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테로이드 등 금지약물 복용을 공공연히 허용하는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이 국제 스포츠계의 거센 비판 속에서 막을 올렸다.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는 자극적인 슬로건으로 세간의 주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실상은 선수들의 건강을 담보로 한 위험한 쇼이자, 약물 판매를 위한 상업적 행사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4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이 대회는 육상·수영·역도 등 42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주최 측은 세계 신기록 달성 시 100만 달러(약 15억 원), 종목 우승 시 25만 달러(약 3억7000만 원) 등 파격적인 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약물로 도배된 신기록의 향연은 없었다. 세계 기록 경신은 그리스 수영선수 크리스티안 골로메에프가 남자 자유형 50m에서 세운 비공식 기록 단 하나에 그쳤다.
골로메에프는 남자 50m 자유형에서 20.81초로 공식 세계 신기록보다 빠른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이는 캐머런 매커보이(호주)가 3월 세운 세계기록 20.88초를 0.07초 앞당긴 것이다.
오히려 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선수가 약물 복용 선수를 이기는 사례도 속출했다. 남자 육상 100m에서 약물 없이 9초97로 우승한 전 세계 챔피언 프레드 커리(미국)는 “그들은 훈련을 더 하거나 약을 더 먹어야 할 것”이라며 약물 사용 선수들을 비판했다.

“깨끗한 스포츠는 허구”…궤변으로 약물 사용 정당화
대회 창립자인 호주 출신 기업가 아론 디소우자는 “어차피 모든 엘리트 선수가 약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깨끗한 스포츠’는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는 엘리트 선수의 40% 이상이 금지 약물을 사용하지만 적발률은 2%에 불과하다는 특정 연구를 내세우며 도핑 방지 시스템의 실패를 지적했다. 또한 “내 몸은 내 선택”이라는 구호 아래 선수 개인의 신체적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의료계와 스포츠계는 그의 주장이 대중을 호도하는 ‘선별적 데이터’에 기반한 궤변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올림픽에서 치료 목적 사용 면제(TUE)를 받아 합법적으로 약물을 사용하는 선수는 1% 미만이며, 이것이 메달 획득과 유의미한 연관성이 없다는 연구 결과는 의도적으로 무시했다는 것이다.
진짜 목적은 ‘약물 판매’?…공중 보건 위협하는 상업화
더 큰 문제는 이 대회가 약물 사용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없애고, 약물 사용을 정상적인 것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특히 주최 측과 후원사가 테스토스테론 등 경기력 향상 약물을 소비자에게 직접 마케팅하고 판매하는 상황은 명백한 이해충돌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사실상 대회를 약물 판매를 위한 거대한 홍보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 전문가들은 약물 사용의 정상화와 상업화가 심각한 공중 보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경고한다. 이런 경고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실제 연구에 따르면, 약물 사용이 빈번한 프로 보디빌딩 선수는 그렇지 않은 아마추어 선수에 비해 심장급사(SCD) 발생률이 14배 이상 높다는 보고도 있다.
특히 최근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번지는 ‘테스토스테론 과다 복용(T Maxxing)’과 같은 위험한 유행에 이번 대회가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최 측은 선수들이 의료진의 관리를 받기에 안전하다고 항변하지만, 이는 대회를 보고 약물을 모방할 일반 대중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결국 인핸스드 게임은 인간의 한계를 넓힌다는 거창한 명분과 달리, 스포츠의 공정성을 훼손하고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하며 대중의 약물 오남용을 부추기는 위험한 대회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