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7일 (화)

'제2의 글리벡' 나오나…희귀 위장관암 치료제 경쟁 불붙었다

벨자티닙, 1차 치료 환자 61%서 종양 감소…20년 만에 표준치료 바뀌나

위장관기질종양은 위나 장의 벽에서 발생하는 드문 종양이다. 장 운동의 ‘박동 조절기’ 역할을 하는 카할 간질세포(interstitial cells of Cajal)에서 주로 생기며, 상당수 환자에서 KIT 유전자 변이가 관여한다. 암이 전이되거나 재발하면 약물치료가 중요해진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위나 장의 벽에서 생기는 희귀암이 있다. 위장관기질종양(GIST)이다.

20년 전 글리벡이 판도를 바꿨지만 이후 치료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글리벡에서 내성이 생기고, 이후 치료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지난 5월 29일부터 6월 2일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2026)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2의 글리벡'을 노리는 차세대 치료제들이 잇따라 데이터를 공개했다. 20년 만에 GIST 치료의 중심축이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20년 전 판을 바꾼 약

2001년 노바티스가 내놓은 글리벡은 제약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약이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을 주요 적응증으로 허가받았고, 이후 GIST에도 효과가 확인되면서 쓰임새가 넓어졌다. 암을 일으키는 특정 유전자 변이를 정밀하게 차단하는 데 성공한 초기 표적항암제로, 항암 치료의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CML만 해도 그렇다. 진단받으면 빠르게 악화되던 병이었는데, 글리벡 이후 만성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 5년 생존율이 1990년대 초 30% 수준에서 90% 이상으로 뛰었다.

절정기인 2015년 글로벌 연간 매출은 약 47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조 원에 달했다. 2015년을 안팎으로 주요 시장에서 특허가 만료되고 복제약이 쏟아지면서 매출은 급감했지만, 정밀의학 시대를 연 약으로 지금도 회자된다.

왜 약이 안 듣게 될까

GIST는 드문 암이다. 전 세계에서 연간 100만 명 가운데 10~20명꼴로 생기며 미국에서는 한 해 4000~6000명이 새로 진단된다.

대한위장관기질종양연구회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연간 500~1000명의 신규 환자가 생기는 것으로 추산된다.

위암·대장암처럼 점막에서 생기는 암이 아니라 위장관 벽 근육층에서 발생하는 특수한 암이라 치료 방식도 다르다.

상당수 환자에서 KIT 유전자 변이가 원인이다. KIT는 세포 성장 신호를 조절하는 단백질(c-KIT)을 만드는 유전자로, 여기에 이상이 생기면 암세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전이가 없으면 수술로 제거할 수 있지만 암이 퍼지거나 재발하면 약물치료가 중요해진다.

2000년대 초반 글리벡이 등장하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2002년 전이성 GIST 치료제로 허가되며 표준치료의 토대를 닦았다. 이후 화이자의 '수텐'(수니티닙)이 2006년 2차 치료제로, 바이엘의 '스티바가'(레고라페닙)가 2013년 3차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1차 치료는 처음 쓰는 약, 2차는 그 약이 안 들을 때 쓰는 약, 3차는 그다음 단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선택지는 줄어든다.

약이 바뀌는 이유는 대부분 내성 때문이다. 글리벡은 KIT를 강하게 억제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암세포가 KIT에 새 변이를 만들어 약효가 떨어진다. 그러면 다음 치료제로 넘어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었다.

내성 생긴 암까지 겨냥한다

영국계 제약사 GSK가 이번 학회에서 공개한 '벨자티닙'은 바로 이 한계를 겨냥한 차세대 치료제다. 글리벡·수텐을 쓰는 동안 새로 생기는 내성 변이까지 억제하도록 설계된 신약이다.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기업 IDRx가 개발했으며 GSK가 2025년 1월 약 10억 달러 규모에 인수하면서 확보했다.

초기 임상 결과를 보면 1차 치료군 환자 가운데 61%에서 종양 크기가 의미 있게 줄었다. 2차 치료 환자 49명에서는 38%에서 종양이 작아졌다. 기존 2차 치료제인 수텐의 반응률이 통상 10%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차이다. 2차 이상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암이 악화되지 않은 기간의 중앙값이 약 17개월이었다.

여기에 정밀성이라는 강점도 있다. 수텐은 KIT 외에 여러 표적에도 작용해 부작용 부담이 컸다. 벨자티닙은 KIT 변이만 집중 공략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FDA 허가·표준치료 경쟁 시작

GSK는 글리벡 치료 후 내성이 생긴 환자에서 벨자티닙과 수텐을 직접 비교하는 3상 임상 'StrateGIST 3'도 공개했다. 새로 진단된 환자에서 벨자티닙과 글리벡을 맞대결하는 1차 치료 3상도 준비 중이다. 20여 년 전 글리벡이 그랬던 것처럼 GIST 치료의 판을 다시 써내려 가겠다는 목표다.

이에 맞서 미국 바이오기업 코젠트 바이오사이언스는 이번 학회에서 다른 KIT 억제제 '베주클라스티닙'의 3상 전체 데이터를 내놨다. 베주클라스티닙은 미국 바이오기업 플렉시콘(현재 일본 다이이치산쿄 계열)으로부터 라이선스를 받아 코젠트가 개발·임상을 진행해 왔다.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서 베주클라스티닙과 수텐을 함께 쓴 결과, 암이 악화되지 않은 기간의 중앙값이 16.5개월로 수텐만 쓴 군의 9.2개월보다 7개월 이상 길었다.

두 약물의 전략은 다르다. 베주클라스티닙은 특정 KIT 변이를 겨냥하기 때문에 여러 변이를 한꺼번에 억제하려면 다른 약과 함께 써야 한다. 벨자티닙은 약 하나로 더 넓은 KIT 변이를 노리는 방향이다.

후발 주자인 미국 바이오기업 디사이페라 파마슈티컬스(현재 일본 오노제약 자회사)의 '퀸록'은 2차 치료에서 수텐보다 낫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했다. 다만 일부 환자군에서는 가능성이 확인돼 추가 개발을 모색하고 있다.

20년 넘게 글리벡 이후 치료 순서가 크게 바뀌지 않았던 희귀암 환자들에게 처음으로 표준치료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규모 3상 결과와 장기 안전성 확인이 남아 있지만 무게중심은 이미 이동 중이다.

댓글 1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