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7월 10일 (금)

환자를 진정 사랑했던 의사, 김수태 교수님을 추모하며 

고(故) 김수태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사진=서울대병원]

2025년 3월 4일 우리나라에서 간이식을 개척하신 진정한 외과 의사 김수태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교수님은 의사는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스스로 보여주는 삶을 살았던 스승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수술실에서 늘 환자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불안한 환자를 다독거리고, 꼼꼼하고 세밀하게 수술한 뒤 모든 수술 과정이 끝날 때에야 수술방을 떠났습니다.   

‘대장암’ 분야 대가로 명성을 떨쳤던 박재갑 교수가 주니어 스탭 때, 제가 전공의로 수술장에 들어갔을 때가 떠오릅니다. 환자의 간 아래 간십이장인대에서 시작한 출혈이 안 잡혀 대량 출혈로 이어지자 박 교수는 스승에게 ‘SOS’를 쳤지요. 그때 선생님은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시더니 대수롭지 않게 한 손을 아래에서 받혀서 출혈 부위를 확인하고 두세 바늘 꿰매었습니다. 그리고 마술과도 같이 출혈이 멈추자 유유히 나갔습니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어도 의사가 서두르면 안되는 구나, 그 장면이 너무나 인상이 깊어서 후배 의사들에게도 이런 상황에서의 대처방법으로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선생님은 본인 관리도 엄격했고 소식하면서 점심은 항상 우유 한잔에 찹쌀떡 하나만을 드셨고 술 담배는 일절 안했습니다. 후에 제가 술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시고 제게 당신의 친구 중에 술 많이 먹은 사람들 다 일찍 죽었다고 마시지 말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스승님은 간 이식이 모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항상 당신의 수술에 들어가면 간이식 얘기를 했고, 간이식 때는 여기를 이렇게 수술해야 한다며 간이식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셨고 간이식을 위해서 당신께서 직접 만든 수술기구를 보여주셨습니다.  

스승님은 드디어 1988년 3월 16일 우리나라 최초로 간이식을 시행했습니다. 16일 저녁 시작해 이틑날 아침까지 이어진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뇌사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심장이 뛰고 있는 환자를 죽이면 살인죄까지도 가능한 때였습니다. 병원장을 비롯한 여러 교수들이 수술을 말렸지만 선생님은 잘못되면 내가 쇠고랑 차겠다고까지 하면서 밀고 나가서 성공했습니다. 

저는 1989년부터 선생님의 펠로우(전임의)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부분 간이식을 위해서 개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병원으로부터 지원받은 연구비가 바닥나면 선생님은 동물실험이 이어지도록 사비를 내놓았습니다. 저는 펠로우 막내로 항상 개 간이식후 개 옆에서 밤새 개를 돌본 기억이 납니다. 어느날 수술이 성공해 간을 이식받은 개가 생존한 날 아침에 오셔서 기쁘게 개와 저의 사진을 찍어 주셨지요. 저는 그 사진을 아직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스승님은 이런 열정으로 사람에서 부분간이식을 처음으로 성공해서 생체 간이식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스승님을 보내며, 당신께서 저를 데리고 미국 피츠버그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피츠버그에는 뇌사자 간이식이 많았는데 우리는 밤새 수술을 관찰하곤 했지요. 스승님은 기회만 있으면 뇌사자 간을 구하려 그쪽 의사들과 함께 엠브란스나 비행기를 타고 다녔습니다. 저에게는 간이식 시 필요한 정맥대정맥 우회술을 배우라해서 그쪽 펌프기사들에게 눈치보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에는 소아환자를 위해 부분 간이식을 시작했고, 저는 아직도 그때 수술했던 환자를 보고있습니다. 처음 간이식했던 환자는 윌슨병 환자였는데 간이식 후에도 윌슨병으로 인한 장애가 좀 있긴 했지만 간기능이 정상이었고 선생님께서 애지중지하던 환자였지요. 환자의 집안 형편이 안 좋았는데 선생님 자비로 환자를 보살핀걸로 알고 있습니다.  

김수태 교수님은 외과의사는 물론, 간을 전공하는 내과교수들로 부터도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정년후에도 항상 관련 학회에 참석하시고 항상 앞에 앉으셔서 공부하고 자리를 지킵니다. 최근까지도 인사말이나 축사를 영어로 유창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추모하는 글을 쓰려니 선생님이 더 그립고 선생님의 업적이 더 위대하게 와 닿습니다. 아래는 선생님이 2019년 출간하신 본인의 회고록 맺음말 마지막 부분입니다.  

“8.15 해방 후 그리고 6.25 사변 후 직원 봉급이 낮아서 교수들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대부분 야간 개업을 하게 되었으나 나는 서울에 기반이 없었고 전셋집에서 살고 부족한 생활비는 아버지에게서 갖다 썼으니 아이들 과외공부도 제대로 시키지 못한 것은 지금도 한이 됩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미안합니다. 2019년 이면 만 90세가 되는 마당에 모든 것을 차차 잊어가면서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들께 감사하면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장기이식을 받은 분들의 장수를 기원합니다.”    

진정한 외과의사였던 선생님, 그동안 수고 많으셨고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제 편하게 눈 감으시고 그동안 힘들었던 짐을 내려놓고 편히 잠드시기 바랍니다.  

2025년 3월 9일

제자 서경석 올림

서경석 서울보라매병원 외래진료교수(전 서울대 의대 교수)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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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w*** 2025-03-10 07:24:10

    기자가 고인이 되신 김수태 교수님을 1988~1989년 몇 차례 취재한 적이 있다. 대장암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던 박재갑 교수와 달리 김수태 교수는 사교적이지 않았지만, 심성이 바른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국내 첫 간이식 성공은 당시로선 엄청난 일이었다. 훌륭한 외과의사 한 분이 떠났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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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dw*** 2025-03-10 07:22:07

    작성자가 삭제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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