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몸에 기계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 가는 모습이라도 품위를 지키고 싶어요”
‘간병’ ‘연명의료’는 이제 익숙한 말이 됐다. ‘안락사’의 의미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죽음을 유도하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다. ‘안락(安樂)’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즐겁다’는 의미이다. 안락사를 통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죽을 수는 있다. 환자를 오랫동안 괴롭혀온 통증에서 벗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삶을 약물에 의해 마감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히 작별하는 방법이 ‘약물 주입’이라니...그래서 안락사가 허용된 일부 국가에서도 실제 집행까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 60% vs 연명의료 중단 41%…어떤 의미일까?
최근 학술지 《 대한의학회지(JKMS) 》에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 질문에 41.3%가 연명의료 중단, 35.5%는 안락사, 15.4%는 의사조력자살을 선택하겠다는 설문조사 내용이 실렸다. 기계장치 등에 의해 무의미한 삶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지속하겠다는 사람은 7.8%에 불과했다. 안락사와 의사조력자살은 모두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의사가 죽음을 유도하는 약물을 처방하는 것이다. 안락사는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하고, 의사조력자살은 환자 스스로 처방 약물을 복용한다는 차이가 있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것은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를 선택하겠다는 사람이 60%에 근접했다는 사실이다. 연명의료 중단보다 20% 가량 더 많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임종기 환자라면 차라리 빨리 세상을 떠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일까?. 임종기는 살아 있기는 하지만 몸의 기능이 급격히 떨어져 이미 죽음의 과정에 들어선 단계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되고 있다. 연명(延命)은 목숨을 겨우 이어 간다는 뜻이다. 연명의료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을 통해 임종기 환자가 치료효과 없이 임종 과정만 늘리는 것이다. 본인 또는 가족의 동의로 이런 연명의료 중단을 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이 연명의료결정법이다. 다만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행위와 영양분, 물, 산소의 단순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극심한 암의 통증…누구보다 삶을 사랑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안락사 또는 의사조력자살은 엄연히 불법이다. 그래서 스위스로 가서 의사조력자살를 실행한 사람도 나오고 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극심한 암의 통증을 스스로 끝내기로 한 것이다. 지난 2023년 스위스에서 세상을 떠난 고 조순복 님은 딸의 도움으로 스위스로 날아갔다. 고인은 유방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암이 온몸에 전이된 유방암 재발에 절망해야 했다. 무엇보다 고인을 괴롭힌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참혹한 통증이었다. 아픔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딸은 엄마가 고통스런 삶을 끝내기로 한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엄마는 자신이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이지만 희망이 된 것이다. 그 가능성 하나로도 고통에 찌들었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하지만 절대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고, 힘들 때 더 크게 웃었고, 암세포와 더불어 살기로 했던 어머니는 지쳐갔다. 몸과 마음의 기능이 거의 사라진 어머니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을 떠올리기 시작했다...딸 남유하 작가는 엄마의 안락사 과정을 에세이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출판 사계절)에 실었다.
노부모 간병하는 마지막 세대…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까?
간병(看病)은 앓는 사람이나 다친 사람의 곁에서 돌보고 시중을 든다는 의미이다. 이제 가족이 간병하는 시대가 점차 저물고 있다. 지금의 중년 세대들은 노부모를 간병하는 거의 마지막 세대이다. 양가 부모의 간병비로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식에게 간병을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아프면 자식에게 부담 주지 않고 스스로 요양병원에 가겠다고 말하지만 쉽지가 않다.
이제 본인이 아프면 자신이 알아서 챙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자는 도중 편안하게 죽고 싶은 것이 소원이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 평소 건강했던 사람도 얼마간 병상에 있다가 세상을 떠난다. 이 기간을 최대한 단축해야 한다. 10년을 앓다고 죽어 자식에게 큰 빚을 남겼다는 소식은 절망감마저 안겨 준다. 간병 지옥, 연명의료, 안락사... 일상에서 이런 단어들이 익숙해진 것은 어떤 의미일까? 더 나이 들면 나는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