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8일 (수)

아이 낳으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혈압이 왜 이래” 무슨 일?

5월 22일 세계 자간전증의 날…출산 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심부전·뇌졸중 위험 커졌다

임신한 여성이 집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사진=클리아트코리아

"임신 때 혈압 좀 높다고 했는데, 낳고 나면 괜찮아지는 거 아닌가요."

출산하면 해결된다며 잊고 지낸 여성들이 있다. 임신 중 혈압이 높았던 사람들, 즉 자간전증(옛 이름 임신중독증)을 겪은 사람들 얘기다.

이 병을 앓는 여성이 늘고 있다. 통계청의 2024년 출생통계를 보면 한국 여성의 첫째 아이 출산 연령은 평균 33.1세까지 높아졌다. 1990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다.

자간전증 위험은 고령 임신에서 더 높아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자간전증 관련 진료 인원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약 70% 늘었다.

더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낳아도 '끝'이 아니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병원도, 본인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 사이 혈관은 조용히 손상된 채로 남는다.

늦게 낳을수록 커지는 혈관 위험

매년 5월 22일은 세계 자간전증의 날이다. 자간전증재단과 임신고혈압국제학회 등 전 세계 모성보건단체들이 2017년 공동으로 제정했다.

올해 주제는 '증상을 알아라(Know Her Symptoms)'다. 최근 자간전증이 임신 중만이 아니라 분만 후 최대 6주까지도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주목받으면서, 출산 뒤 증상까지 함께 알자는 취지를 담았다.

나이가 들수록 혈관이 굳고 만성 염증도 쌓인다. 태반 혈관이 자궁벽에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 그만큼 더 불안정해진다. 의학적으로 만 35세 이상이면 고령 임신으로 분류된다.

이 병의 옛 이름 '임신중독증'은 잘못된 표현이다. 독이 올라오는 것처럼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 병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간전증(子癎前症)은 전자간증(前子癎症)이라고도 불린다. 자간증은 임신 기간이나 분만 전후에 전신의 경련 발작이나 의식불명으로 나타난다. 자간전증에서는 혈압이 높아지면서 단백뇨가 배출된다. 자간전증이 심해지면 자간증이 된다.

자간전증의 원인은 태반에 있다. 임신 초기 태반 혈관이 자궁벽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하면 혈류 공급이 흔들린다. 산모 전신 혈관이 손상되고, 임신 20주 이후 혈압이 치솟으며 소변에서 단백질이 나온다. 심해지면 뇌·간·신장·눈까지 공격한다.

가장 근본적인 치료법은 분만이다. 약으로 혈압을 낮출 수는 있지만 원인인 태반을 고칠 방법은 없다. 태반이 빠져나오면 증상이 나아지는 경우가 많다. 원인을 아직 완전히 밝혀내지 못해 수십 년이 지나도 치료 선택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산하면 끝? 심장은 기억

그래서 많은 여성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혈압도 정상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상으로 돌아간 뒤, 숨이 쉽게 차거나 계단을 몇 층만 올라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여성들이 있다. 대부분은 출산과 연결해 생각하지 못한다.

바로 그 순간이 문제다. 비록 수치가 정상으로 보여도 혈관이 입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출산 후 3개월이 지나도 고혈압이 지속되는 산모가 적지 않고, 심한 경우 혈압과 단백뇨가 정상으로 돌아오는 데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아이를 돌보느라 검진은 엄두도 못 낸다. 몸은 이미 정상처럼 보이지만, 혈관이 입은 상처는 그사이 조용히 쌓인다.

영국 킬대 연구팀이 전 세계 여성 650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해 2017년 내놓은 메타분석에서 자간전증을 겪은 여성은 이후 심부전 위험이 약 4배, 뇌졸중 위험은 약 2배 높았다. 나이·비만·당뇨를 감안해도 위험은 그대로였다. 자간전증이 혈관·내피·대사에 남긴 흔적은 수년, 수십 년 뒤까지 남는다.

심부전·뇌졸중에 그치지 않는다. 덴마크 국립혈청연구소 연구팀이 덴마크 여성 117만 명을 추적한 코호트 연구를 2018년 영국 의학 학술지 《BMJ(British Medical Journal)》에 발표한 결과, 혈관성 치매 위험도 더 높게 나타났다. 자간전증이 건드린 혈관은 뇌까지 이어진다.

임신은 심장에 극한 부하를 준다. 혈장량이 임신 중반 이후 최대 약 50%까지 불어난다. 자간전증은 혈관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신호다. 태반이 사라진 뒤에도 혈관 내피세포의 염증과 손상 흔적은 수년간 남는다.

출산 이후부터 관리 시작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올해 세계 자간전증의 날 캠페인은 '확인하고, 알고, 나누자(Check, Know, Share)'다. 혈압을 직접 재고, 수치를 이해하고, 의료진과 상담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미국 자간전증재단이 올해 임산부 약 3000명을 조사한 결과, 자간전증을 아는 비율은 80%였지만 증상을 모두 정확히 설명한 비율은 8%에 그쳤다.

자신이 고위험군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 만 35세 이상, 첫 임신, 비만, 고혈압·당뇨·신장 질환, 자간전증 가족력, 다태 임신이 해당한다. 하나라도 해당된다면 담당 의사와 아스피린 복용을 상의할 필요가 있다.

칼슘 섭취가 부족한 여성은 칼슘 보충제도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도 위험을 낮춘다. 임신 20주 이후 두통·시력 저하·상복부 통증·갑작스러운 부종이 나타나면 즉시 병원으로 가야 한다.

미국심장학회와 유럽심장학회는 자간전증을 겪은 여성에게 출산 후 6~12개월 안에 혈압·혈당·콜레스테롤을 점검하고 이후 매년 심혈관 상태를 살피라고 권고한다. 집에서 주 2회 이상 혈압을 재고 적어두는 것도 방법이다. 어느 과 의사를 만나든 자간전증 병력을 먼저 말해야 한다. 그 한마디에 검진 계획이 달라진다.

출산 뒤 가족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쏠린다. 그 사이 산모 혈압은 관리 사각지대로 밀린다. 가족이 함께 혈압을 기록하고 검진 일정을 챙기자.

임신 당시 혈압이 높았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면 그 진단은 산부인과 차트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심장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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