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서는 자녀가 운동에 재능을 보이면 일찌감치 한 종목에 집중시키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이르면 6~7세 무렵부터 전문 클럽에 등록해 특정 종목을 집중 훈련시키는 이른바 ‘엘리트 체육’은, 프로 선수로 성공하기 위한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김연아, 최가온 등 우리에게 친숙한 스타 선수들도 7세 안팎부터 해당 종목에 전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선수가 되려면 어릴 때부터 한 종목을 파야 한다’는 인식은 스포츠계에서 일종의 불문율처럼 자리 잡아 왔다.
그런데 이 같은 생각에 경각심을 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어린 시절부터 한 스포츠 종목만을 전문적으로 훈련할 경우, 성인이 된 이후 오히려 부상 위험이 높아지고 선수 생명이 단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미국 정형외과학회(AAOS) 연례 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한 두 편의 연구가 동시에 발표돼 주목을 받았다.
조기 전문화, 고관절·사타구니 부상 위험 높인다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팀이 진행한 첫 번째 연구는 미국 5개 대학에 재학 중인 18~22세 운동선수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에게 8~14세 사이의 스포츠 참여 경험과 이후 부상 이력을 설문 방식으로 조사했다.
분석 결과, 어린 시절 특정 종목에 집중한 운동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선수들에 비해 고관절이나 사타구니 통증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기 전문화 그룹의 통증 발생률은 63%로,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한 그룹(53%)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완전히 그만두게 된 비율도 68% 대 55%로 조기 전문화 그룹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고관절·사타구니 통증을 겪은 선수 중 조기 전문화 그룹에서 수술적 치료를 받은 비율은 21%로, 다종목 경험 그룹(12%)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마이클 윌리 아이오와대 의료센터 정형외과 전문의는 “중요한 성장기에 발달 중인 고관절은 반복적인 하중에 매우 민감하다”며 “특히 굴곡이나 불안정성이 발생하는 스포츠 활동에서 더욱 그렇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관절 소켓이 비정상적인 충돌에 맞춰 변형될 수 있으며, 초기에는 증상이 없더라도 나중에 충돌 증후군, 관절순 파열, 연골 손상, 심지어 조기 관절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여성 선수, 조기 전문화에 더 취약
특히 여성 선수들은 조기 전문화의 부정적인 영향에 더욱 취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관절 또는 사타구니 통증 발생률이 여성(59%)에서 남성(53%)보다 높았으며, 비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여성이 58%로 남성(45%)보다 많았다.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비율 역시 여성 6%, 남성 2%로 여성에서 세 배나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성장기 여성의 신체 구조와 호르몬 특성 때문에 여성이 반복적인 관절 부하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식축구 선수도 다종목 경험자가 중상 위험 낮아
럿거스 뉴저지 의대 연구팀이 진행한 두 번째 연구는 2011년부터 2023년 사이에 NFL(미국 프로 미식축구 리그) 드래프트에 지명된 선수 2500명 이상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고등학교 시절 여러 종목의 스포츠에 참여한 선수들은 단일 종목에만 집중한 선수들에 비해 전반적인 부상 위험이 20% 낮았고, 중상 위험은 24%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어릴 때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한 것만으로도 부상 위험이 5분의 1 이상 낮아진 것이다.
연구 주저자인 그나네스와르 춘디 럿거스 뉴저지 의대 연구생은 “젊은 운동선수들이 다양한 스포츠에 참여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부상 위험을 줄이고 장기적인 근골격계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특정 종목 선수들에게 연중 훈련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선수 본인은 물론 부모, 코치, 운동 트레이너 모두 이러한 위험성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