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26일 (일)

기억력은 멀쩡한데…‘시각 치매’ ‘낙상 치매’ 먼저 온다

치매 100만 명 시대, ‘기억력 좋은 치매’가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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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이제 '치매 100만 명 시대'다. 보건복지부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5년 97만 명이던 65세 이상 치매 환자 수가 올해(2026년) 101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지난 2월 ‘제5차 치매관리종합계획(2026~2030)’에서 “치매가 있어도 일상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향해 조기 발견과 맞춤형 돌봄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은 여전히 ‘치매 = 기억력 저하’로만 생각한다. 기억력은 비교적 멀쩡한데 시력·공간 지각·균형 감각·운동 기능이 먼저 무너지는 ‘기억력 좋은 치매’(비전형 치매)가 전체 치매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국 기반 의학 뉴스 서비스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Xpress)가 29일 보도한 “대부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네 가지 타입의 치매”(The four types of dementia most people don't know exist)는 바로 이 ‘숨겨진 치매 4가지’를 집중 조명했다. 알츠하이머병이 전체 치매의 약 60%를 차지하지만, 나머지 40%는 증상이 완전히 다르고 진단이 늦어지는 희귀형·비전형 치매(rarer types)라고 했다.

알츠하이머로 진단이 명확히 나오면 오히려 다행이다. 하지만 치매엔 비전형적인, 그리고 희귀한 치매 타입들도 많다. 시각치매나 낙상치매도 그런 서브 타입의 하나다. 문제는 이럴 땐 대응하기가 더 쉽지 않다는 것. 공공 치매 예방사업에도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시각 치매’(Posterior cortical atrophy‧PCA)

“계단 깊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글씨를 읽기 힘들며, 시각 환각이 나타난다. 초기에는 기억력은 비교적 보존된다.”

PCA는 시각과 공간 기능을 주로 손상시키는 치매다. 증상은 보통 55~65세 사이에 시작되며, 알츠하이머병의 비전형 형태로 분류되기도 한다(알츠하이머 환자의 5~15% 정도). 뇌의 병리 변화는 알츠하이머와 유사하지만, 증상은 기억력보다 ‘보는 능력’에서 먼저 나타난다.

생활 현장에선 “엄마가 TV 자막을 따라가지 못하고 물건을 자주 떨어뜨린다”, “아버지가 운전 중에 길을 헷갈려한다”는 사례로 등장한다. 기억력 검사는 정상 범위인데 일상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가족들이 더 당황한다. 제5차 계획에서 강조하는 치매안심센터용 심층 진단 도구(CIST-ID) 개발이 바로 이런 비전형 증상을 조기에 포착할 핵심 수단이다.

‘급속 진행 치매’(Creutzfeldt-Jakob disease‧CJD)

“근육 경련(갑작스러운 떨림이나 경련)과 함께 기억력·운동 기능이 매우 빠르게 악화된다. 전 세계적으로 100만 명당 1명 정도로 극히 드물다.”

프리온 단백질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prion disease)의 일종이다. 알츠하이머병보다 진행 속도가 훨씬 빠르며, 노년층과 유전 요인이 주요 위험인자다. “기억력 저하와 함께 갑작스러운 경련”이 중요한 초기 신호로 꼽힌다.

한국에서는 아직 사례 보고가 많지 않지만, 희귀질환으로 분류돼 조기 진단이 생존과 직결된다. 정부가 추진 중인 AI·빅데이터 기반 조기 진단 연구가 이런 급속 진행형 치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근육 장애·삼킴 장애 동반 치매’(FTD-MND)

“근육 위축, 경직, 삼키기 어려움(연하장애) 등 운동신경질환 증상이 함께 나타난다. 전두측두엽치매(FTD)의 10~15%에서 발생하며, C9orf72 유전자 돌연변이와 연관돼 가족력이 있을 수 있다.”

쉽게 말해 치매와 운동신경질환이 동시에 찾아오는 경우다. 기억력보다 성격 변화나 언어 장애가 먼저 나타나는 FTD에 근육·삼킴 문제가 더해지면서 돌봄 난이도가 크게 높아진다.

한국에서는 전두측두엽치매 자체가 서양과 다른 임상 양상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나왔다. 특히 얼굴을 잘 알아보지 못하거나 충동적 행동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1인 가구 치매 환자가 52.6%를 넘는 상황에서 “먹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는 증상을 치매와 바로 연결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다.

‘낙상 치매’(Progressive supranuclear palsy‧PSP)

“눈 움직임 장애로 시선이 잘 따라가지 않고, 자주 넘어지며,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진다. 파킨슨병과 증상이 겹쳐 오진되기 쉽다.”

PSP는 시선 고정 장애와 잦은 낙상이 주요 특징이다. 희귀하지만 일단 발병하면 이동과 일상생활에 고통이 심해진다.

한국 고령층에서는 낙상 사고가 치매 진단의 첫 신호가 되는 경우가 많다. 제5차 계획에서 추진하는 ‘운전능력진단시스템’과 ‘치매 친화적 환경 가이드라인’(2027년 개발 예정)이 바로 이런 운동·시각 관련 비전형 치매를 대비한 조치다.

왜 가족을 더 힘들게 하는가

희귀형·비전형 치매는 진단이 늦고 돌봄이 더 복잡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기억력 검사는 통과하는데 부모님이 “갑자기 계단을 무서워한다”, “자주 넘어진다”, “성격이 급변했다”고 호소하면 가족은 “치매가 아닌가?” 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돌봄 부담은 2~3배 커지고, 환자는 적절한 지원을 제때 받지 못한다. 정부가 제5차 계획에서 치매관리주치의 전국 확대(2028년), 보호자 전용 노인일자리 신설, 치매안심재산관리 신탁(2026년 4월 시범 운영) 등을 통해 맞춤형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다지만, 정작 이런 비전형, 희귀 치매 타입은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치매 100만 명 시대. 가족의 돌봄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이런 증상이 생긴다면 가까운 치매안심센터를 방문하거나 CIST-ID 검사를 받는 것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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