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씨(68)는 올여름부터 걸음이 이상했다. 계단을 내려갈 때면 다리가 제 것 같지 않았고, 평지에서도 몸이 한쪽으로 쏠렸다. 허리 협착증이겠거니 했다. 동네 병원에서 허리 MRI를 찍었다. 나이만큼의 퇴행은 있었지만, 걸음을 이렇게까지 무너뜨릴 만한 압박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찾은 척추병원. 의사는 다리보다 손을 먼저 봤다. 셔츠 단추를 잠가 보라 했고, 주먹을 빠르게 쥐었다 펴 보라고 했다. 그제야 떠올랐다. 요즘 젓가락질이 서툴러 반찬을 자주 흘렸다는 것.
의사는 원인을 알겠다는 듯 목을 찍어 보자 했다. 목 MRI 판정 결과, 몸 부위 척수가 목뼈 5번과 6번 사이에서 많이 눌려 있었다. 경추척수증(Cervical Myelopathy, CM)이었다.
다리가 이상한데, 왜 목을 들여다볼까?
척수(脊髓)는 뇌에서 시작해 척추뼈 속 통로(척추관)를 따라 내려가는 중추신경이다. 팔과 몸통, 다리로 가는 운동 신호도, 거꾸로 올라오는 감각 신호도 모두 이 길을 지난다. 고속도로로 치면 본선(本線)이다.
목은 그 메인도로의 맨 윗구간. 이곳이 좁아지면 아래쪽 출구가 한꺼번에 영향을 받는다. 손이 둔해지는 것도, 다리가 휘청이는 것도 뿌리는 같다. 심해지면 소변을 보는 데까지 문제가 생긴다.
경추척수증은 목뼈 속 척수가 눌려 손과 다리 기능이 함께 떨어지는 병. A씨의 경우, 나이 들며 생긴 퇴행성 변화가 원인이 된 ‘퇴행성’ 경추척수증(DCM)이었다.
문제는 이 병이 목에서 시작되는데도 목이 아프다는 신호를 잘 보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부산큰병원 최승현 병원장(정형외과)도 "손발 감각이 무뎌지고 걸음이 휘청거리는, 뇌졸중 뒤에 오는 ‘풍(風)’과 약간 비슷한 증상이 주로 나타나다 보니 진단이 자꾸 늦어진다"고 했다.
같은 ‘협착’인데, 목과 허리는 왜 다른 병일까?
흔히 척수가 꼬리뼈 근처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성인의 척수는 허리뼈(요추) 1, 2번 높이에서 끝난다. 그 아래로는 가는 신경 가닥들이 말꼬리처럼 늘어져 내려간다. 마미(馬尾) 신경이다.
그래서 허리 쪽 척추관협착증은 주로 마미 신경이 눌리는 병이다. 오래 걸으면 엉덩이와 다리가 저리고 아프다가, 앉거나 허리를 숙여 쉬면 나아지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목은 사정이 다르다. 눌리는 것이 중추신경인 척수 그 자체다. 척수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더디고, 회복된다 해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한계가 있다. 통증보다 기능 저하가 먼저 오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서서히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좁아짐’이라도 목과 허리를 다르게 다뤄야 하는 이유다.
목은 왜 척수의 ‘병목’이 될까?
척수는 목을 지나 등뼈(흉추) 12마디를 따라 내려간다. 길이로만 보면 흉추 구간이 가장 길다. 그런데도 이 구간에서 생기는 척수 압박은 드물다.
흉추는 양옆으로 갈비뼈와 관절을 이루고, 앞쪽으로는 가슴뼈와 이어진다. 일종의 보강재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흉추 자체는 잘 움직이지 않으니 디스크와 관절이 닳을 일도 적다. 흉추 디스크 탈출은 전체 디스크 탈출의 0.25~0.75%에 그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
그에 비해 목뼈 7마디는 척추 가운데 가장 많이 움직인다. 5kg 안팎의 머리를 받친 채 숙이고, 젖히고, 돌린다. 많이 쓰는 만큼 디스크와 관절이 일찍 닳는다. 닳은 자리에는 뼈가 덧자라고(골극, 骨極), 디스크가 뒤로 밀려 나오며, 척추관 뒤쪽 황색인대가 두꺼워진다. 모두 척수 쪽으로 파고드는 변화다.
척수 쪽 사정도 있다. 목 부위 척수는 팔과 손으로 가는 신경이 갈라져 나가는 구간이라 다른 부위보다 굵다. 굵은 척수가, 점점 좁아지는 통로를 지나는 셈.
여기에 태어날 때부터 척추관이 좁았거나, 나이가 들며 목뼈 뒤쪽 인대가 뼈처럼 굳는 ‘후종인대골화증’(OPLL)이 생겼다면 여유 공간은 더 빨리 사라진다. 후종인대골화증은 서양인보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인에게 더 많이 생긴다.
그래서 퇴행성 경추척수증은 성인에게서 척수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꼽힌다. 움직임과 퇴행, 굵은 척수와 좁은 통로가 한곳에서 만나는 자리. 그곳이 바로 목이다.
같은 목인데, 무엇이 눌렸느냐가 다르다
목에서 신경이 눌리는 병이라고 모두 척수증인 것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목디스크나 추간공협착증은 척수에서 갈라져 팔로 내려가는 신경뿌리(신경근)가 눌리는 경우가 많다.
최 병원장은 이 차이를 가지와 줄기로 설명했다. 그는 “가지 신경이 눌리면 보통 팔로 뻗치는 방사통이 생기지만, 줄기 신경 전체가 눌리면 아픈 것보다 손이 둔해지고 걸음걸이가 어색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손발이 무디거나, 젓가락질이나 단추 잠그기가 힘들거나, 걸음걸이가 휘청거린다면 경추척수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과 걸음이 달라졌다면, 무엇부터 확인해야 할까?
진단은 진찰과 영상 결과가 함께 맞아떨어져야 한다. 손 기능과 보행, 반사 등을 살피는 경학적 진찰로 척수 기능 이상을 확인하고, MRI로 어디가 얼마나 눌렸는지 본다. MRI에서 척수 압박이 보이더라도 증상이 없다면 곧바로 척수증이라 하지 않는다.
치료의 첫 목표는 더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 증상이 가볍고 안정적이면 경과를 지켜보며 보존적 치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손놀림과 걸음이 계속 나빠진다면 눌린 척수를 풀어주는 감압(減壓) 수술을 검토한다. 목 뒤쪽으로 양방향 척추내시경을 넣어 척수 통로를 넓히는 ‘후궁감압술’도 그 선택지 가운데 하나다. 다만 목뼈가 불안정하거나 변형이 크다면 고정술이 필요할 수도 있어, 수술법은 환자의 목 상태에 따라 정해진다.
A씨 같은 환자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손이 서툴러진 건 나이 탓으로, 다리가 휘청이는 건 허리 탓으로 돌리며 몇 해를 보내는 길. 그리고 손과 다리가 함께 보내는 신호를 한데 묶어 보고, 목을 들여다보는 길. 하지만 그 결과는 차이가 크다. 평소 걸음걸이부터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FAQ] 경추척수증, 이것도 궁금해요
척수증은 허리에도 생기나요?
엄밀한 의미의 척수증은 허리에선 잘 생기지 않습니다. 성인의 척수는 대개 허리뼈 1, 2번 높이에서 끝나고, 그 아래로는 마미 신경이 내려가기 때문입니다. 다만 척수 끝부분이 걸치는 등과 허리의 경계 부위에서는 척수 압박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등뼈(흉추)에도 척수증이 생기나요?
생길 수 있습니다. 갈비뼈가 흉추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 목이나 허리보다 퇴행 변화가 적고 디스크 탈출도 드뭅니다. 대신 척추관이 좁아 한번 압박이 생기면 다리 힘 빠짐 같은 증상이 빠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목디스크와 목 경추척수증은 어떻게 다른가요?
목디스크는 주로 팔로 가는 신경뿌리가 눌려 한쪽 팔과 손가락에 통증과 저림이 생깁니다. 경추척수증은 척수 자체가 눌려 양손의 섬세한 동작이 서툴러지고 걸음이 불안정해집니다. 기능 저하가 먼저 나타나는 거죠. 물론 두 가지가 함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경추척수증은 수술하면 원래대로 돌아오나요?
회복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척수가 눌린 기간과 손상 정도, 나이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수술의 1차 목적은 더 이상의 악화를 막는 데 있습니다. 증상이 오래되기 전에 치료할수록 더 많이 회복할 수 있습니다.
도움말=최승현 부산큰병원 병원장(정형외과). 충남대 의대 출신으로 서울 상계백병원 척추센터 임상강사를 거쳐 부산권 여러 병원 척추센터에서 다양한 임상 경험을 쌓았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UBE(양방향 척추내시경) 초청강연과 수술 시연도 활발히 다닌다.





