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 속의 섬광 같은 섹슈얼리티

이재길의 누드여행(21)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찰나에 비친 누드

사진은 그 탄생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인간’을 주체로 한 역사다. ‘인간을 향한’,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사진화법에는 사실 그대로의 모습이 담겨온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08~2004). 프랑스 출신인 그는 20세기 들어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런 삶의 모습을 담아낸 세계적 사진가다. 브레송은 세상을 감성적이고 음유적인 관점에서 담아내면서 시대를 훌쩍 뛰어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내면의 본질이 정확하게 투영되는 결정적인 찰나를 담아낸 그의 사진은 오늘날까지 예술사진의 본이 되어오고 있다. 결정적 순간을 담아내는 그의 사진에서 보듯 “숨어있는 의미를 포착한다”는 것이야말로 그만의 분명한 믿음이요 이론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이라? 그것은 어떤 의미심장한 순간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찰나 속에 아주 우연히 대상의 놀라운 본질이 섬광처럼 드러난다는 말이다.

숨어 있는 본질과 의미를 포착하는 그의 카메라는 여인의 누드에서 가장 빛났다.

브레송의 누드사진이 갖는 구성력은 다름 아닌 ‘우연성’에서 온다. 일상의 한 장면 같은 새삼스럽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는 여인에게서 묘하게도 애틋한 순수함이 배어난다. 결코 도발적이진 않지만 은밀한 시선이 묻어나는 듯한 이런 누드사진은 기존 어느 누드사진들과도 다르다.

브레송의 누드사진이 갖는 독특한 지점은 그가 가진 종교적 철학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가 가진 종교적 철학은 매우 보수적이었는데, 이런 보수적 신념체계와 여인의 적나라한 누드가 충돌하는 의외의 관계 속에서 얻은 영감을 그는 사진을 통해 토로한 것이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그는 어디까지나 종교적인 관점으로 카메라 파인더 안의 누드를 바라보고자 했다.

그는 믿었다. 대상의 본질은 어느 특별한 순간에 담겨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의 누드사진은 무료할 만큼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것이다. 실제로 브레송은 누드사진을 연출해 찍는 법이 없었다. 연출사진은 그의 사진철학인 ‘결정적 순간’에 반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는 순간적으로 포착된 여인의 자연스런 누드를 담아내면서 찰나와 직관에 의해 본질에 다가가려했다. 배꼽, 젖무덤, 무성한 음모가 모두 자연이고 순간이다. [사진1, 2]

브레송의 누드사진은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순간과 직관에 의한 사진은 지금 마치 눈앞에서 움직이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만 같은 마법을 불러일으킨다. 한 장 한 장의 누드사진 속에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그 이야기에는 사랑을 포함한 인간의 소소한 감정들이 깃들어있다. 그래서 우연히 내 앞에 펼쳐지는 여인의 누드를 보는 듯 독특한 방식으로 에로틱한 신비감은 부각된다.

벌써 알아차렸는가. 브레송의 누드사진에는 여인들의 얼굴표정을 찾아볼 수 없다. 가려졌거나 프레임과 앵글처리에 의해 절묘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이것은. 바로 여인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을 가림으로써 여인의 누드가 갖는 환상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그녀의 삶과 내면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누드를 통해 더 투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은유적이고 재미있는 해석을 통해 여체가 갖는 섹슈얼리즘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려 한다. 그의 관심은 여인을 누드를 통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여체, 이것을 통해 그는 누드에 내재된 아름다움의 본체들을 속속 드러냄으로써 종국에는 인간존재의 숭고함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누드는 브레송에겐 호기심의 대상뿐만이 아니었다. 삶과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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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체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 노골적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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