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을 판단하는 데 활용되는 대표적인 지표인 체질량지수(BMI)가 실제 건강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해외 연구 결과가 나왔다. BMI 기준으로 정상 범위에 해당하더라도, 복부 내장지방이 많고 건강 이상이 동반된다면 사실상 비만 상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제 의료계가 비만을 단순한 체중 문제가 아니라 체지방 분포 및 질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한 가운데, 국내에서도 BMI 기준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BMI 정상이어도 비만일 수 있어
최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케크 의대 연구진은 국제학술지 《내과학연보(Annals of Internal Medicine)》에 BMI 기준이 상당수 비만 위험군을 놓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이 미국 국민건강영양조사(NHANES)에 참여한 성인 약 5600명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BMI 기준으로 정상 체중인 사람 가운데 약 26%가 ‘임상적 비만’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MI 기준 과체중으로 분류된 사람들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임상적 비만에 해당했다. BMI 기준으로 비만이 아니라고 해서 비만과 관련된 건강 위험이 없다는 것이 연구진의 분석이다.
BMI의 한계…새롭게 등장한 ‘임상적 비만’
키와 몸무게로 비만도를 평가하는 BMI는 오랫동안 비만 진단의 표준 지표로 활용돼 왔다. 일반적으로 BMI 18.5 미만은 저체중, 18.5~24.9는 정상 체중, 25~29.9는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BMI는 체지방을 고려하지 않고 근육과 뼈를 포함한 전체 체중만을 반영한다는 한계가 꾸준히 지적돼 왔다. 가령 근육량이 많은 사람은 실제 체지방이 많지 않아도 BMI가 높게 나올 수 있고, 반대로 근육량이 적은 사람은 BMI가 정상이어도 체지방 비율이 높을 수 있다.
이 같은 문제 의식은 2025년 ‘랜싯 당뇨병 및 내분비학 위원회(Lancet Diabetes and Endocrinology Commission)’가 제안한 ‘임상적 비만’ 개념으로 이어졌다. 위원회는 비만을 단순히 체중이 많이 나가는 상태가 아니라, 과도한 체지방으로 인해 실제 건강에 이상이 발생한 질환으로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상적 비만은 허리둘레, 허리-엉덩이둘레 비율, 허리-신장 비율 등 복부 지방을 평가하는 지표를 활용한다. 이들 지표 가운데 최소 두 가지 이상에서 복부 지방 축적이 확인되고, 심혈관질환이나 관절 통증, 대사질환 등 비만과 연관된 건강 문제가 동반될 경우 비만으로 판단한다. 복부 깊숙이 쌓이는 내장지방은 심혈관질환, 제2형 당뇨병, 지방간, 일부 암 등 다양한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번 USC 연구는 BMI만으로는 실제 건강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대규모 인구 자료를 통해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
국내에선 오히려 “기준 올리자” 주장도
흥미롭게도 국내 논의는 미국 연구와는 다른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USC 연구가 BMI 기준만으로는 비만 위험군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반면, 국내에서는 현행 BMI 25 이상인 비만 기준을 27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지난해 약 847만 명의 건강검진 자료를 21년간 추적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이 같은 의견을 내놨다. 분석 결과 전체 사망 위험은 BMI 25 구간에서 가장 낮았고, BMI가 높아질수록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등 심뇌혈관질환 관련 위험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이다. 질환별 위험 증가 폭이 두드러지는 구간은 BMI 27 전후부터 30 이상까지 차이를 보였다.
연구원은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한국인에게 적합한 비만 기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BMI 27 이상을 새로운 기준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학계 “예방 관점에서 접근해야”
대한비만학회 등 관련 학계는 BMI 기준 상향 주장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만 진단의 목적이 사망 위험 평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심뇌혈관질환 등 비만 관련 합병증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BMI가 증가할수록 만성질환 발생 위험도 함께 높아지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으며, 일부 질환은 비만 전 단계부터 위험이 증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준을 높일 경우 생활습관 개선이나 조기 개입이 필요한 이들이 관리 체계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젊은 층의 비만과 대사질환 증가, 아동·청소년 비만 문제가 커지고 있는 만큼 예방 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결국 쟁점은 ‘BMI만으로 충분한가’
결국 공통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BMI 수치만으로 개인의 건강 위험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BMI는 간편하고 대규모 인구를 평가하는 데 유용한 지표지만, 체지방 분포나 대사 건강 상태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BMI가 같더라도 복부지방이 많거나 혈당, 혈압, 지질 수치에 이상이 있다면 실제 건강상 위험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현재 정부와 학계는 지난해 구성된 비만기준협의체를 통해 BMI 기준 조정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기준 수치를 유지할지, 상향할지를 둘러싼 의견 차이는 여전하지만, BMI 외에 복부비만과 대사질환 위험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인식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의 비만 관리가 BMI 수치만을 기준으로 하기보다 허리둘레와 체지방 분포, 동반질환 여부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BMI가 정상인데도 비만일 수 있나?
A. 가능하다. 최근 USC 연구에 따르면 BMI 기준 정상 체중으로 분류된 성인 중 약 26%가 복부 지방 축적과 건강 이상을 동반한 ‘임상적 비만’ 기준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MI는 체지방을 직접 측정하지 않아 실제 건강 위험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Q2. 임상적 비만은 기존 비만과 무엇이 다른가?
A. 기존 BMI가 키와 체중만으로 비만 여부를 판단하는 반면, 임상적 비만은 허리둘레, 허리-엉덩이둘레 비율, 허리-신장 비율 등을 통해 복부 지방을 평가하고, 비만으로 인한 건강 이상이 동반됐는지까지 함께 고려한다.
Q3. 국내에서는 왜 BMI 기준을 높이자는 의견이 나오나?
A.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은 대규모 추적 연구를 바탕으로 현행 BMI 25 이상인 비만 기준을 27 이상으로 조정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반면 대한비만학회는 비만 관련 합병증 예방을 위해 현행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학계와 정책 당국 간 논의가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