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8일 (수)

우리 아이 쑥쑥 큰다고 좋아했는데… “수명 짧아질 수도” 왜?

아프리카 민물고기서 사춘기 늦추는 유전자 제거하자 종양 늘고 수명 짧아져

엄마가 어린 아들의 키를 재고 있다. 성장과 성숙을 앞당기는 유전자가 노년기 암 위험과 수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이가 또래보다 빨리 크기 시작했다. 병원에선 이상 없다고 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 불안이 틀리지 않을 수 있다. 빨리 자라도록 하는 유전자가 노년의 건강과 수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젊음을 앞당긴 값, 노년에 돌아왔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유전학과 이타마르 하렐 교수팀이 선택한 실험 동물은 '아프리카 청록킬리피시'였다. 아프리카 남동부 짐바브웨·모잠비크 사바나의 계절성 웅덩이에 사는 작은 민물고기다.

다 자라도 몸길이 6cm 남짓으로 손가락 두 마디 크기에 불과하다. 우기에 부화해 2주 만에 성숙한다. 웅덩이가 마르면 성체는 전멸하고, 알만 흙 속에 남는다. 수명이 4~6개월에 불과해 노화 연구에 적합하다.

연구팀은 'vgll3'라는 유전자에 주목했다. vgll3는 사춘기가 오는 시기를 늦춘다. 이 유전자가 정상 작동하는 동안에는 몸이 서두르지 않는다. 브레이크 역할 때문이다.

이 유전자가 관심을 끈 이유는 그간 사람 유전자를 대규모로 살펴본 연구 덕분이었다. 수만 명을 분석했더니 이 유전자 근처에 특정 변이가 있는 사람은 사춘기가 더 일찍 찾아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변이가 있다는 것과 그 유전자가 실제로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이번 연구는 실험으로 답을 내놨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CRISPR)로 이 물고기의 vgll3를 제거했다. 브레이크를 없애고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본 것이다.

vgll3가 작동을 멈춘 물고기는 더 빨리 자랐고 성적 성숙도 일찍 찾아왔다. 야생에서라면 번식 경쟁에서 앞서는 형질이다. 그런데 같은 물고기들이 나이가 들면서 꼬리 지느러미에 검은 종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양이 곧 암은 아니다.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한 덩어리가 종양이고, 그중 주변 조직을 파고들거나 다른 곳으로 번지는 것이 암이다. 이번 실험에서 생긴 종양은 악성, 즉 암에 해당했다. 수명도 짧아졌다.

젊은 시절에는 성장의 연료였던 유전자가 늙어서는 종양과 수명 단축을 불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세포는 분열할 때마다 복제 오류나 DNA 손상 같은 작은 실수가 생길 수 있다. 성장기에는 세포 복구 기능이 활발해 이런 오류들이 대부분 정리된다.

연구팀은 빠른 성장 과정에서 활성화된 세포 활동이 나중에 종양 발생과 연결될 수 있다고 봤다. 오랜 시간 축적된 변화들은 나이 들어 종양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생명체에게 주어진 과제는 빨리 자라고 빨리 번식시키는 것이다.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기고 나면 그 이후는 자연선택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다. 이번 연구는 오래된 생명 패턴 속에 숨어 있는 이유를 보여준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수십 년간 하나의 개념을 이론으로만 갖고 있었다. 어떤 유전자는 젊을 때 이롭고 늙어서는 해롭다는 '길항적 다면발현'이다. 그간 척추동물에서 해당 유전자를 인과 실험으로 증명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인간 얘기이기도 하다

"고작 물고기 연구 아니냐"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vgll3 유전자는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수만 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유전체 연구에서 이 유전자 근처의 특정 변이를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사춘기가 일찍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가 이미 나와 있다.

물고기와 인간 사이엔 4억 년이 넘는 진화의 거리가 있다. 그런데도 같은 유전자가 같은 방향으로 작동했다.

하나의 스위치가 네트워크를 바꿨다

그렇다면 이 유전자 하나가 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말인가.

vgll3는 한 가지 일만 하는 유전자가 아니다. 다른 수십 개 유전자의 스위치를 조율하는 상위 조절자다. 하나가 바뀌면 연결된 네트워크 전체가 달라진다.

물론 이번 실험은 한계를 갖고 있다. 효과는 수컷 물고기에서만 뚜렷했고, 암컷에서는 같은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인간을 직접 실험한 것도 아니다.

이 유전자 하나가 암을 결정짓거나 성조숙증 환자의 암 위험 가능성을 직접 뜻하지도 않는다. 암은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질환이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2026년 6월 2일자에 실렸다.

고장 난 게 아니라, 원래 그런 특성이었다

많은 사람이 나이 들면서 몸 여기저기가 삐걱거리기 시작할 때 스스로를 탓한다. 관리를 못 했다고, 더 일찍 챙겼어야 했다고.

그런데 이번 연구가 제공하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빨리 자란 몸에는 성장의 이점과 노화의 비용이 함께 따라왔다.

젊을 때 앞서가도록 밀어붙인 그 에너지가 나이 들어서는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 몸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진 특성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

연구팀의 다음 목표는 이 유전자의 이점을 살리면서 피해는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몸의 변화를 한탄하기 앞서 몸이 원래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먼저 파악하자. 이런 생각만으로도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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