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07일 (화)

부산 침례병원 ‘공공화’, 정치가 만든 신기루

박형준, “보험자병원 결단” 촉구 기자회견…'시민 생명권' 뒤에 숨은 정치적 셈법

부산 침례병원 ‘공공화’, 정치가 만든 신기루
문 닫은 지 9년째 방치되고 있는 부산 침례병원. 사진=부산시

지방선거(2026년 6월 3일)를 40여 일 앞둔 21일 오후, 박형준 부산시장과 백종헌 국회의원(금정구)을 비롯한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국회 소통관 단상에 섰다. 2017년 파산 이후 9년째 방치된 옛날 침례병원을 공공병원으로 전환해 달라는, 사실상 ‘최후통첩’을 연상케 하는 기자회견. 구체적으론 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건보공단 일산병원’같은 보험자병원 모델로 만들어 달라는 요구다.

박 시장은 “정은경 복지부장관은 부산시의 수차례 면담 요청마저 거절하며 부산 침례병원 공공병원화에 손을 놓고 있다”며 정부를 겨냥했다. “부산시는 총사업비 4004억 원 가운데 시비 3630억 원(90% 이상)을 부담하고 개원 후 10년간 운영 적자의 50%를 보전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언사에도 메아리는 없다. 다른 무거운 질문들이 함께 도사리고 있어서다.

부산이 의료취약지에다 ‘필수의료 공백이 고착화된 지역’이라고?

심지어 이들은 부산을 “중증 응급 환자가 찾아갈 병원이 부족하고, 1분 1초가 시급한 상황에서 골든 타임을 지키지 못하며, 가까운 병원이 아니라 ‘갈 수 있는 병원’을 찾아 수십km를 뺑뺑이 돌아야 하는 상황”이라 했다. 거기다 동부산권은 “필수의료 공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된 지역”이라고도 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21일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결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시장 왼쪽이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백종헌 의원. 사진=부산시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오히려 동부산권은 의료 과밀지역으로 병상 증설도 안 되는 곳. 해운대백병원, 해운대부민병원, 좋은강안병원, 센텀종합병원, BHS한서병원 등 침례병원 이상 규모의 대형병원들만 5곳이 넘는다.

게다가 부산 전체로 넓혀봐도 의료 인프라는 결코 부족한 수준이 아니다. 현재 부산에는 상급종합병원 4곳(부산대병원·동아대병원·부산백병원·고신대복음병원)을 포함해 포괄2차종합병원 등 대형 종합병원만 19곳이 포진해 있다. 총 23개의 거점 병원 체제가 가동 중인 셈이다.

여기에다 부산에는 공공의료 기능을 수행하는 대형병원인 부산의료원이 있고, 역할은 조금 다르지만 부산보훈병원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도 건재하다. 서부산의료원(부산 사하구) 역시 올해 착공, 2028년 개원을 목표로 사업이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부산시가 금정구 끝자락에 위치한, 이미 시장에서 지속 불가능성이 드러난 특정 병원 되살리기에 집착하는 배경을 두고 의료계 내부에서는 고개를 갸웃한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전국의 공공의료기관들이 만성 적자와 의료진 확보난으로 고사 직전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수천억 원의 혈세를 또 하나의 공공병원 건립에 쏟아붓는 것이 과연 최선이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울경 지역 의료정책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지금 필요한 것은 새 병원 하나가 아니라, 기존 23개 거점 병원과 부울경 국립대병원(부산대병원·양산부산대병원)을 유기적으로 묶어 공공의료의 효율을 극대화하는 소프트웨어적 접근”이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부산의료원이 허브(Hub) 역할을 하며 여타 공공병원들과 지역 병의원을 네트워크로 묶는 시스템 접근도 심도 있게 검토해볼 과제다. 아예 민간에 매각 또는 위탁 운영하는 게 맞다는 얘기도 나온다. 부산시가 역점을 쏟아야 할 과제가 따로 있다는 지적인 셈이다.

여당 시절엔 ‘방관’, 이제 와선 ‘남 탓’…국회 상임위 맡고도 성과는?

이번 기자회견의 또 다른 쟁점은 책임의 소재다. 박 시장과 백 의원은 윤석열 정부 시절 여권의 핵심 인사로 시정과 의정을 이끌어왔다. 침례병원 공공화가 그토록 절박한 과제였다면, 행정적·정치적 힘이 실렸던 지난 수년 동안에는 왜 실질적인 매듭을 짓지 못했는가에 대한 자성이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굳이 부산시 재정 499억 원을 투입해 침례병원 부지와 시설물 소유권을 사들이고, 2022년 민선 8기 시장 선거에서 침례병원을 살리겠다고 ‘공약’해 당선됐던 장본인은 박 시장 자신이다. 공약의 책임은 기본적으로 당선된 자에게 귀속되는 법이다.

게다가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 백종헌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이다. 지난 21대 국회부터 따지면 연속으로 여기 상임위 소속이었다. 같은 당 김미애 의원(해운대을)은 보건복지위 간사도 맡고 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있었다는 얘기다.

‘보험자 병원’이라는 허상, 그리고 ‘팔 비틀기’ 정치

부산시가 고집하는 ‘건보공단 보험자 병원’ 모델 역시 현실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자 병원은 건강보험 수가 체계와 원가조사를 위한 테스트베드(test bed) 성격의 병원이다. 이미 경기 고양시에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그 일산병원조차 적자가 고착화돼 있다는 점이다. 건보공단 입장에서 ‘또 하나의 보험자병원’을 떠안는 일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부와 건정심(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을 압박해 공단을 움직이려는 시도는 전형적인 ‘팔 비틀기’ 정치에 가깝다. 이를 ‘무시’나 ‘태만’으로 규정하며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국면 전환에 어떤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박 시장은 이날 “330만 부산 시민의 생명권을 담보로 한 ‘희망 고문’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서 ‘희망 고문’만 해온 주체가 실제로는 누구였는지는 굳이 따져보지 않으려는 것 같다.

댓글 0
댓글 쓰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