단백질이 덩어리로 뭉치기 전의 개별 기능 단위로 이해하면 된다. 연구팀은 기능성 GRK2 단량체를 되살리면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베타-아밀로이드 축적, 신경세포 손상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동물실험 결과도 주목된다. 컴파운드 10을 투여한 알츠하이머병 모델 쥐에서는 신경세포 손상이 줄고, 베타-아밀로이드 침착이 감소했으며, 생존 기간도 늘어났다. 연구팀은 치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경세포 퇴행이 더 천천히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는 아직 전임상 단계의 결과다. 사람에게서 안전성과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는 아니다.
기존 치료제와 다른 길 열까
현재 승인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들은 주로 증상을 완화하거나 베타-아밀로이드 제거를 겨냥한다. 일부 치료제는 병의 진행을 늦출 가능성을 보였지만, 완치와는 거리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이 여러 병리가 얽힌 복잡한 질환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GRK2라는 새로운 표적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베타-아밀로이드를 직접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가 유발하는 세포 안 스트레스와 미토콘드리아 손상을 조절하는 접근이다. 알츠하이머병을 하나의 단백질 축적 질환이 아니라 단백질 응집, 에너지 대사 장애, 신경세포 손상이 맞물린 질환으로 본 것이다.
연구팀은 컴파운드 10에 대한 특허를 출원했으며, 향후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 파트너를 찾고 있다. 앞으로 관건은 사람에서도 같은 작용이 나타나는지, 장기간 투여해도 안전한지, 기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함께 썼을 때 추가 이득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알츠하이머병은 기억을 잃게 하는 병이지만, 그 출발점은 단순히 기억을 담당하는 뇌 부위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세포 안 단백질이 잘못 접히고, 에너지 공장이 고장 나며, 독성 단백질이 다시 쌓이는 복잡한 고리 속에서 진행된다. GRK2 응집을 겨냥한 이번 연구는 그 고리의 새로운 지점을 찾아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