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컨벤션센터. 제41차 북미척추학회(NASS) 연례학술대회(10월 14~17일)에서 열렸다. 그중 한 특별세션에 ‘경추·흉추 척추내시경 수술의 최전선’(Frontiers of Endoscopic Spine Surgery in the Cervical and Thoracic Spine)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발표자 명단에는 존스홉킨스대, 워싱턴대 등 미국 대학병원 교수들과 한국의 척추내시경 의사들 이름이 나란히 올랐다.
그중 흉추 분야를 부산 휴병원 박만규 병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이 맡았다. 허리 디스크 수술에 주로 쓰이던 내시경이 이제 '등뼈'(흉추) 한가운데까지 들어가는 변화상을 보여주는 것. 미국 척추의사들이 이 세션에 주목한 이유의 하나다.
올해 미국 척추학회가 '내시경 척추수술'을 앞세운 이유는?
NASS는 1984년 설립된 세계 최대 규모의 척추 학술단체. 신경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 등 척추 관련 전문가 800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한다. 올해 대회에는 논문 초록만 1469편이 접수됐다.
학회는 올해 수술 세션의 주제로 ‘내시경 척추수술’을 가장 먼저 꼽았다. 인공지능(AI), 로봇 수술, 인공디스크치환술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배경엔 미국 의료 환경의 변화가 있다. 미국에선 입원 없이 수술받고 당일 귀가하는 외래 척추수술이 빠르게 늘고 있다. 작은 절개로 근육 손상을 줄이는 내시경 수술에 눈길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
하지만, 미국에서 최소침습 척추내시경 수술은 아직 '배우는 단계'에 가깝다. 여러 가지 내시경 감압술을 하나의 코드로 묶어 버린 미국의 수가 기준을 두고도 현지 의료계에선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흉추 수술을 '최전선'으로 부르는 까닭은?
척추는 목(경추), 등(흉추), 허리(요추)로 나뉜다. 내시경 수술이 가장 먼저, 가장 넓게 자리 잡은 곳은 허리다. 올해 초 국제학술지('JCM')에 실린 리뷰 연구도 이 분야 주요 논문들이 요추에 쏠려 있다고 분석했었다.
그에 비해 흉추는 사정이 다르다. 척수가 지나는 척추관이 좁고, 갈비뼈와 맞물린 주변 구조가 복잡하다. 수술 중 척수에 작은 충격만 가해져도 하반신 마비 같은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척추 수술 가운데서도 고난도로 꼽히는 이유다.
여기에 양방향 척추내시경(Unilateral Biportal Endoscopy, UBE)은 피부에 작은 구멍 두 개를 내 한쪽엔 내시경을, 다른 한쪽엔 수술 기구를 넣는 수술. 북미척추학회 공식 학술지 ('The Spine Journal')에 실린 기존 논문에서도 UBE 적응증이 흉추와 경추로 넓어지는 흐름을 주목하며 UBE가 더 많은 환자에 선택지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을 정도다.
박 병원장은 흉추 수술 데이터로 무엇을 보여줬나?
박 병원장의 이번 강연 제목은 ‘양방향 척추내시경을 이용한 흉추 병변 치료’. 흉추 황색인대골화증(Ossification of the Ligamentum Flavum, OLF)과 흉추 디스크탈출증 등에 UBE를 적용한 임상 경험을 소개했다. 수술 안전성을 지키기 위한 핵심 술기도 함께 다뤘다.
황색인대골화증은 척추뼈 뒤쪽을 잇는 황색인대가 뼈처럼 딱딱해지면서 척수를 누르는 질환이다. 다리 저림과 힘 빠짐, 걸음걸이가 불안정해지는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 서양인보다 동아시아인에게 상대적으로 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연의 근거는 숫자였다. 박 병원장이 교신저자로 참여해 지난 7월 유럽척추학회지(European Spine Journal)에 발표한 연구는 흉추 황색인대골화증으로 UBE 감압술을 받은 환자 45명(55개 분절)을 평균 16개월 추적했던 기록. 수술 뒤 척수를 감싸는 경막낭의 단면적은 평균 70.4㎟에서 119.8㎟로 넓어졌고, 신경 기능 회복 정도를 보는 지표(mJOA 회복률)도 평균 71.2%에 이르렀다.
박 병원장은 2023년 또 다른 국제학술지('World Neurosurgery')에 흉추 내시경 수술의 합병증을 정리한 리뷰 논문도 발표했다. ‘성과’와 ‘위험’을 함께 들여다본 셈이다.
강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한 미국 척추외과 의사는 "난이도 높은 흉추 내시경 수술을 안전하게 시행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고 물었다.
이에 박 병원장은 "흉추 수술은 요추보다 척추관이 좁고 척수와 직접 맞닿아 있어 작은 실수도 큰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먼저 요추 UBE(양방향척추내시경) 수술에서 충분한 경험을 쌓아 내시경 시야와 기구 조작에 익숙해진 뒤 흉추 수술에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무엇보다 내시경 수술로 효과를 볼 수 있는 환자를 정확히 가려내는 것, 즉 올바른 적응증을 찾는 것이 안전한 수술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의사들은 왜 부산까지 와서 배웠나?
강연 이튿날 17일, 박 병원장은 휴스턴 인근 험블의 ‘매트릭스 메디컬 트레이닝 랩’(Matrix Medical Training Lab)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열린 ‘2026 듀얼포털 투어(dualPortal TOUR)’ 카데바 워크숍 강사로도 초청받은 것.
카데바(Cadaver) 워크숍은 기증 시신으로 실제 수술 환경을 재현해 술기를 익히는 실습 교육이다. 박 병원장은 양방향 척추내시경 유합술을 직접 시연해 보이면서 미국 의료진의 실습을 1대1로 지도까지 했다.
유합술은 불안정해진 척추 마디를 나사와 보형물로 고정하는 수술로, 보통 절개 범위가 크다. 이를 내시경으로 작게 절개해 시행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아직 첨단 영역에 속한다.
좌장은 휴스턴 메소디스트(Methodist)병원 신경외과 멍 황(Meng Huang) 교수였다. 이날 강사로 함께 출연한 애리조나 배너헬스(Banner Health) 앤드루 정(Andrew Chung) 박사와 황 교수는 앞서 부산을 찾아 박 병원장 수술을 직접 참관했던 의사들. 부산 수술실에서 맺은 인연이 미국 현지 교육으로 이어진 셈이다.
UBE는 사실 배우기가 쉽지만은 않은 수술이다. NASS 저널에 실린 UBE 입문 논문에 따르면 숙련까지 대개 25~50례가 필요하고, 카데바 실습과 멘토링이 학습 기간을 줄이는 열쇠라고 했었다. 미국 의사들이 긴 시간을 들여 기꺼이 태평양을 건너오는 이유다.
박 병원장은 19일 "세계 척추의학계 중심인 NASS에서 한국의 양방향 척추내시경 수술, 특히 고난도 영역인 흉추 수술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 뜻깊었다"며 "휴병원을 찾아 수술을 참관했던 미국 의료진과 현지에서 다시 만나 함께 교육하며 미국 의료계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음을 또 한 번 실감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