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는 늘 눈앞에 있지만 우리는 좀처럼 코를 의식하며 살지 않는다. 뇌가 쏟아지는 시각 정보 가운데 일부를 골라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식에서 밀려난 정보는 어디로 갈까. 보이지 않게 억제된 얼굴도 뇌에서는 계속 처리되며, 의식적으로 지각하는 얼굴의 정보와 빠르게 번갈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야니스 헤세 박사가 이끈 연구진은 마카크 원숭이를 대상으로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의 활동을 분석했다. 연구 결과는 논문 사전공개 플랫폼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됐으며, 아직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았다.
이번 연구의 결론은 우리가 못 봤다고 느끼는 정보도 뇌는 계속 처리하고 있다는 것으로, 뇌가 받아들인 정보가 모두 의식적인 경험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기존 연구에서는 어떤 대상을 의식적으로 지각할 때 뇌의 어느 영역이 활성화되는지에 주로 주목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신경세포의 활동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폈다.
실험에는 ‘양안 섬광 억제(binocular flash suppression)’라는 현상을 활용했다. 한쪽 눈에 얼굴 이미지를 먼저 보여준 뒤, 그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다른 쪽 눈에 새로운 얼굴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두 얼굴이 눈에 들어와도 뇌는 나중에 나타난 얼굴을 우선해 지각하고, 먼저 제시된 얼굴은 의식에서 억제된다. 연구진은 빨간색과 청록색 렌즈로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애너글리프 안경을 이용했다.
연구진은 마카크 원숭이 두 마리의 시각 처리 관련 뇌 영역에 미세 전극을 삽입했다. 이어 원숭이가 서로 경쟁하는 얼굴 이미지를 보는 동안 수백 개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얼굴 인식에 특화된 뇌 영역에서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먼저 제시된 얼굴과 관련된 활동 패턴과 나중에 제시된 얼굴과 관련된 활동 패턴이 각각 관찰됐다.
두 번째 얼굴이 의식적 지각에서 계속 우세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신경세포는 그 얼굴의 정보만 지속해서 나타내지 않았다. 두 얼굴에 해당하는 활동 패턴이 초당 약 15번씩 빠르게 번갈아 나타났다.
의식적으로 지각되는 얼굴을 나타낼 때는 신경세포의 활동이 그 얼굴의 특징을 더 뚜렷하게 반영했다. 연구진은 뇌가 지각되는 정보와 억제된 정보를 번갈아 처리하면서도, 두 정보를 구별하는 방식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두 얼굴과 관련된 신경 활동 패턴과 관련해 초당 약 15번 바뀐 이번 결과는 의식에서 사라진 시각 정보도 뇌에서 완전히 무시되지는 않으며, 의식적 지각을 이해하려면 신경 활동의 위치뿐 아니라 시간에 따른 변화도 살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에서 가장 기묘한 점 중 하나는 뇌가 우리의 통제 없이 무엇을 볼 수 있는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뇌는 주변에서 가장 중요한 자극에 집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보의 우선순위를 높이거나 낮춘다.
그 결과 현실의 일부는 의식적인 경험에 포함되지만, 다른 일부는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걸러진다. 예를 들어 코나 안경테는 눈앞에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이를 의식적으로 보지 않는다.
어떤 정보가 의식에 도달하고 어떤 정보가 억제되는지를 결정하는 메카니즘은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전환을 조율하는 방식과 특정 시간 구간의 활동만 의식으로 이어지는 이유를 규명해야, 신경세포 집단의 활동이 어떻게 의식적 지각을 만들어내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