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의료법인들이 회계감사비 부담에 울상을 짓고 있다. 국세청이 공익법인의 회계감사 투명성과 감사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감사인 지정제도를 도입하면서 예상 밖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4일 부산의 한 의료재단 관계자는 “연매출 2000억 원 규모에 불과한 병원의 외부감사 수수료가 지난해까지는 900만 원 수준이었는데, 올해 국세청이 지정한 서울의 대형 회계법인은 4000만∼5000만 원을 요구한다”며 “거부하면 국세청이 한 차례 더 지정할 수 있게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거부권도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계약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감사 투명성이냐 VS 비용 폭탄이냐
2022년 시작된 국세청의 공익법인 외부감사인 지정제도는 총자산 1000억 원 이상인 공익법인을 대상으로 한다. 초기 4년간은 공익법인이 자유롭게 감사인을 선임한 후, 다음 2년간은 국세청이 감사인을 지정하도록 의무화한 것. 종교단체, 학교, 유치원 등은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의료법인은 지정 대상에 포함된다.
문제는 감사인을 지정하는 과정이 철저히 중앙 집중식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지방 의료법인 대부분은 지역 회계법인과 이전부터 장기적으로 협력해온 반면, 지정 감사인은 대부분 서울 소재 대형 회계법인이 차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서울의 지정 감사인들의 고액 감사비 수준에 맞춰야 하는 것. 게다가 교통비, 출장비, 인건비 등이 추가돼 감사비가 3∼5배 이상 급등하는 실정이다.
부산의 또 다른 의료법인 관계자는 “감사인의 전문성도 중요하지만, 실질적 감사 내용은 현장 이해도가 좌우된다”며 “지역 병원의 재정 구조나 공익사업 특성을 잘 모르는 서울 감사인이 서류 위주로만 검토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연간 매출이 1조 원, 2조 원이 넘는 서울 메이저 병원들의 외부 감사 수수료도 2000만 원대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부 회계법인들의 터무니없는 고액 수수료 요구를 비판했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지정된 감사인을 선임하지 않거나 임의로 교체하면 ‘출연재산 및 수입금 합계액의 1만 분의 7’에 해당하는 가산세가 부과된다. 감사비 부담이 과중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조다.
“투명성 강화 취지는 인정”…하지만 회계법인 횡포 막을 길도 함께 찾아야
회계전문가들은 제도 취지와 효과를 살리려면, 감사인 지정 과정의 지역 안배와 비용 합리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공익법인의 투명성도 중요하지만, 감사인 시장이 특정 대형 회계법인으로 집중되는 것은 또 다른 불균형을 낳는다”며 “감사인 풀(pool)을 지역 단위로 확대하고, 수수료 상한선을 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것.
서울과 수도권 회계법인들의 높은 수수료 수준도 문제다. 지역 의료법인들의 경우, 연고가 덜한 다른 지역 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지정하는, 일종의 상피제도(相避制度)를 운영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익법인 규모에 따른 차등화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서울 대형 법인 기준의 일괄 요율 적용은 지방 법인들에 사실상 벌금 수준의 부담을 준다”는 것. 공익법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본래 ‘공익성 강화’를 위한 장치였지만, 시행 과정에서 지역 의료법인들에겐 ‘행정편의주의’의 또 하나 전형처럼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