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심한 통증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해요. 낮에도 꾸벅꾸벅 졸다가 통증으로 깨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이게 사는 겁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두통만 생겨도 괴롭다. 그런데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끝없이 이어진다면? 진통제도 듣지 않아 언제 끝날 줄 모르는 최악의 통증... "죽고 싶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결국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들은 결정적 이유로 통증을 꼽았다. 가족들은 완강히 말린다. 하지만 "당신은 내가 겪는 통증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울음 섞인 환자의 말에 한숨만 내쉰다.
지난 2월 조력 존엄사가 허용된 국가로 출국하려던 60대 남성이 공항에서 포기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족이 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보고 119에 연락, 경찰이 설득에 나서자 출국을 중단한 것이다. 60대 남성은 희귀 질환으로 평소 극심한 통증에 시달려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외국인에게도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로 가기 위해 준비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국가는 환자가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의 조력 존엄사를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은 그들의 통증을 이해 못한다
얼마나 아팠으면 스스로 삶을 정리하려고 했을까? 진통제나 수면제는 듣지 않았을까? 혹시 우울증이 심했던 것은 아닐까? 우울증이 심하면 '죽음'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여러 생각이 스쳐간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건강한 사람은 그들의 심정을 결코 이해 못할 것이다. 그들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극한의 통증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조력 존엄사로 세상을 떠난 경우는 이제 10명에 육박한다. 이 과정은 남유하 작가(소설가)가 펴낸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남 작가는 2023년 스위스의 조력 사망 기관에서 세상을 떠난 고 조순복 님의 딸이다. 그는 엄마의 유방암 재발과 그로 인한 통증, 출국 과정 등을 책에 담았다. 엄마는 유방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몇 달 뒤 "조직에 남아 있던 암이 뼈로 전이되어 이미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누구보다 강인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대단했다. 항암치료와 수술을 거듭하면서도 명랑한 성격 그대로였다. 암세포와 더불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암은 몸속 곳곳의 뼈로, 피부로, 위장으로, 폐로 마구 뻗어나갔다. 그토록 강인했던 엄마의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가 극심한 고통을 잠시 잊기 위해 죽음을 ‘상상’할 뿐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엄마의 서랍에서 비닐도 뜯지 않은 붕대를 발견한 순간, 딸은 두려움에 빠졌다.
딸은 엄마가 홀로, 외롭게 떠날까 봐 밤잠을 못 이루었다. 딸은 어머니에게 "자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냈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의 건강은 더 악화되었다. 대퇴골에 이어 위장으로도 전이된 암의 극심한 고통이 더해졌다. 치료가 노령의 환자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진단, 최대 2주까지만 입원이 가능하다는 호스피스 병원의 회신... 어머니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내가 원하는 죽음을 맞고 싶다"고 몇 번이고 강조했다. 완강하게 말리던 딸도 삶을 마무리할 '좋은 방법’을 함께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진지한 조사와 논의 끝에, 외국인의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스위스행을 결정했다.
한국은 '연명의료결정법' 정착... 통증 완화 위한 의료행위 가능
한국에서 조력 존엄사는 엄연히 불법이다. 지난 2022년 국회에서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하는 법이 발의됐지만 갈 길이 멀다. 의사는 독극물 처방만 할 뿐 이를 투약하는 사람은 환자 본인이다. 이런 소극적 존엄사는 현재 스위스,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서 허용하고 있다. 의사가 직접 치명적인 약을 주입하면 적극적 존엄사,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스스로 복용하면 소극적 존엄사(조력 자살)에 해당한다. 적극적 존엄사는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다.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들도 의사의 직접 개입은 조심스런 입장이다.
한국은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것이다.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을 법적으로 중단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암은 완치가 없다...통증 없애는 합법적 방법 찾아야
암은 쉽게 '완치'를 말하면 안 된다.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은 대개 5년 상대 생존율을 완치의 잣대로 삼는다. 치료 후 5년이 지나 암 세포가 사라지면 완치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완치'는 암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검진하고 몸을 살펴야 한다. 유방암은 다른 암에 비해서도 재발이 잘 된다. 재발 사례의 약 80%가 첫 치료 후 5년 안에 나타나지만, 20년 뒤에 재발한 사례도 있다. 재발 암은 통증이 더 심하다. 뼈, 폐, 간, 중추신경계 등으로 전이된 암은 곳곳에서 통증을 일으킨다.
말기 암 환자가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병원 행정 중심의 호스피스 병원이 아닌, 환자 중심의 병원이 절실하다. 극심한 통증이 두려워 죽음을 생각하는 환자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나는 소극적 존엄사에 반대한다. 하지만 스스로 죽기 위해 외국까지 가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한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는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통증을 줄이는 통증 완화 의료를 넘어서, 아예 없애는 합법적 방법은 없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