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근경색과 불안정성 협심증은 심장 혈관이 갑자기 막히거나 좁아져 생기는 응급질환이다.
고비를 넘겼다고 치료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퇴원 후에도 혈관 손상의 원인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재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특히 퇴원 직후 1년은 위험이 높은 시기로, ‘나쁜 콜레스테롤’로 불리는 LDL 콜레스테롤(LDL-C)을 얼마나 빨리 낮추고 오래 유지하느냐가 치료의 핵심으로 꼽힌다.
이런 고위험 환자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RNA(리보핵산) 기반 치료제가 LDL-C를 빠르게 낮추고 목표 수치를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임상 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바티스는 siRNA 치료제 ‘렉비오’(성분명 인클리시란나트륨)가 최근 심근경색이나 불안정성 협심증을 겪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임상연구(VICTORION-INCEPTION) 에서 LDL-C 목표 수치에 더 빨리 도달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5월 14일 국제학술지 미국심장협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Heart Association)에 게재됐다.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좁아지거나 막히면서 생기는 질환군이다. 심근경색과 불안정성 협심증이 대표적이다. 가슴을 짓누르는 통증, 식은땀, 호흡곤란, 왼쪽 팔이나 턱으로 뻗치는 통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증상이 갑자기 생기거나 평소보다 심해지면 즉시 응급 진료를 받아야 한다.
치료는 막힌 혈관을 뚫거나 혈류를 회복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재발을 막기 위해 혈압, 혈당, 흡연, 체중, 콜레스테롤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이 가운데 LDL-C는 심혈관질환 재발 위험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어, 고위험 환자에서는 가능한 한 빠르게 목표 수치 아래로 낮추는 전략이 중요하다.
퇴원 직후 LDL 낮추는 치료가 관건
이 연구는 최근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을 경험한 환자에서 렉비오를 조기에 투여했을 때 LDL-C 강하 효과를 확인한 첫 다기관 3b상 임상이다. 연구에는 심근경색, 불안정성 협심증 등으로 입원한 뒤 퇴원 5주 이내인 환자 400명이 참여했다.
대상자는 LDL-C가 70mg/dL 이상이거나 비(非)HDL 콜레스테롤이 100mg/dL 이상인 환자였다. 스타틴 치료를 받고 있거나 스타틴을 충분히 쓰기 어려운 환자도 포함됐다. 연구진은 환자를 렉비오와 표준치료 병용군, 표준치료 단독군으로 나눠 실제 진료 환경에 가깝게 비교했다. 표준치료는 의료진 판단에 따른 기존 지질저하치료를 뜻한다.
연구의 주요 평가 지표는 330일 시점의 LDL-C 변화와 LDL-C 70mg/dL 미만 달성률이었다. 330일째 렉비오 병용군의 LDL-C는 치료 전보다 45.6% 감소했다. 반면 표준치료 단독군은 1.4% 상승했다. 두 군의 평균 차이는 46.9%였다.
목표 수치 도달률에서도 차이가 컸다. LDL-C 70mg/dL 미만을 달성한 환자는 렉비오 병용군 66.7%, 표준치료군 28.1%였다. 렉비오 병용군의 목표 달성률이 표준치료군보다 약 2.4배 높았다는 의미다.
치료 초기에 목표 수치에 도달한 환자도 더 많았다. 렉비오 병용군의 74.6%는 투약 90일 만에 LDL-C 70mg/dL 미만에 도달했다. 표준치료군에서는 이 비율이 26.6%였다. 목표 수치에 도달한 환자 중 75.3%는 연구 종료 시점까지 낮아진 LDL-C 수치를 유지했다. 더 낮은 목표인 LDL-C 55mg/dL 미만 달성률도 렉비오 병용군에서 높았다. 렉비오 병용군은 54.2%, 표준치료군은 13.6%였다.
RNA 치료제, 콜레스테롤 만드는 신호를 낮춘다
렉비오는 siRNA, 즉 짧은 간섭 RNA 기반 치료제다. siRNA 치료제는 특정 단백질을 만들라는 유전정보의 전달 과정을 조절해 질병 관련 단백질 생성을 낮추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유전자를 직접 바꾸는 치료가 아니라, 특정 단백질을 만드는 ‘신호’를 줄이는 치료에 가깝다.
이 약의 표적은 PCSK9 단백질이다. PCSK9은 간에서 LDL-C를 제거하는 수용체의 기능에 영향을 주는 단백질이다. 이 단백질이 많아지면 간이 혈액 속 LDL-C를 처리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렉비오는 PCSK9 생성을 억제해 간이 LDL-C를 더 잘 제거하도록 돕는다.
투여 방식도 기존 매일 먹는 약과 다르다. 의료진이 직접 주사하는 치료제로, 처음 맞은 뒤 3개월 후 한 번 더 투여하고 이후에는 연 2회 맞는 방식이다. 약을 매일 복용하기 어려운 환자에게는 치료 지속성 측면에서 장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모든 환자가 곧바로 RNA 치료제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이상지질혈증 치료의 기본은 여전히 생활습관 관리와 스타틴 약물치료다. 환자의 심혈관질환 위험도, 기존 치료 반응, 스타틴 사용 가능 여부, 다른 지질저하제 필요성 등을 고려해 의료진이 치료 전략을 정한다.
미국심장학회·심장협회(ACC/AHA)는 2025년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진료지침에서 고위험 ACS 환자에게 퇴원 직후 집중적인 지질강하요법을 권고했다. 최대 내약 용량의 스타틴 치료에도 LDL-C가 70mg/dL 이상인 환자에서는 렉비오를 포함한 비스타틴 지질강하요법 추가를 권고했다.
“빠르게 낮추고 오래 유지하는 전략 필요”
한국에서 2024년 6월 원발성 고콜레스테롤혈증과 혼합형 이상지질혈증 치료제로 허가됐다. 이후 2년 동안 실제 진료 현장에서 사용 경험이 쌓였고, 고위험 환자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이용준 세브란스 심장혈관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 환자는 퇴원 후 초기부터 재발 위험 관리가 가장 중요하지만, 기존의 단계적 치료 접근으로는 신속한 LDL-C 목표 도달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복약순응도와 치료 지속성 문제로 목표 수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V-INCEPTION은 최근 급성 관상동맥 증후군을 경험한 환자군에서 신속한 LDL-C 강하와 330일까지의 유지 효과를 확인한 첫 연구”라며 “연 2회 투여로 PCSK9 단백질 생성을 억제하는 치료가 고위험 환자의 지속적인 LDL-C 관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효과만큼 안전성도 중요하다. 실제 치료에서는 주사 부위 반응, 동반질환, 기존 지질저하제와의 병용 여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환자마다 심혈관 재발 위험이 다른 만큼 LDL-C 목표와 치료 계획도 달라질 수 있다.
심근경색이나 불안정성 협심증을 겪은 환자에게 콜레스테롤 관리는 단순한 수치 관리가 아니다. 다시 혈관이 막히는 일을 막기 위한 재발 예방 치료다. RNA 치료제가 고위험 환자의 LDL-C를 빠르고 오래 낮추는 새 선택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