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대병원이 필리핀 수빅에서 대규모 의료봉사 활동을 벌였다. 현지 주민 750여 명을 진료하고 치료했다. 수빅은 HD현대 사업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울산의 대표 의료기관과 산업계가 해외 현장에서 함께 움직였다는 점에서, 이번 봉사는 단순한 선행을 넘어 기업-병원 협력형 사회공헌의 새 모델로 읽힌다.
24일 울산대병원에 따르면 의료봉사단은 지난 17~18일 이틀간 수빅 지역에서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치과 등 5개 진료과를 운영했다. 현장에는 울산대병원 의료진 26명, HD현대중공업필리핀 임직원 20여 명, 수빅 지자체와 현지 협력병원 자원봉사자 50여 명이 참여했다.
수빅은 산업단지와 관광지가 공존하는 지역이지만, 일부 주민들은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곳으로 전해진다. 이에 진료 시작 전부터 수백 명의 주민이 길게 줄을 섰고, 치통을 오래 참아온 주민, 복통과 만성질환을 방치한 환자, 고열 증상을 보인 아이까지 다양한 환자들이 의료진을 찾았다.
병원 측은 또 "지문인식 기반 환자 분류 시스템, 현장형 처방전달시스템(OCS), 이동형 의료장비를 활용해 ‘스마트 의료봉사’ 방식으로 진행했다"고도 했다. 보통의 해외 의료봉사와는 다른, 정밀의료를 접목한 색다른 접근이다. 이번 봉사가 일회성 방문에 그치지 않고 현지 의료 접근성의 빈틈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더 눈에 띄는 대목은 봉사의 장소와 방식이다. 수빅은 HD현대중공업필리핀 사업장이 있는 곳이다. 의료진만 따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기업 임직원과 지자체, 현지 협력병원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단순 의료 지원보다 한 단계 진화한 형태에 가깝다. 병원이 가진 진료 역량과 기업이 가진 현지 기반, 행정 네트워크가 결합한 셈이다.
그런 대목에서 이번 봉사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엄격하게 말해 울산대병원과 HD현대중공업이 같은 계열은 아니다. 울산대병원은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 소속. '아산' 정주영 회장이 1969년 설립했다.
이에 비해 HD현대중공업필리핀은 HD현대 그룹 산하 HD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이 필리핀에 운영하는 현지법인. 즉, 법인 소속은 다르지만 현대·아산 계보와 울산이라는 지역 기반을 공유하는 의료와 산업, 두 축이 해외 현장에서 만난 사례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 수빅 의료봉사의 의미는 ‘좋은 일 한 번 했다’에 머물지 않는다. 해외 사업장을 가진 기업 입장에선 현지 주민과의 접점을 넓히고, 지역사회와의 신뢰를 쌓을 수 있다. 병원 입장에선 대학병원급 진료 시스템과 인력을 바탕으로 공공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다.
여기에 현지 지자체와 협력병원이 결합하면 단순 이벤트가 아니라 네트워크형 사회공헌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빅 의료는 한편으론 의료봉사이지만, 또 다른 편으론 기업의 현지 협력 기반을 넓히는 '양수겸장'형 CSR 성격을 띤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이미 폭넓게 이뤄진 현실을 감안하면, 이 모델은 다른 기업에도 시사점이 있다. 현지 사업장이 있는 기업이 의료기관과 손잡으면 사회공헌의 명분만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지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제공하고, 지자체 및 협력기관과 관계를 넓히며, 기업의 해외 거점 운영에도 우호적인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병원 역시 단순 후원 행사보다 훨씬 선명한 공공적 역할을 확보할 수 있다.
울산대병원 측은 24일 “앞으로도 지속적인 협력과 연대를 통해 의료봉사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수빅에서 시작된 이번 실험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사업장 곳곳에서 참고할 만한 협력 공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