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은 인간의 직관을 깨면서 발전해왔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생각은 갈릴레이에 의해 교정됐다. 늘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고 여겨졌던 시간에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을 부여했다.
사람들이 상식에 반하는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는 행태에는 이런 배경도 일부 작용했지 싶다. 상식을 뒤집는 주장 중 하나가 ‘식초는 맛은 시지만 알칼리성이다’라는 것이다. 식초는 우리 몸에 흡수된 이후에는 알칼리성으로 작용해 몸의 산성화를 막는다는 것이다.
식초는 식재료를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의 주인공 격이었다. 애플사이다비니거가 홍보된 효과를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식초 열풍은 누그러졌다. 그러면서 ‘알칼리성 식초’ 얘기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몸에 좋은 식단을 거론할 때 알칼리성 식재료는 요즘도 빠지지 않는다. 최근 기사를 찾아보면, “매실은 매화나무의 열매로 과육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진 알칼리성 식품이다” “달래가 알칼리성 식품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이는 식감이 좋고 비타민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으로” 등이 나온다.
산성 식품, 알칼리성 식품이라는 오해의 기원
이 이분법을 체계화하고 널리 알린 인물이 스웨덴 출신으로 독일에서 활동한 라그나르 베르크(1873~1956)다. 베르크는 생화학자이자 영양학자로서 통풍과 비만, 관절염, 당뇨병 등 각종 ‘문명병’을 체내 산성과 알칼리성의 불균형과 연관지었다. 특히 체내에 산성 물질이 남아 있으면 정상적인 생리 기능이 방해받는다고 봤다.
여기에 그는 인체는 자체적으로 알칼리성 물질보다 산성 물질을 더 많이 생성한다는 상상을 더했다. 이에 따라 그는 건강을 위해 음식으로 알칼리성 물질을 보충해야 한다며 과일과 채소, 우유, 커피, 차, 코코아 등을 권했다. 육류와 달걀, 견과류, 곡물은 덜 섭취해야 할 산성 식품으로 분류했다. 그가 권장한 식단 구성은 알칼리성 80%, 산성 20%였다.
산성과 알칼리성을 나누는 기준은 그 물질을 태웠을 때 남은 성분이다. 여기에 산성이 되는 인, 황, 염소 등의 음이온이 많으면 산성 식품으로, 알칼리성이 되는 나트륨, 칼슘, 칼륨 등의 양이온이 많으면 알칼리성 식품으로 분류된다.
태울 수 없는 식초는 체내 대사 후 남는 이산화탄소와 물로 판단한다. 이산화탄소는 물에 녹으면 탄산이 되고, 이는 산성을 띤다. 따라서 식초는 맛도 대사 후 성질도 산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식초는 식품 이분법에서는 알칼리성으로 분류됐는데, 이산화탄소는 체외로 배출되기 쉬운 기체이어서 부담이 작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식품 이분법의 기원은 프랑스 생리학자 클로드 베르나르(1813~78)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나르는 토끼에게 초식 사료와 육식 사료를 줬을 때 소변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측정했다. 초식 사료를 먹인 토끼의 소변은 알칼리성이었고, 육식 사료를 먹인 토끼의 소변은 산성이었다.
이 결과가 베르크에 이르면서 체계적으로 곡해돼, 산성 식품은 나쁘고 알칼리성 식품이 좋다는 이분법으로 굳어졌다.
체내 pH는 잘 조절되고, 음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베르나르의 실험은 동물이 체내에서 산성과 알칼리성의 균형을 잘 조절한다는 쪽으로 정확하게 해석돼야 한다. 동물은 대사 후 산성이 되는 식품을 많이 섭취하면 그 물질을 적극 배출해서 혈액의 수소이온농도(pH)를 조절하는 것이다. (pH가 7 미만이면 산성, 7 이상이면 알칼리성으로 판단한다.) 알칼리성 식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조절된다.
인체 혈액의 pH는 7.3~7.4로 조절된다. 그 역할은 신장과 폐에서 담당한다. 폐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통해 혈액 pH의 균형을 맞춘다. 혈중 pH가 높아지면 이산화탄소를 덜 배출하려고 호흡이 느려지기도 한다.
베르크는 인체의 산성화를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산증은 물론이고 알칼리증도 위험하다. 알칼리증은 pH가 7.45를 초과한 상태로, 대부분 무증상이지만 심하면 이상 감각, 저림, 신경과민, 인지력 장애 등이 나타난다. 알칼리증과 동반되는 전해질 이상으로 인해 부정맥, 근육 허약, 근육 강직, 경련, 의식 저하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호흡이 느려지기도 한다.
산증은 호흡 촉진, 호흡 곤란, 의식 소실, 전신 경련 등으로 나타난다. 신경계에서는 무력감, 두통, 손발 떨림을, 순환계에서는 심장 수축력의 저하, 부정맥, 저혈압 등을 일으킨다.
알칼리증은 구토, 이뇨제 사용 등으로 발생한다. 구토로 위액에 포함된 염산이 배출되면 체내 수소이온 농도가 감소하는데, 신장에서는 이를 보상하기 위해 탄산수소이온을 활발하게 재흡수하고 그 결과 알칼리증이 발생한다.
산증은 당뇨병이나 신장 손상 등으로 인해 발생한다. 당뇨병인 경우 체내 지방산을 대사해 에너지원을 얻기 위해 간은 케톤체들을 과도하게 생성한다. 그중 아세토아세트산, 베타 하이드록시부티르산 등 케톤체는 산성이 강해서 산증을 일으킬 수 있다.
산증에도 알칼리증에도 섭취하는 식품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산성이라는 식품을 먹는다고 해서 우리 몸이 산성이 되는 것도 아니고, 알칼리성이라는 식품도 그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두 종류로 나누기에는 식품의 영양 성분은 너무나 다양하다.
식품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 무의미한 이분법에 신경 쓰기보다, 적게 먹기 위해 자제하면서 골고루 섭취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