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과 근육은 장수 100세를 위한 건강 적금.”
이 말은 이제 진부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바쁜 일상, 고령화, 만성질환, 체력 저하 등등. 이런 상황에서 운동은 점점 더 ‘사치’가 되어간다.
그렇다면, 운동 없이도 운동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어떨까? 땀 흘리지 않고도 심장과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마법의 약’을 고대하는 듯한 이런 상상이 이제 꿈만은 아니다.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 바로 ‘운동유도약물(exercise mimetics)’이다.
운동 없이도 근감소증 예방한다…‘마법의 약’이 몰고올 미래
운동유도약물은 실제 운동 없이도 운동이 유도하는 생리적 반응을 약물로 모방하려는 시도다. 예컨대 지방 분해, 근육 성장, 인슐린 감수성 개선, 항염증 효과를 약물로 얻자는 것.
그 핵심은 ‘엑서카인(exerkine)’이라 불리는 생리활성물질이다. 운동 시 근육, 간, 지방조직 등에서 분비되는 이 물질들이 전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를 약물로 유도하려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어서다.
이들의 작용 경로는 다양하다. 어떤 것은 미토콘드리아 생합성, 에너지 대사 조절을 돕는다. 또 어떤 것은 지방산 산화, 지구력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 근육 성장을 촉진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경로들을 타깃으로 하는 약물 후보들은 나와 있다. AICAR, GW501516, NAD+ 전구체 등등. 일부는 동물실험에서 운동 효과를 모방하는 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인간에게 적용하기엔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임상시험은 어디까지 왔나?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달 발행한 ‘바이오헬스산업 브리프(Brief, 451)’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유럽의약품청(EMA)에서 승인된 운동유도약물은 없다. 대부분의 후보 물질은 비임상 또는 초기 임상 단계에 머물러 있고, 아직은 안전성·유효성·도핑 규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한때 주목을 받던 후보 물질(GW501516)도 발암 발병 가능성으로 인해 임상 중단된 상태다.
그러나 최근에는 근감소증, 대사증후군, 만성 피로 등 고령층과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한 치료적 접근이 활발해지고 있다. “운동유도약물이 운동이 어려운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로 평가되고 있고, 국가 보건의료 패러다임 전환의 핵심 기술로도 주목받고 있다.
미 FDA도, 유럽 EMA도 “시기 상조”… 아직 넘어야 할 과제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운동유도약물이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단일 생리물질로는 운동의 전신적 효과를 완전히 재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운동 효과가 그만큼 복합적이기 때문.
우리 신체의 대사 조절을 인위적으로 유도할 경우, 심혈관계나 간 기능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것.
특수하게는 '도핑' 문제도 있다. 운동유도약물은 스포츠 윤리와 충돌할 수 있어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 그리고 약물 반응은 개인의 유전, 질병, 생활습관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개인차가 크다는 말이다.
부산 더탄탄병원 김도훈 병원장(정형외과)은 “운동유도약물은 운동을 대체하는 ‘마법의 알약’이 아니다”라며 “운동이 불가능한 사람을 위한 ‘보완적 치료 수단’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윤리적인 접근”이라 했다.

약으로 땀을 대체하려는 과학의 도전
실제로 운동유도약물은 게으른 사람들을 위한 ‘운동 대체재’로 접근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운동이 불가능한 사람을 위한 보완적 치료 수단이 우선 목표다. '보완재'라는 얘기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근감소증과 대사질환은 점점 더 중요한 보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게 사실.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운동유도약물의 잠재력을 크게 보고 있는 셈이다.
현재 ‘근감소증’(sarcopenia)만 해도 미국 FDA, 유럽 EMA 등 주요 보건당국조차 치료제로 승인한 것이 없다. 이에 근감소증에 대한 치료는 운동과 영양보충제 섭취 등 비약물적 치료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
근감소증 4조 원 시장 대체할 잠재력도…운동의 미래는 약과 함께?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근감소증 치료 시장은 세계적으로 30억7810만 달러(2023년)에 이른다. 우리 돈으로 약 4조2142억 원에 해당한다. 이것이 “2024년부터 연평균 4.48%씩 성장해 2029년엔 40억2390달러에 이를 것”(Mordor Intelligence, 2024)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2023년 6698만 달러(약 930억 원) 시장 규모에 연평균 5.0%씩 성장한다. 2029년엔 8932만 달러(약 1240억 원) 정도로 커진다는 얘기다.
여기에 치료제 시장까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면? 이는 엄청난 시장이 새로 열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글로벌 제약사들도 오랫동안 이 시장에 눈독을 들여왔다. 노바티스, 자이더스, 일라이릴리, 로슈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네슬레, 사노피, 바이엘, 화이자, 암웨이 등도 가세했다. 이런 추세라면 향후 10년 내에 일부 약물이 제한적 치료용으로나마 승인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운동 없이 운동한다”는 상상은 이제 과학의 문턱을 넘고 있다. 땀 대신 생리물질, 헬스클럽 대신 약 한 알.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다. 하지만 그 미래는 생각보다 가까이 와 있을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