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 환자나 고령 환자 중에는 오랫동안 항생제를 맞아야 하거나, 정맥으로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항암치료 과정에서도 안정적인 정맥 통로가 필요하다. 이때 쓰이는 시술 중 하나가 '말초삽입 중심정맥관'(PICC·Peripherally Inserted Central Catheter).
문제는 거리다. 환자 상태는 불안정한데, 시술을 받기 위해 멀리 있는 대학병원이나 상급종합병원까지 이동해야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특히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고령환자, 중증 환자에게 장거리 이동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치료 지연과 체력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장군을 중심으로 한 부산 동부권에서 이런 환자 이동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역 의료 연계가 시작됐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의학원장 정승필)은 9일 "심장내과 김성만 과장이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해 PICC 시술 연계 체계를 구축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지역 의료기관에서 의뢰한 첫 번째 연계 환자가 의학원을 찾아 성공적으로 시술을 마쳤다.
PICC, 왜 지역에서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가
PICC는 팔의 말초정맥을 통해 관을 삽입한 뒤 끝부분을 중심정맥까지 위치시키는 시술이다. 장기간 항생제 치료, 수액·영양 공급, 항암치료 등 반복적인 정맥 주사가 필요한 환자에게 활용된다.
일반 주사처럼 매번 혈관을 새로 찾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한 삽입과 감염·혈전 등 합병증 예방이 중요하다. 시술 경험과 사후 관리 체계가 필수다. 그래서 그동안 상당수 환자는 대학병원 등 3차 상급종합병원으로 이동해 시술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반드시 멀리 있는 대학병원까지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 상태와 시술 가능 여부를 판단해 지역의 '포괄2차종합병원'에서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다면, 치료 연속성과 접근성은 훨씬 좋아진다. 부울경엔 30곳 '포괄2차'가 있다. 그중 부산은 19곳.
이번 연계 체계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요양병원이나 1차 의료기관이 PICC가 필요한 환자를 확인하면, 가까운 지역 거점 의료기관으로 의뢰해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환자는 장거리 이동 부담을 줄이고, 의뢰한 의료기관은 환자의 치료 계획을 이어갈 수 있다.
요양병원 환자에게 더 절실한 ‘치료 연속성’
PICC가 필요한 환자 중에는 암 치료 중이거나, 감염 치료가 길어지거나, 경구 섭취가 어려운 환자가 많다.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이동 자체가 쉽지 않다. 보호자 동행, 구급차 이동, 대기 시간, 시술 후 복귀까지 모두 부담이다.
가까운 포괄2차종합병원이 이런 시술을 맡을 수 있으면 지역 의료 네트워크의 효율이 높아진다. 상급종합병원은 더 중증도가 높은 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고, 지역 환자는 필요한 시술을 더 가까운 곳에서 받을 수 있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은 기장군 등 인근 지역 요양병원과 1차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PICC 시술 연계 안내를 진행해 왔다. 이번 첫 연계 환자 시술은 그 체계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되는 의료”가 지역완결의 출발점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심장내과 김성만 과장은 최근 1년간 약 500례의 심장혈관 중재시술을 시행해 왔다. 의학원은 이를 기반으로 지역 내 중증 심혈관질환 환자 치료와 응급상황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PICC 연계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거창한 구호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환자가 어디서 치료받을 수 있느냐다. 항생제 치료, 영양 공급, 항암치료를 이어가야 하는 환자가 지역 의료기관의 의뢰를 통해 가까운 곳에서 필요한 시술을 받을 수 있다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는 한 걸음 더 구체화된다.
김성만 과장은 “PICC 시술은 환자의 치료 연속성과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시술”이라며 “지역 의료기관과 긴밀히 협력해 환자들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안전하고 전문적인 시술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