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와 가족이 먼저 서울을 떠올린다. 수술을 해야 하나. 항암을 먼저 해야 하나. 아니면 바늘로 하는 시술로도 가능한가.
이 갈림길에서 의외로 중요한 치료가 있다. 고주파 열치료(Radiofrequency Ablation, RFA)다. 종양에 전극 바늘을 넣고 열을 가해 암 조직을 괴사시키는 방식이다. 절개가 필요 없고, 회복이 비교적 빠르다.
특히 초기 간암 일부 환자, 고령 환자, 간 기능이 좋지 않아 큰 수술이 부담스러운 환자에게 중요한 선택지가 된다. 대한간암학회와 대한간학회 자료도 고주파 열치료를 초기 간세포암에서 널리 쓰이는 대표적 국소치료로 설명한다.
삼성창원병원 영상의학과 임현철 교수가 최근 이 간암 고주파 열치료 100례를 달성했다. 지난해 3월 삼성서울병원에서 창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약 1년 만이다.

숫자만 보면 단순한 실적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그보다 훨씬 크다. 지역에서도 간암 국소치료가 이제 ‘가능한 수준’을 넘어, 실제로 축적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뜻이기 때문. 삼성창원병원 합류 뒤 고난도 간암 치료 기반을 구축해 왔다는 의미도 된다.
고주파 열치료는 간암 치료에서 결코 주변부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2023년 간암 적정성 평가 보고서를 보면, 평가대상 기관의 전체 시술 4610건 가운데 경동맥화학색전술이 3,332건(72.3%)으로 가장 많았고, 고주파 열치료술은 683건(14.8%)으로 뒤를 이었다. 첫 치료 기준 통계라는 한계는 있지만, 적어도 국내 간암 진료 현장에서 고주파 열치료가 매우 현실적인 치료 축이라는 점은 분명히 보여준다.
왜 그럴까. 간암은 한 번 치료로 끝나는 병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저에 간경변이나 만성간염이 깔려 있는 환자가 많고, 재발도 드물지 않다.
그래서 간암 치료는 “암을 얼마나 크게 도려내느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병변 크기와 개수, 위치, 혈관과의 거리, 남아 있는 간 기능, 환자의 전신상태를 함께 봐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고주파 열치료는 수술의 하위 버전이 아니라, 간암 치료 전체 전략을 구성하는 핵심 무기 가운데 하나다.
임현철 교수가 특별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국내에 간암 고주파 열치료를 도입한 선구자 그룹의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삼성서울병원 재직 시절 팀 통산 1만5000례 이상의 시술을 이끌었고, 이 가운데 약 5000례를 직접 집도했다.
대한초음파의학회, 대한간암학회 회장도 지냈다. 단순히 시술을 많이 한 의사가 아니라, 한국 간암 국소치료의 경험과 기준을 오래 축적해온 인물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번 100례의 진짜 의미는 따로 있다. 간암 환자와 보호자의 머릿속에 있는 가장 큰 질문, “결국 서울 가야 하는 것 아닌가”에 균열을 냈다는 점이다.
고주파 열치료는 장비만 들여놓는다고 되는 시술이 아니다. 병변을 정확히 찾아내는 영상 판독, 바늘을 안전하게 넣는 손기술, 주변 장기 손상을 피하는 경험, 시술 뒤 완전 괴사 여부를 판정하는 추적 시스템이 함께 필요하다.
100례는 지역 병원 안에서 그런 경험곡선이 눈에 띄게 쌓였다는 신호다. 환자 입장에선 “창원에서도 이 치료를 예측 가능하게 받을 수 있나”라는 질문에, 이제 조금 더 분명한 답이 생긴 셈이다.
물론 모든 간암 환자가 고주파 열치료 대상은 아니다. 병변이 너무 크거나, 개수가 많거나, 위치가 까다롭거나, 간 밖 전이가 있으면 다른 치료가 더 앞설 수 있다. 반대로 비교적 초기 병기이고 병변 수와 위치가 맞으며, 간 기능과 전신상태를 고려할 때 수술보다 시술의 이점이 큰 환자라면 매우 유력한 선택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