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수술실 광학 현미경은 메스를 잡은 집도의만 볼 수 있었다. 화질은 좋지만 팀 전체가 같은 장면을 똑같이 보기 어렵고, 집도의가 오랜 시간 고정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반면, 디지털 수술현미경(엑소스코프, Exoscope)은 카메라가 수술 부위 위에서 입체 영상을 만들고, 이를 대형 모니터로 띄운다. 집도의, 보조의, 간호사, 전공의가 동시에 같은 화면을 보니 ‘지금 무엇을 하는지’를 모두가 알 수 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줄게 된다.
팔을 위한 눈 vs. 수술실을 위한 눈
수술실 풍경을 바꿔 놓고 있는, 현재의 수술로봇에도 정밀 카메라는 달려 있다. 다만 그 눈은 ‘팔(행위)’을 돕기 위한 눈이다. 로봇 콘솔 앞 집도의가 자신의 동작을 세밀히 안내받을 수 있도록 집도의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반면 디지털 수술현미경(엑소스코프)은 카메라가 환부 위에서 독립된 시야를 만들고, 대형 모니터로 팀 전원이 같은 고화질 4K, 그리고 3D 입체 화면을 볼 수 있게 한다. 이 화면은 형식이 일정해(표준화) 기록·전송이 쉽다. 그래서 의료진 교육, 수술 품질관리와 환자 안전(QPS, Quality improvement +Patient Safety), 원격 협진도 가능해진다.
로봇의 카메라가 로봇팔과 집도의 한 사람만을 위한 눈이라면, 엑소스코프는 수술실 전체를 위한 눈인 셈이다. 그래서 전자는 동작을, 후자는 판단과 협업을 돕는다.
학회 발표로 드러난 임상 현장의 변화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김정수 주임과장은 10월 16~18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신경외과학회 추계 국제학술대회 뇌혈관 워크숍에서 ‘엑소스코프 보조 뇌혈관 수술’(Exoscope-Assisted Cerebrovascular Surgery)을 주제로, 디지털 수술현미경의 임상 경험을 발표했다.

이는 소형 디지털 현미경을 로봇팔에 장착해 4K·3D 시야를 구현한다. 집도의는 모니터를 보며 편한 자세로 수술하고, 로봇팔이 카메라 각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한다. 좁고 깊은 부위도 상대적으로 멀리서 넓게 보며 접근해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김 과장은 여기서 뇌동맥류 클립 결찰 14례를 소개하며 “기존 광학식의 화질에 공유 화면·자세 개선·진료 흐름 개선이 더해진다”고 요약했다. 병원은 심뇌혈관센터 개소와 함께 혈관촬영기(인터벤션), AI 기반 MRI 등 ‘보는 기술’ 투자를 많이 늘렸다.
지역 의료 격차도 줄일 수 있으려나?…”눈을 공유하면 거리도 줄어든다”
자율주행차가 카메라로 도로를 읽듯, 수술실에 앞으로 등장할 AI 보조로봇도 화면이 먼저 정확해져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 디지털 현미경은 매 수술마다 선명하고 일정한 형태의 영상을 남긴다. 이 데이터는 곧 출혈 의심 알림, 위험 구조물 경고, 자동 초점·추적 같은 안전 보조 기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수술현미경의 화면은 그대로 전송할 수 있다. 숙련된 전문의가 수백 km 밖에서 집도의와 똑같은 3D 장면을 보며 “조금 더 왼쪽, 깊이는 여기까지만” 같은 실시간 코칭을 건넨다. 말 그대로 수술실 한가운데에 ‘두 번째 눈’을 들이는 셈이다.
감으로만 돕는 원격 자문과는 결이 다르다. 모든 팀원이 같은 시야를 보는 만큼, “무엇을, 왜, 어떻게”가 동시에 이해되고, 코칭이 구체적인 동작으로 이어진다.
비유하자면, 디지털 현미경은 지역 병원을 ‘중계차’가 딸린 수술 스튜디오로 바꿔준다. 수도권 거점 병원은 메인 감독석에서 같은 화면을 보며 즉시 지시를 내린다. 축구 VAR(비디오 판독)처럼, 위험한 장면이 포착되면 바로 멈추고 되짚어 안전하게 재진입할 수 있다.
이 과정이 기록으로 남으니, 다음 수술 전 리뷰 미팅과 교육에 바로 쓰인다. 기록이 쌓이면 팀의 표준 동선이 다듬어지고, 환자에게 돌아가는 품질은 한 단계씩 올라간다.
결국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무조건 서울 빅5로’라는 오래된 인식에도 균열이 생긴다. 노련한 숙련 의사의 눈과 멀리 떨어진 지역 현장의 손이 화면으로 이어지면, 지역 병원도 난도 높은 케이스를 더 안전하게 다룰 발판을 얻는다.
환자는 이동 부담을 줄이고, 가족은 돌봄 공백을 줄이며, 병원은 실적과 신뢰를 동시에 키운다. 눈을 공유하는 것, 그것이 지역 격차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이다.
미래의 수술실을 여는, 비밀스러운 열쇠
미래의 수술실은 지금과 무척 다르다. AI로 무장한 수술로봇과 수술보조로봇들이 수술을 주도할 수도 있다. 큰 수술도 집도의 혼자서 다 해내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이제 막 수술실에 도입되기 시작한 4K/3D 디지털 수술현미경이 그 길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안내하고 있다. 수술 인력 구조가 달라지고 자동화가 늘어도, 핵심은 여전히 잘 보는 것이기 때문. 팔(사람·로봇)이 아무리 정교해도 눈이 선명하고 팀이 같은 화면을 보지 못하면 위험은 남는다.
디지털 수술현미경은 당장의 ‘기적’을 약속하진 않지만, 실수를 줄이고 배우기 쉽게 만들며 데이터를 남겨 다음 수술을 더 잘하게 하는 조용한 혁신이다. 눈이 먼저 바뀌면, 팔과 AI도 그 뒤를 따라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