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장기이식의 분홍빛 미래가 될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전자 변형 돼지에서 채취한 장기가 사람들에게 이식되고 있다. 뇌사 상태의 사람에게 이식된 돼지 콩팥(신장)은 3일간 정상적으로 기능했다. 돼지 심장이 이식된 또 다른 환자는 두 달 동안 살아남았다. 그렇다면 돼지는 과연 장기이식의 미래가 될 것인가? 영국 BBC는 사람의 장기를 완벽하게 대체할 순 없지만 이식할 장기가 없어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 연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의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13일(현지시간) 보도된 BBC의 기사 내용이다.

침묵이 수술실에 내려앉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의료진이 돼지의 신장을 사람 몸에 연결했다. 인체와 돼지 장기 사이에 설치됐던 죔쇠가 풀리고 인간의 피가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도의인 미국 앨라배마주립대 버밍엄캠퍼스(UAB) 제이미 로크 교수는 “핀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긴장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한 가지 질문만 되뇌었다. “분홍색이냐, 검정색이냐”

인체의 면역체계가 이질적이라고 판단하면 이식된 돼지 콩팥의 모든 세포에 구멍이 뚫리고 장기는 안에서 밖으로 응고될 것이다. 몇 분 안에 알록달록해지다가, 푸르죽죽해지고 결국엔 꺼멓게 변할 것이다. 반면 그런 과민성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혈액과 산소가 잘 공급돼 장기가 분홍빛으로 변할 것이다.

“돼지 콩팥은 아름답게도 분홍빛으로 변했습니다. 안도감과 기쁨, 희망이 수술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하이파이브까지 할 뻔했습니다” 지난해 9월 돼지 콩팥 이식수술을 이끈 로크 교수의 회상이다.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상태에 이른 57세 환자 짐 파슨스는 생전에 장기이식 동의서에 서명했다. UAB 의료진은 가족의 동의를 받아 파슨스의 콩팥을 떼어낸 곳에 유전자 변형 돼지의 콩팥을 이식했고 3일간 정상적 소변을 만들어내는 등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그 수술은 장기이식 분야에서 최근 이뤄지고 있는 ‘돼지 혁명’의 일부일 뿐이었다. 미국 뉴욕대(NYU) 랭곤의학대학원 의료진은 지난해 9월 뇌사자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의 콩팥을 환자의 허벅지에 체외 이식한 뒤, 54시간 동안 콩팥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을 확인했다. NYU 의료진은 두 달 뒤인 지난해 11월에도 비슷한 체외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가장 놀라운 시술은 지난 7일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메릴랜드대 의료진의 개가였다. 의료진은 57세의 심각한 심부전 환자 데이비드 베넷 시니어에게 유전자 변형 돼지의 심장 이식수술에 성공했다. 베넷은 심장과 폐를 지탱하는 에크모 기계에 의존해 겨우 생존 중이었으며 이식할 인간 심장이 없는 상태에서 최후의 선택으로 돼지 심장이식에 동의했다.

베넷의 병든 심장이 부어오른 상태라 더 작은 돼지 심장으로 교체하고 혈관을 연결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장기 거부 반응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있었지만, 다시금 ‘분홍빛 기적이 일어났다. 심장 이종이식 책임자인 무하마드 모히우딘 교수는“생전 이런 상황을 목격할 줄은 몰랐다”며 감격했다. 모히우딘 교수는 해당 수술을 “1960년대 생산된 자동차에 새 페라리 엔진을 장착한 것”에 비유하며 “엔진은 잘 작동하지만, 나머지 신체가 잘 적응하느냐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장은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의식이 돌아온 베넷은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두 달 뒤인 3월 8일 숨을 거뒀다.

그 원인과 이종이식에 대한 의미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베넷은 수술 전에 매우 허약한 상태였다. 새 심장이 충분히 제 역할을 못 했을 가능성도 있다. 돼지는 네 다리로 걷지만, 인간은 두 다리로 걷는다. 인간의 심장은 중력과 싸우면서 펌프질까지 해야 하기에 돼지의 심장이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장기 거부 반응은 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심장을 자세히 분석한 결과 인체 면역체계의 공격이 있었다는 징후가 발견된다면 돼지 심장의 인체 이식엔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최근의 이런 이식수술에 장기를 제공한 돼지는 배아 상태에서 10개의 유전자 변형에 가해졌다고 해서 ‘텐진(10-gene) 돼지’로 불린다(모두 미국 제약사 ‘유나이티드 테라퓨틱스’의 자회사인 ‘리바이빅터’가 개발한 유전자 편집 기술로 태어나고 멸균 상태에서 키워진 돼지이다). 텐진 돼지의 가장 중요한 유전자 변형은 인간의 성장호르몬에 반응해 통제 불능 상태로 커지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변형은 ‘알파갤(alpha gal)’이라 불리는 돼지 특유의 당단백질을 제거하는 것이다. 돼지 세포 표면에 있는 알파갤은 인간 면역체계에 “여기 이질적인 세포가 있소”라고 알려주는 네온사인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인간 면역체계가 이를 인지하면 순식간에 거부 반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게까지 할 수 있다. 텐진 돼지는 여기에 또 다른 2개의 ‘네온 징후’가 제거되고 6가지 인간의 징후가 추가돼 인간 면역체계의 거부 반응을 피하도록 한 것이다.

의학계에서 차세대 기술로만 받아들여 왔던 이종 간 이식수술의 전환점이라 할만한 수술이 잇따르고 있다. 완성됐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그만큼 획기적 돌파구가 가까워졌다는 점도 부인할 순 없다. 로크 교수는 “우리의 목표는 텐진 돼지 한 마리가 신장 기능 부전 환자, 간 기능 부전 환자, 심부전 환자, 말기 폐 질환 환자를 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성공만 한다면 획기적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UAB 의료진은 올해 말 돼지 콩팥 이식을 위한 본격적 임상시험에 착수할 계획이다. 메릴랜드대 의료진 역시 돼지 심장 이식 임상시험을 위한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1986년 세계 최초로 심장-폐-간 동시 이식수술에 성공한 영국의 장기이식 전문가 존 월워크 박사는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인간의 장기만큼 완벽한 장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인간 심장을 이식한 100명 중 85%가 생존하는 것보다는 돼지 심장을 이식한 1000명 중 70%가 생존하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말했다.

    한건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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