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이 인기를 끌고 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미국자본인 워너브라더스에서 자본투자를 받아 소설을 영화화하였다. 참고로 소설의 제목은 원래 ‘미키 7’으로 여기서 ‘7’은 7번째 복제인간을 뜻하는 것으로 영화에서는 여기에 10번을 더해 17번째 복제인간임을 뜻한다.
주인공인 미키는 하던 일이 잘 안되어 도피하는 심정으로 복제인간이 되기를 자원하였다. 이에 복제인간이 된 미키는 우주나 외계행성에서의 가장 위험한 임무에 투입된다. 만약 미키가 임무도중에 사망하게 된다면 새로운 몸에 이전의 모든 기억을 이식하여 다시 태어나게 된다. 심지어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기억하게 된다. 다만 이전 미키가 죽어야 다음 미키가 부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미키 17이 죽을 고비를 맞이하지만 죽지 않고 돌아왔다. 문제는 연구원들은 그가 죽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미키 18을 만들었고 결국 두 명의 복제인간 미키가 존재하면서 여러 에피소드가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새로운 몸에 이전의 기억이 모두 이식된 복제인간 미키는 사람이었던 ‘미키’와 같은 사람인가?’, ‘복제인간 미키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지는 인권을 가진 인간인가 아니면 제품인가?’, ‘영화처럼 미키 17과 미키 18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다른 공간에서 다른 것을 느끼고 다른 생각을 한다면 미키 17과 미키 18은 동일인인가 아니면 완전히 독립된 또 하나의 인격인가?’ 등 영화는 복제인간인 미키를 통해 인간의 존재에 대한 철학적이고 대답하기 어려운 물음을 제시한다.
영화와 소설에서는 이러한 철학적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테세우스의 배’이야기를 꺼낸다. 테세우스의 배란 그리스 신화에서 미노타우르스를 죽인 테세우스가 아테네로 귀환할 때 타고 온 배다. 테세우스는 이 배를 타고 전세계를 항해하고 다니는 동안 배의 여기저기를 고쳤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원래 선체를 구성하던 배의 목재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바뀐 상태였다. 그렇다면 테세우스의 배는 떠나기 전과 같은 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배라고 해야 할까? 여기서 생각실험을 더 해보자. 테세우스가 자신이 타던 배를 고치면서 새로운 부품으로 만든 배 A가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테세우스가 타던 오리지널 배에서 떼어냈던 모든 부품을 모아 재조립하여 배 B를 만들었다면 어떤 배가 진정한 테세우스의 배일까?
영화나 테세우스 배 이야기는 인간의 정체성이 육체에 있는지 아니면 기억과 의식에 있는지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는 복제인간 미키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10년전 아니 20년전 나와 현재의 나를 동일인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들은 죽고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약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은 완전히 교체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에서 현재의 나는 7년 전의 나와 동일한 사람일까? 만약 동일인으로 인정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내 생각과 가치관, 경험이나 지식 및 인격과 같은 정신적인 요소가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신체에 모든 기억이 이식된 복제인간 미키는 사람 미키와 동일인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죽더라도 쉽게 재생이 가능한 복제인간 미키를 살인하면 살인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면 상해죄일 뿐일까? 미키 17과 미키 18이 함께 공존한다면 이들은 같은 사람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인가?
봉준호감독은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복제를 통한 인간재생까지 가능한 시대를 상상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인간의 정체성과 같은 철학적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이러한 시기가 머나먼 미래라고 하면 오산이라고 생각한다. 현재가 AI 혁명의 초입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AI 연산에 필요한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는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고 이 기업에 반도체를 납품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회사의 운명이 좌우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빠르게 발달하는 AI는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