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어머니가 집안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아들 출산을 강권했지... 또 딸을 낳으면 한동안 말도 안 했어"... 예전에 8녀1남을 낳으신 할머니를 뵌 적이 있다. 딸을 8명 내리 낳다가 결국 아들을 출산했다. 동네 잔치가 열렸고 집안 어른들이 앞다투어 축하선물을 보냈다고 한다.
과거 남아선호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집안의 대를 잇기 위해 여아보다 남아를 선호했다. 아들이 없으면 문중 어른들은 "제사 지낼 사람이 없다"며 한탄했다. 우리 할머니들은 힘들게 임신-출산 과정을 겪고도 딸을 낳으면 한동안 '죄인'처럼 지내야 했다.
최근 뿌리 깊은 남아선호 사상이 퇴조하고 있다. 오히려 아들보다 딸을 낳으려는 젊은 부부들이 늘고 있다. 굳이 집안의 대를 잇고 싶다면 자녀는 엄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딸이 가계나 사업을 이어가는 집안도 많다. 일부 대기업은 아들보다 경영 능력이 뛰어난 딸을 후계자로 선택하고 있다. 요즘은 제사 지내는 가정이 줄고 있지만, 딸이 제사를 주관할 수도 있다. 가족 간의 합의에 따라 무엇이든 가능한 시대다. 아들, 딸 구분은 무의미한 시대다. 이제 남아선호 사상이란 말에는 오래 된 곰팡이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엄마가 집에서 자녀 돌봐야"...반대 34.12% vs 동의 33.83%
자녀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인식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맞벌이가 늘면서 엄마, 아빠의 공동 육아나 기업-정부 지원에 기대고 있는 추세다. 이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엄마가 자녀를 집에서 돌봐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한다는 응답(34.12%)이 동의한다는 응답(33.83%)을 앞섰다. 지난해 2~6월 한국의 7300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다. 해당 설문이 시작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자녀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인식이 퇴조한 것이다. 2007년엔 64.7%가 자녀를 엄마가 집에서 돌봐야 한다고 답했다.
엄마가 자녀를 집에서 돌봐야 한다는 의견이 18년 사이 64.7%에서 33.83%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17.7%에서 34.12%로 약 2배 증가했다. 이런 변화는 맞벌이 추세에 따라 육아를 가정에만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높아진 영향으로 보인다. 기혼 여성 고용률은 2007년 49.1%에서 2025년 67.3%로 증가했다. 18세 미만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도 64.3%로 가장 높았다. 과거 엄마의 몫을 아빠나 기업, 지방자치단체들이 분담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그래야 저출산 문제도 완화될 수 있다.
한국인 50대 이하는 아들보다 딸 더 선호
한국인의 남아선호는 1992년 58%에서 2024년 15%로 크게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특히 50대 이하는 아들보다는 딸을 더 선호했다. 특히 30, 40대 여성의 여아 선호(40%대)가 두드러졌다. 60대 이상에서도 남·여아(23%·20%) 선호가 비슷했다. 갤럽 인터내셔널이 2024년 전국 19세 이상 153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1992년 조사에선 한국인의 58%가 아들, 10%가 딸을 원했다. 당시 아들 선호 비율은 40대 65%, 50대 이상은 79%에 달했다.
이는 한국의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의 출생 성비(여아 100명 당 남아) 자료에서도 나타난다. 1990년 116.5명으로 아들이 최고 비율이었지만, 2023년은 105.1명으로 감소했다. 2008년 이후로는 자연 성비 범위(103~107명)에 머물고 있다. 국가 통계에서도 남아선호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딸 선호는 한국이 세계 1위다. 세계 44개국을 대상으로 한 갤럽의 글로벌 조사에서 딸 선호 상위 5개국 중 한국(28%)이 1위였다. 이어 일본·스페인·필리핀(26%), 방글라데시(24%) 순이었다.
딸이 왜 좋을까?
한국의 딸 선호 현상은 사회 전반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과거 '1남8녀'를 낳던 시절, 일부 여성은 '현모양처'를 꿈꾸며 결혼을 최우선 순위에 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딸들은 치열한 취업 경쟁을 뚫고 직장에서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고위직 여성도 늘고 있다. 집안에선 유산 분배도 딸, 아들 1대1로 대등하다. 자녀들은 엄마의 성을 따를 수도 있다. 굳이 집안의 대를 잇고 싶다면 여성이 이을 수도 있다. 아들, 딸 구분의 의미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
부모들은 "딸 키우는 재미가 아들보다 낫다"는 말을 한다. 딸은 나이가 들어도 아들보다 더 세심하게 부모를 챙기는 경향이 있다. 노부모의 병원 진료를 돕는 사람은 대부분 딸이다. 노후 생활의 버팀목은 딸이라는 말도 한다. 다만 개인의 사례를 일반화할 순 없다. 그래도 "딸이 더 좋다"는 것은 여러 조사-통계에서도 확인된다. '딸 선호' 세계 1위 국가가 된 한국... 남아 선호, 딸 선호를 넘어서 2명은 낳아야 한다는 당부는 '아재'(아저씨의 낮춤말)의 넋두리일까? 저출산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