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의 초점이 뇌에 쌓이는 독성 단백질인 아밀로이드 베타에서 타우 단백질로 넓어지고 있다. 바이오젠은 일본 에자이와 함께 항아밀로이드 베타 항체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를 개발한 데 이어, 알츠하이머병의 또 다른 핵심 병리로 꼽히는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 후보물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바이오젠과 아이오니스 파마슈티컬스가 공동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후보물질 ‘디라너센’(diranersen, 개발명 BIIB080)은 최근 임상 2상에서 연구의 성패를 가늠하는 1차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이오젠은 후기 임상에 해당하는 허가 목적 개발 단계로 진입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임상에서 뇌 속 타우 병리 감소와 인지기능 저하 지연 가능성이 함께 관찰됐다는 이유에서다. 바이오젠은 14일(현지시간)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2상(CELIA 연구)의 주요 결과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타우로 넓어진 치매 신약 경쟁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은 최근 몇 년간 아밀로이드 베타를 중심으로 전개돼 왔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비정상적으로 쌓이는 단백질로, 신경세포 손상과 인지기능 저하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자이와 바이오젠이 개발한 레켐비는 2023년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았고, 일라이 릴리의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도 2024년 FDA 승인을 받으며 초기 알츠하이머병 치료 시장에 진입했다. 다만 같은 계열에서 가장 먼저 시장에 나왔던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은 효능과 승인 절차를 둘러싼 논란 끝에 개발과 상업화가 중단됐다. 바이오젠은 2024년 1월 아두헬름의 개발과 판매를 중단하고 레켐비와 후속 알츠하이머병 파이프라인에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디라너센은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니라 타우 단백질을 겨냥한다. 타우는 정상 상태에서는 신경세포 내부 구조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병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축적돼 신경세포 안에서 엉킴 구조를 만들고, 신경퇴행과 인지기능 저하에 관여한다.
디라너센은 안티센스 올리고뉴클레오타이드(ASO) 치료제다. 특정 유전정보 전달 과정에 개입해 타우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양을 줄이도록 설계됐다. 회사는 디라너센이 세포 밖 타우뿐 아니라 세포 안 타우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임상 신호는 긍정적, 핵심 평가는 실패
이번 CELIA 연구는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 41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글로벌 임상 2상이다. 대상자는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경도인지장애 또는 경증 알츠하이머병 치매 환자였으며, 모두 이전에 항아밀로이드 치료를 받은 적이 없었다.
연구에서는 디라너센 60mg을 24주마다 투여하는 군, 115mg을 24주마다 투여하는 군, 115mg을 12주마다 투여하는 군 등 세 가지 용량이 평가됐다. 투약은 척수강 내 투여 방식으로 이뤄졌고, 위약 대조 기간은 76주였다. 임상 2상의 1차 평가변수는 76주 시점에서 임상치매척도 총점(CDR-SB)의 연구 시작 시점 대비 변화에서 용량 반응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 지표는 기억력, 판단력, 사회활동, 가정생활, 개인 위생 등 여러 영역을 종합해 치매 중증도 변화를 평가하는 지표다. 일반적으로 약을 많이 쓸수록 효과가 커지는 양상이 확인되면 용량 반응성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고용량군이 저용량군보다 더 뚜렷한 효과를 보이는 방식의 용량 반응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특히 가장 낮은 용량인 60mg 24주 간격 투여군에서 임상적 저하 지연 효과가 두드러지면서 연구는 1차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했다.
타우 신약 승부수, 3상서 판가름
그럼에도 바이오젠은 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회사는 사전에 정한 인지기능 평가 분석에서 모든 용량군에서 임상적 저하가 늦춰지는 경향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또 뇌척수액 내 타우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으로 측정한 타우 병리가 모든 용량군에서 강하게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디라너센의 안전성과 내약성도 기존 임상 1b상에서 관찰된 양상과 대체로 일치했다는 입장이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신중하다. 바이오젠과 아이오니스가 아직 위약(가짜약) 대비 인지기능 개선 폭이 어느 정도였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요 결과가 공개되자 시장 분석가들은 인지기능 저하 지연 가능성은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긍정적인 신호지만, 효과의 크기가 공개되지 않은 점은 한계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디라너센의 임상 결과는 알츠하이머병 신약 개발이 아밀로이드 베타 제거를 넘어 타우 조절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시험대로 평가된다. 타우는 알츠하이머병의 신경퇴행과 인지기능 저하에 밀접하게 연결된 병리로 꼽히지만, 이를 표적으로 한 치료제가 임상에서 뚜렷한 효과를 입증한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바이오젠은 디라너센의 전체 데이터를 오는 7월 열리는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 2026) 등 학술대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디라너센이 실제 치료제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임상 3상에서 인지기능 저하 지연 효과의 크기와 안전성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고 본다. 1차 평가변수를 충족하지 못했고 핵심 수치가 아직 공개되지 않은 만큼, 후속 임상에서 치료 효과를 얼마나 분명하게 확인하느냐가 개발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